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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Jul 18. 2021

15. 전역 즈음에

헌병은 서서 생각한다

나는 당시에 이렇게 적었다. 


먼저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넨다.


말년휴가 나가기 전날 밤 11시 17분. 아직도 나는 잠에 들지 못하고 이 냄새나는 휴게실에서 글을 쓴다. 아직도 화가 난다.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내 인생에 있어 시련이고 불운일 것이라 이야기한 부대장, 당신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진실에 가깝기 때문에.


비록 자살을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것을 가장하여 일신의 위기를 구해보려 한 적이 있다고 뒤늦은 고백을 한다면 속이 한결 편해질까. 물론 실행에 옮겨 누군가를 곤란하게 한 것은 아니고 몰래, 머릿속으로만. 그 짓을 포기하고 나 자신을 구하려는 생각도 포기했을 때 느꼈던 안정감은 가끔, 느닷없이 온데간데 사라져 버리곤 했다. 오늘처럼. 그러면 나는 다시 유원지에서 엄마를 놓친 아이처럼 불안해했다. 맞다. 나는 불안해했다. 이렇게 대놓고 뱉어본 적은 없지만 나는 이 일이 누군가 맡아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것으로 인해 건강이든 정신이든 어떤 식으로라도 나를 잃을 것 같다는 불안에 지독하게 젖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름도 생소한 신경성 질환을 얻었고 자대 배치 한 달 반 만에 약에 의존하게 됐다. 내가 살아온 방식 안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상황에 처한 나를 구할 수는 없다는 합리적인 체념 이후에 나는 조금씩 호전되어 갔다.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길고 젊은 시간이 아닌가. 그렇게 나는 어느새 책도 읽고 운동도 틈틈이 했다. 후임들과도 친해지고 휴가를 모으기 좋은, 작은 직책까지 맡았다. 그럭저럭. 그럭저럭 익숙해져 무뎌졌고, 약도 조금씩 줄여나갔다. 하지만 가끔, 느닷없이 찾아오는 질문, 그래서 나는 괜찮은가. 


꽁꽁 둘러맨 외피 사이로 파고드는 한겨울의 추위처럼 날이 선 물음에 나는 다시 엎드려 화를 낸다. 몰래, 머릿속으로만. 화가 난다. 당장 아무나 붙들고 지겹도록 패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나는 화를 내지 않는다. 대체 누구에게, 무어라고 소리 지를 수 있을까. 


강렬한 경험은 늘 추억이 되어 나를 기만하니, 나는 잊지 않으려 글을 쓴다. 그것은 사실 별 일 아니었다고, 다 갔다 오는 평범한 군생활에 지나지 않았다고 호도할 미래의 나를 경계하고 오늘까지 버틴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기 위해.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또 다른 군인을 위해서. 




전역한 지 3년 반 만에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써 내려갔다. 당시의 감정과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어지러이 놓여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하여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설명하고자 했다. 지금도 누군가는 이름 모를 분노와 허무를 겪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내 경험이 온전히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당신의 경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 마디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진부하기 짝이 없어도, 시간은 결국 흐른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나는 이 정도로 내 군생활을 기억하려고 한다. 아마 시간이 더 흘러서 다시 읽어보면, 이렇게 재현한 모습만이 남아있을 테다. 이 정도면 괜찮다. 더 이상 설명되지 않은 무언가가 마음속 깊숙이 뭉친 채 남아있지 않다. 개운한 느낌이다. 


2년간 이룬 것도 많다. 책도 70여 권 읽고 모두 기록해두었고, 한자 급수도 땄고, 토익, 텝스도 갱신했고, 좋은 사람들도 남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가지는 정말 값진 경험인데, 하나는 내 건강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고 주도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 점이고, 다른 하나는 분명한 진로의 방향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글쓰기를 통해 경험을 정리하면서, 악몽도 많이 꿨다. 그래도 군대 꿈은 잘 꾸지 않는 편이었는데. 괜히 시작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잘 썼다고 생각한다. 이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끝으로 심심할 때 그렸던 그림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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