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 회사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때는 마르지 않는 통장이 있었다. 퇴사를 하고 퇴직금마저 경차 한 대와 맞바꾼 마당에 돈이 들어올 구멍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대신 나는 시간부자다. 예전에는 월급을 어떻게 쪼개서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좋은 옷도 사입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이제 1+1처럼 붙어 다니는 한 명이 더 있다. 아이. 어린아이와 함께 24시간을 보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외출도 쉽지 않다. 어디 가까운 곳이라도 가려고 하면 먼저, 먹을 것이 문제다. 이제 막 이유식을 마치고 일반식을 먹기 시작한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많지 않다. 맵지 않고, 짜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고. 이건 외식을 하지 말라는 소리다. 게다가 엄마 혼자서 아이와 단 둘이 먹을 수 있는 식당은 흔치 않다.
다음은 배변 문제다. 기저귀를 아직 떼지 못한 아이는 반드시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시설이 있어야 한다. 수유실이나 유아휴게실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은 마음이 불안하다. 기저귀를 뗐다 하더라도 청결한 화장실은 필수다. 또 화장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막 기저귀를 뗀 아이의 참을성은 길지 않다. 화장실을 찾아 헤매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낮잠시간도 문제다. 낮잠 시간을 건너뛰거나 휴식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면 아이는 극도로 각성되거나 짜증을 부린다. 잔뜩 성이 난 아이와 돌아다니는 것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다. 따라서 아이가 잠이 들어도 쾌적하게 잘 수 있고, 수유실이나 어린이화장실이 갖추어져 있고, 가지고 간 간식을 챙겨 먹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 그런 곳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에 최적의 장소가 된다.
그런 곳은 어딜까? 대형쇼핑몰이나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다. 돌쟁이 아이를 위해 문화센터에 다니는 엄마들을 두고 조기교육이 극성이라며 비판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따지고 싶다. 단언컨대 돌쟁이에게 교육을 목적으로 문화센터에 다니는 엄마는 거의 없다. 그 아이를 안고 문화센터로 향하는 이유는 엄마 자신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콧바람을 쐬고 싶기 때문. 문화센터는 가성비가 좋다.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만 가더라도 입장료며 엄마 음료값까지 2~3만 원은 금방인데 문화센터는 한 학기에 10만 원 내외로 일주일에 한 번, 10회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수업을 하는 40~50분 동안은 다른 엄마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선생님이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니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 문화센터다. 가끔 워킹맘 중에는 전업맘들처럼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다니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문화센터는 엄마를 위한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마저도 일주일에 한 번, 고작해야 50분 내외. 기관에 보내든 가정보육을 하고 있든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는 가장 큰 숙제다. 그것도 최대한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알차게. 워킹맘은 퇴근해서 아이를 픽업하고, 저녁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위한 바쁜 시간과의 싸움이라면 전업맘은 낮 시간 내내 밥이며 간식을 챙겨 먹이고, 시간 맞춰 낮잠을 재우고 온갖 씨름을 한 후 저녁먹이고 씻기고 재우기까지 몇 번이나 소리를 지르지 않고 버텼는지를 다투는 정신력과의 싸움이다.
돈 없이 논다는 건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동네 놀이터, 공원, 기껏해야 문화센터가 전부인 날들을 버텨야만 한다. 어른에게는 전혀 흥미롭지 않고 궁금하지도 않지만 아이에게는 호기심 가득한 세상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나의 관심사와 취향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온갖 일들을 견뎌야 한다. 가끔은 시간을 때우러 간 대형 쇼핑몰에서 장난감을 사달라는 아이와 원치 않는 실랑이도 이겨내야 한다.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는 삶,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는 삶 어느 쪽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