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책장] 우리가 알아야 할 초콜릿의 이면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의 달콤함 그것을 모르는 아이들

by 정경문
코코아에서 한쪽 팔만 남은 세이두의 맛이 나서
차마 더는 마실 수가 없었다. 구역질이 훅 치밀어 올랐다.
카카오.png
코코아 향기가 다시금 나를 덮치자, 이번에는 입에서 아까와는 다른 맛이 느껴졌다. 이 액체의 비밀을 알아 버린 지금, 이것은 더 이상 잠 못 드는 밤을 달래는 달콤한 향기가 아니었다.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고통의 냄새, 아무리 일해도 매질을 피할 수 없는 공포의 냄새였다. 한쪽 팔만 남은 세이두의 맛이 나서 차마 더는 마실 수가 없었다. 구역질이 훅 치밀어 올랐다. 나는 컵을 멀찌감치 밀어 놓았다.

- 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 中 -


아들의 책장에서 가져온 두 번째 책은 『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 (타라 설리번)』입니다.

이 이야기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아프리카 시골집을 나선 소년 '아마두'가 동생 '세이두'와 함께 카카오 농장에서 겪는 일로 시작됩니다. 두 형제는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이끌려 국경을 넘어가지만, 버스기사는 그들을 카카오 농장에 팔아버리죠. 감금과 폭력 속에서 인신매매가 된 아이들은 카카오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맞지 않기 위해 살아가게 되는데요. 갑자기 끌려온 새로운 여자아이 "하디자"와 그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조금씩 세상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다 한 문장에서 오래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 인간들한테 고마운 마음이 드는 내가 미웠어.


트럭 짐칸에 실려 숨이 막혀 죽을까 두려웠던 여자아이 "하디자"가, 얼굴을 덮은 천을 벗겨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폭력 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해 준 것, 그 사소한 행위가 은혜처럼 느껴졌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트라우마 결속(Trauma Bonding)’이라고 부릅니다. 지속적인 폭력과 통제 속에서 가해자가 아주 작은 친절을 베풀면, 피해자는 그 안도감에 감사함까지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공포가 일상이 되면, 고통이 잠시 멈춘 것만으로도 감사해지는 마음이 생깁니다. 살아남게 해 준 것이 곧 선의처럼 착각하게 되는 거죠.


아마두는 말합니다. “날마다 먹을 게 주어지고… 심지어 매질을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저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군가는 감사의 대상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주변에는 이런 모습이 없을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폭언을 하다가 하루 친절해지는 관계, 늘 무시하다가 가끔 건네는 칭찬에 위로받는 순간들, 통제와 억압 속에서도 꿋꿋이 살고 있지만 그것이 당연해진 부조리, 삶은 부조리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이 당연시되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우마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kakao.png 출처 : 생성형 AI (챗 GPT)

책에 나오는 어른들 중에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신뢰를 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카카오를 운반하는 트럭운전사(피스테르) "우마르"입니다. 그는 수확철이 되면 카카오 농장에 트럭을 몰고 오는 운전사입니다. 농장 주인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자신의 생계도 지켜야 하는 사람이죠. 겉으로 보면 그 역시 이 구조 안에 속해 있는 어른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트럭 짐칸에 몰래 숨어 올라탄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합니다. 쫓아내지 않고, 신고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먹을 것을 내어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다음 행선지까지 태워줍니다. 떠들썩하지 않은 선택이지만, 아이들의 삶에서는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됩니다. 그는 영웅처럼 등장하지 않습니다. 생계를 위해 자기 일을 하지만, 외면하지 않는 어른으로 남습니다.


이야기에서 아이들은 좋은 어른을 만나도 쉽게 믿지 못합니다. 그동안 만난 어른들이 모두 폭력과 통제의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마르의 선의는 처음에는 의심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끝내 그는 아이들에게 세상이 전부 잔인하지만은 않다는 작은 증거가 됩니다. 그 한 사람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지 않습니다.


우마르는 거창한 구조를 바꾸지 못합니다. 카카오 농장의 시스템을 무너뜨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구조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을 합니다. 모른 척하지 않는 선택, 침묵으로 동조하지 않는 선택입니다.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이런 작은 선택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아동 156만 명


이 이야기가 더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것이 단지 소설적 상상력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타라 설리번은 실제 서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에서 벌어지는 아동 노동 문제를 취재하고, 그 현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니세프가 2021년 공동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아동은 약 156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출처 : www.cocoainitiative.org) 그중 상당수는 마체테(큰 칼)를 사용하거나, 농약에 노출되거나, 무거운 자루를 나르는 등 위험한 노동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미국 노동부 역시 카카오를 강제노동 및 아동노동 우려 품목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https://www.cocoainitiative.org/about-us/annual-reports/annual-report-2023?utm_source=chatgpt.com


더 아이러니한 것은 수익 구조입니다. 전 세계 초콜릿 산업 규모는 1,000억 달러를 훌쩍 넘지만, 카카오 농가가 가져가는 몫은 최종 제품 가격의 약 6~7% 수준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글로벌 식품 기업들은 매년 수십조 원의 매출을 올립니다. 농부들은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에 그대로 노출되고, 기후위기와 병충해 위험을 감당하면서도 빈곤선 아래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가의 상당수는 하루 2달러 남짓한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럽연합은 강제노동 제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규제를 추진하고 있으며, 독일과 프랑스 등은 공급망 실사법을 시행해 기업에 인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 초콜릿 회사도, 우리도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불편한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실제 제가 바로 오늘 편의점 초콜릿 가격에 가치관의 혼란이 왔습니다. 초콜릿 한 봉지에 4,800원이었습니다. 살인적인 물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책의 이야기로부터 확인한 현실의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사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고 개선하고자 동참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초콜릿의 달콤함.png 출처 : 픽사베이

이 책은 묻습니다. 우리가 손에 쥔 초콜릿의 가격은 과연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 자본주의는 효율과 이윤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달콤함은 종종 가장 먼 곳에서 가장 고된 노동을 거쳐 우리에게 도착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최소한 한 번쯤은 멈춰 서야 하지 않을까요. 이 초콜릿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이 씨앗을 말리고 볶고 운반했는지, 그리고 그 아이들의 하루는 어땠는지 말입니다.


달콤함을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더라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만큼은 외면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책을 보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조금의 행동을 더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휴일의 마지막 날에 공유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