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인가 내게 가장 두렵고 불편한 말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에겐 평생의 울타리이고, 돌아갈 집이며, 지치고 힘들 때 안겨 쉴 수 있는 품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그것은 단지 숨을 조이는 족쇄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래도 가족이잖아.”
하지만 그 말은 내게 이해나 사랑이 아닌, 침묵과 책임, 그리고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명령문처럼 다가왔고, ‘가족’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나를 묶고, 통제하며, 지배하는 수단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 자신을 잃어갔다.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내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졌고, 자존감은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관계들 속에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누군가가 “괜찮아?”라고 물어주기를,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진심으로 내가 어떤 감정 안에 있는지를 궁금해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조심스럽게 감정을 꺼내면 “예민하다”, “원래 너가 좀 그래”, “감정 기복이 심하네” 같은 말들이 마치 자동 응답처럼 돌아왔고, 그 말들은 내 입을 다시 단단히 틀어막았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몇 년 전, 한국에 있을 때 동생이 다니던 회사가 폐업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당시 나는 공동구매로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상황이었고, 한 달 수입이 8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를 오가는 불안정한 수입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동생은 매달 200만 원을 요구했다.
처음엔 글쓰는 일을 함께 돕겠다는 명목이었지만, 그 말은 곧 “나는 이 일 안 맞아”라는 짜증으로 바뀌었고, 함께 일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그녀는 점점 날카롭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상품 하나를 올릴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 있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나는 말을 아끼게 되었고, 표정을 조심하게되었으며, 감정을 눌러 삼키는 법을 더 철저히 익혀야만 했다.
혹시라도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분위기를 망칠까 봐, 커피며 간식, 외식까지도 내가 다 부담하며 웃어야 했다.
그녀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어느샌가 내 하루의 기본 루틴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그런 동생을 늘 감싸고 돌았다.
“어쩔 수 없잖아.”, “그 애는 원래 그래.”
엄마는 동생의 무책임을 말 몇 마디로 정당화했고, 그 말들은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두 사람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처럼 행동해야 했고, ‘동생은 돈이 없으니까, 너라도 더 벌어야지’라는 묵시적인 합의가 우리 가족 안에서는 당연한 상식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정작 그들은 우리 집에 하루 종일 머물며 생활비 한 푼 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어느 날, 나는 너무도 조심스럽게 단 한마디를 건넸다.
“이건 지금 여유가 있을 때 사는 거지, 당장은 조금 무리일 것 같아.”
내 말이 끝나자 동생은 웃으며 말했다.
“돈 없는 건 네 팔자고 네 사정이지, 그걸 왜 나한테 말해?”
그 말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 말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단호하게 내뱉어진다는 사실에, 그리고 내가 그 앞에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침묵을 택했다는 사실에, 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싸움을 선택하면 돌아오는 건 더 큰 폭력과 더 날선 비난뿐이었다.
“뇌가 있냐?”, “터진 입이라고 말하는 거 봐라.”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그 한마디에 묶여 나는 또다시 감정을 삼키고 말았다.
해외에 와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동생은 한국에서 학원 대리 원장으로 2년을 일한 후, “이 일은 내 길이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퇴사했고, 그 순간부터 생활비는 자연스럽게 나의 몫이 되었다.
엄마는 그 상황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고, 동생은 미안해하거나 죄책감을 가지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처럼 취급되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태도는 마치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내가 돈 이야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돌아오는 건 ‘못된 년’이라는 말뿐이었고, 엄마는 그럴 때마다 한숨을 더 깊게 내쉬며 나의 죄책감을 조용히 자극했다.
“이게 다 네가 예민해서 그래.”, “그래도 네 동생인데…”
그 말들 속에서 나는 또다시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
그들은 감정적으로 연약한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감정의 칼날을 들고 있었고, 내가 상처받는 건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내 상처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더 공고히 다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집이 숨막혀 도망치듯 도서관으로 향하곤 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그 집은 더 이상 내 집이 아니었다.
웃고 떠드는 그들의 소리에 나는 점점 더 숨이 막혔고, 정작 내 이름으로 계약된 이 집에서 나는 쉴 수 없었으며, 머물 수조차 없었다.
나는 집 안에서조차 쫓겨나는 사람이 되었고, 내 공간은 언제나 ‘비켜줘야 하는 곳’이 되었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지?’
수없이 되뇌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은 나를 다시 끌어당겼고, 나는 무너져가는 자존심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나는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그저 돈을 벌어다주는 존재, 그들이 불편함 없이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시스템일 뿐이었다.
내 감정은 사치였고, 불편함을 표현하는 순간 나는 ‘예민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인간미 없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받았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내 인생도, 내 감정도, 심지어 내 존엄조차 내려놓아야 했다.
“그래도 가족인데.”
그 말은 너무도 잔인한 말이었다.
참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결국엔 돌봐야만 한다는 무언의 강요처럼, 그 문장은 늘 나의 가슴을 조용히 짓눌렀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들은 이미 나에게서 모든 것을 다 가져갔다는 사실을.
말할 수도 없고, 쉴 수도 없고, 숨조차 편히 쉴 수 있는 그 관계 안에서 나는 조금씩 말라갔다.
그래서 나는 이제 묻는다.
나는 언제쯤, 가족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누구의 딸이 아니라, 누군가의 언니가 아니라,
그저 ‘나’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도 되는 걸까?
나는 그 믿음 위에서 살아보고 싶다.
아주 조심스럽게, 아주 더디게라도, 내 감정을 지워내지 않으며
비로소 나 자신으로 살아도 되는 인생임을,
이제는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