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과 닮은 야성의 부름 The call of the wild
불꽃처럼 톡 쏘는 느낌이 나더니 하얀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벅은 어리둥절했다. 다시 한번 핥아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진흙과 같이 하얗고 흐물흐물한 것 속으로 발이 푹 빠졌다. 하늘에서도 하얀 것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날 벅은 처음으로 눈을 보았다.
남쪽 지방에서 살던 벅이 알래스카에서 처음 만난 눈을 묘사한 이 장면을 읽는 순간, 이상하게도 내 인생의 여러 장면들이 한꺼번에 겹쳐졌다. 대학교에 처음 혼자 갔을 때, 군에 입대했을 때, 캐나다로 홀로 떠났을 때, 지방 근무와 해외 근무로 낯선 도시의 공기를 처음 마셨을 때. 낯선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잘 모르는 일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그 묘한 감정. 기분이 좋으면서도 두려움과 설렘, 긴장과 기대가 동시에 밀려오는 감정. 벅이 처음 눈을 마주하며 느꼈을 감정이 어쩌면 그때의 내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썰매개들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따라가다 보니,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바로 주인공 벅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 공간, 존재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
책은 참 신비롭다. 영화와는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상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지나친 디테일은 때로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한다. 현실을 너무 또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내가 썰매개가 될 수도 있고, 1890년대 알래스카의 혹독한 겨울을 달릴 수도 있다. 시간도, 공간도, 존재도 바꿀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어느 영화에서 판도라 행성의 아바타가 되어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존재로 살아볼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 남쪽 지방에서 온 벅은 알래스카의 척박하고 야생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되지만, 그 삶은 단순히 판사의 집에서 길러진 애완견의 삶에 머물지 않는다. 세인트 버나드와 스카치 셰퍼드의 혼혈인 벅의 몸속에는, 수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인간과 함께 살기 이전의 야생의 본능이 잠들어 있었고, 혹독한 환경 속에서 그 본능이 서서히 깨어난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래된 노래가 울리기 시작했다.”는 표현을 읽는 순간, 나 역시 스무 살 이후 세계 여러 곳을 혼자 돌아다니며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이 캐나다에서 PC방에 앉아 이력서를 만들고, 식당과 카페, 영어학원을 찾아다니며 면접을 보던 시간들. 그때 나는 두려움 속에서도 이상하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강하게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내 안에 있던 생존의 DNA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낯선 환경을 맞이하는 우리들, 그리고 그 속에서의 생존 본능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놓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할 때, 오래 함께했던 친구들과 헤어질 때, 새로운 축구팀이나 농구팀에 들어갈 때도 그렇다.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선 환경 속으로 우리는 계속 걸어 들어간다. 마치 알래스카에 첫발을 디딘 벅처럼, 몸속에 새겨진 생존의 DNA를 조금씩 끌어올리면서.
당시 알래스카에 사람들이 몰려든 이유는 유콘 지방 클론다이크에서 황금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썰매개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개들은 훔쳐지고, 거래되고, 맞아가며 썰매개가 되었고,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옮겨 다니는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썰매를 끄는 일,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생존이었다. 스무 마리가 넘는 썰매개들은 썰매를 함께 끄는 사이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기싸움과 먹어 쟁탈, 영역 다툼이 이어졌다. 조직 속에서 자리와 역할을 두고 경쟁하고 협력하는 인간 사회의 모습과도 묘하게 닮아 있었다.
“녀석은 친근하게 굴었지만 겉과 속이 달라, 얼굴을 보고 방긋 웃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몰래 흉계를 꾸미는 부류였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피식 웃었다. 우리 주변에도 늘 그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을 만나 여러 번 당해 보았고,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야 사람을 조금 더 분별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먼저 보려는 편이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약점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나를 지탱해 온 힘이기도 하다.
어느새 나 나 또한 가슴줄에 묶여 썰매를 끄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깊이 마음에 남은 존재는 벅도, 스피치도 아닌 '데이브'였다. 데이브는 대장 싸움에도, 동료들과의 친분에도 관심이 없었다. 데이브는 오로지 썰매를 끄는 일에만 집중했다. 썰매팀에서 빠지게 되었을 때 그는 분통을 터뜨렸고, 죽을 만큼 아픈 몸으로도 자기 자리를 대신한 다른 개를 바라보며 괴로워했다. 결국 그는 걷기도 힘든 상태에서 가슴줄을 스스로 물어 와 주인에게 내밀었다. 다시 썰매를 끌게 해 달라는, 마지막 부탁이었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우리 아버지들의 삶을 떠올렸다. 아파도, 힘들어도, 주어진 역할을 끝까지 수행했던 세대. 그리고 어느새 나 또한 보이지 않는 가슴줄에 묶여 썰매를 끌고 있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알래스카를 건너는 중이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알래스카를 건너는 중이라는 생각. 누군가는 눈을 처음 만난 벅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고, 누군가는 대장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으며, 누군가는 말없이 묵묵히 자신의 썰매를 끌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데이브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려 애쓰고 있다.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은 개 한 마리의 모험담이 아니라, 인간이 평생에 걸쳐 겪는 낯섦과 경쟁, 생존, 그리고 결국 자기 안에 잠들어 있던 본능과 정체성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였다. 책을 덮는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 역시, 어쩌면 각자의 야성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여정이라는 것을. 아들의 책장에 기대어 지난날과 오늘, 그리고 남은 날을 바라본다.
아들에게 추천받은 책을 읽고 시간이 될 때 꼭 브런치 작가님들과 나눠야겠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독서 에세이를 기록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