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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 Jul 28. 2022

한국 귀국

혼신의 연기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표를 급하게 끊었는데 그다음 날, 거주증을 잃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변호사한테 물어보니.. 안된다고.. 다시 Exit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7일이 걸린다고..) 비자 에이전시한테도 전화해서 확인했는데 거주증 없이 출국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비행기표는 이미 끊었고.. 나는 공항에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변호사랑 전화를 하는데..


변호사: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가봐. 백만분의 1의 확률로 거주증 검사를 안 할 수도 있어. 어차피 비행기표 끊었잖아. 일단 가봐. 부딪쳐봐.

나:....................다들 안된다고 하는데... 확률이 있긴 해?......

변호사: 없진 않아. 케이스마다 달라. 정말 운이 좋으면.. 거주증 없이 출국할 수도 있어. 뭐 대신 패널티라고 돈을 내야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돈 챙겨가. 

나:.......알겠어........



ATM에서 돈을 왕창 뽑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공항에 갔다. 다들 안된다고 하는데.. 어차피 공항 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 같아서 꼭 필요한 짐만 챙겨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운에 내 인생을 맡겨야 한다는 게 슬펐다. 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는데 항공사 직원 여자가 결국 나에게 안된다고 했다. 


직원: 너는 거주증이 필요해. 거주증 없어?

나: 없어..

직원: Immigration 에 확인해봤는데 너는 거주증 없으면 출국 못 해. 미안하지만 가줄래? 니가 정 그러면, 저기 있는 Immigration 에 가서 확인해봐. 


 그녀는 너무 단호해서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포자기 마음으로 Immigration 앞에서 이민국 직원과 이야기했다. 


직원: 미안한데.. 너는 오늘 출국 못해. 다시 돌아가. 거주증 다시 가져와.

나: 나 거주증 잃어버렸어.

직원: 뭐? 어쨌든 오늘은 출국 못해. 미안해.

나: 패널티 내고 가면 안 될까?

직원: No.


돈 내서라도 가려고 했는데 돈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정말 그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정신이 없었다. 이 짐을 다시 가지고 돌아가고 Exit 비자를 발급받고 다시 일주일을 기다리고..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절대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 (갑자기 울먹이며..) 사실.. 나 할머니가 몸이 아프셔. 나 정말 오늘 꼭 돌아가야 돼. 수술하시는데 수술 잘못되면 @#$%%^^^$ㅉ$%ㅉ 나 정말 오늘 돌아가야 돼. 할머니 장례식은 봐야 되는데.. 흑..ㅎ..ㄱ.ㅡㄱ.. 흑흑..

직원:..........................미안해.........


나는 친구J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한국어로) J야, 나 지금 이민국에서 얘기하는데 너가 내 시스터라고 하고 지금 우리 할머니 수술받아서 죽을 수도 있다고 나 꼭 돌아가야 한다고 얘기해주라. 영어로, 

J: (비장한 목소리로) 알겠어.


이민국 직원에게 친구 J 의 전화를 건네주었다. 그들은 계속 전화를 하고.. 직원은 계속 안된다고 하면서 J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사실 J는 말을 엄청 잘해서 나는 그녀를 정말 믿었다.) J가 전화로 열심히 얘기하는 동안 나는 짐 카트 옆에 주저앉아서 흐느끼면서 울었다. 


나: (바닥에 주저앉아서 흐느끼면서) 흑흑....흐.ㄱ..흑..... 할머니........흑....


혼신의 연기를 했다. 내 처지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몇 분 뒤 직원이 말했다.


직원: 괜찮아. 너 오늘 갈 수 있어. 기다려봐.


나는 더 흐느끼고 울었다...;;;; 곧 직원이 와서 여권을 줬다. 


나: (여권을 받으며) 흑흑...흐..ㄱ...흑... 고마워... 



그리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정말 무사히 체크인을 하고 들어갔다. 비행기를 기다리면서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ㅋㅋㅋㅋ) 하지만 결국 정말 무사히 한국으로 들어왔다. 



내가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얘기하자 변호사는 엄청 웃었다. 


변호사: ㅋㅋㅋㅋㅋ 진짜 낮은 확률이긴 한데.. 잘했다 ㅋㅋㅋㅋ 내가 그랬잖아, 시도해보라고. 


나는 정말 무리수를 두었고 운이 좋았지만, 이 방법은 정말 비추한다. 왜냐하면 내 친구도 나와 똑같은 방법을 예전에 썼었는데 그녀는 결국 거절당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번에 운이 정말 좋았다..!) 만약 나도 다시 돌아간다면 비행기표 끊기 전에 거주증 확인해보고 만약 없으면 Exit 비자받고 느긋하게 일주일 있다가 돌아왔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다시 베트남에 돌아갈지, 언제 돌아갈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번년도는 계속 한국에 있을 것 같다. 당분간은 한국생활에 대한 글을 쓸 것 같다. 한국에 오니까 베트남에 두고 온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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