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자는 시간에, 혹은 하루 종일 뒹굴거리는 연휴 동안에 일하는 것은 얼마나 억울한 지.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닐 경우 그억울함은 배가 된다. 그 대신 6주마다 휴가 하루를 추가로 지급받지만, 이는 건강한 수면과 휴일의 재충전에 대한 대가 치고는 턱없이 부족한 보상이어서, 이를 포기하고 교대근무를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백이면 백 쌍수 들고 환영한다. 그러나, 현실에 그런 선택지는 없다. 교대근무라는 철창 안에서 결국 체념하고 나면, 그제서야 보이는 장점이 몇 가지 있다. 이번에는 한 줌의 모래만큼이지만, 특권이라면 특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밤낮 없이, 휴일 없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교대근무에도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남들 쉴 때 일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뒤틀린 시간감(時間感)에 관한 것이다. 9 to 6로 일하는 다른 모든 부대원들과는 다르게, 24시간을 5조로 나누어서 근무하면 생활패턴이 묘하게 어긋나게 된다. 같은 소속의 군인인 것 같아도 경험하는 시간축이 같지 않기 때문에 헌병과 일반 병사들은 완전히 다른 2년을 보낸다. 이는 헌병 생활을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속성이다. 이 낯선 시간감은 ‘자연’과 ‘공동생활’이라는 두 가지 맥락에서 드러난다.
먼저, 헌병은 소복이 쌓인 눈을 가장 먼저 밟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뽀드득뽀드득. 정문 초소 근무자는 정문 앞에서, 5분 대기조는 부대 순찰을 돌며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 날씨나 온도 변화에 따라 근무복장이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밤하늘의 별자리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치도 누린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끼는 날이면, 달까지 닿을 듯한 초강력 랜턴에 의지하여 순찰을 돈다. 부대의 외연을 눈으로 확인하고 전체로서의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는 것도 헌병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 중 하나이다. 부대 어딘가에 있는, 반쯤 얼어버린 웅덩이를 군화로 깨버릴 수 있는 것도, 멧돼지와 고라니와 꿩 가족을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헌병만의 특권이다. 출입하는 사람도, 근무하는 사람도 없는 연휴 동안에는 호젓한 산사(山寺)의 스님이 된 것 마냥 천천히 초소 근처 낙엽을 쓸어도 된다. 세상이 멈춘 가운데 들리는 소리는 새소리와 빗자루질 소리뿐이다. 째액 짹, 쓱싹쓱싹.
또한, 숨 막히는 공동생활 속에서 헌병들은 비교적 자유롭다.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통해 나의 존재와 위치를 확인하는 시스템 속에 사는 것은 일견 대수롭지 않은 일상 같아 보여도, 사실은 거주·이전의 자유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제약이기도 하다. 저녁 점호 이후에는 생활관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일반 병사들과는 달리, 헌병은 자의든 타의든 건물 밖으로 나와 돌아다녀도 무방하다. 새벽 근무가 끝나고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혼자 샤워실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헌병의 특권이다. 근무 준비를 이유로 누구보다 먼저 점심/저녁 식사를 먹을 수 있는 것도, 헌병들만 이용할 수 있는 싸지방 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오침 시간 동안 오전 교육에서 열외인 것도 헌병만의 특권이다. 나아가, 5분 대기조 생활관은 간부들의 관리 감독에서 비교적 독립적인 공간이다. 생활관이 다른, 친한 선/후임 헌병반 인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밤새 영화를 보거나, 야식을 먹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피로를 대가로 내놓아야 한다. 하-암.
그 외에도 자잘한 장점들, 예컨대 군견을 산책시킬 수 있다거나, 부대 내에서 유일하게 총을 휴대하고 사격 훈련이 가장 많다는 장점 등이 있다. 모두 헌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체험들이다. 물론 몇몇 것들은 장점처럼 들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앞서 말한 모든 장점에도 해당하니, 여유가 된다면, 이런 경험들이 장점이 되는 상황도 있다고 상상해보자. 결국에 부대도, 헌병반도 사람 사는 곳이고, 힘들지만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헌병들끼리만 공유하는 특별한 즐거움은 서로 간의 더욱 특별한 유대로 이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