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 editor's letter
오랜만입니다. 전에도 오랜만이라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던 거 같은데, 이번에도 역시나네요. 무엇이 그리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 무엇이 그리 고민이고 생각이 많아서 몇 안 되는 이들이 보는, 누가 읽어줄지 모를 편지 한 통 쓰는 일에도 '오랜만'이란 시간이 필요한 걸까요.
초록으로 가득 창을 메우던 강원수집 계정은 소식이 뜸, 하더니 거미줄이 몇 채나 큰 집을 짓고도 남았을 만큼의 시간 동안 부재중이었습니다. 이렇게나 불성실한데도 신기한 건, 이 계정을 팔로워하고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는 이들이 조금씩 꾸준히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반응이 신기하고 고마워서 빨리 소식을 전해야지, 싶기도 했습니다.
그게 지금이 될 줄 몰랐지만요.
사실 말을 늘어놓는 김에 변명을 하자면, 왜 강원수집에 글 안 올리냐고, 매거진 각은 발행하는 거냐고 묻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물어주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조금 더 빨리 소식을 전했을지도 모른다고 괜히 투정을 부려봅니다. 하지만 저도 잘 압니다. 그저 제가 게으르고 나태했고 쉬어야 했다는 것을요.
누군가는 무더운 여름을 보내며 애타게 시원한 가을이 오길 기다렸겠지만, 또 누군가는 시원한 여름을 보내며 서늘한 가을이 제발 오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애타게 기다리든, 제발 오지 않기를 바라든 매일의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고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옵니다.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운 이치죠. 이 세상의 어느 인간도 이것을 거스를 수 없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자연'을, '자유'를 자주 생각합니다. 이 매거진도 자연스럽게, 자유를 선물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고요.
온통 초록으로 물들었던 세상이 빨갛고 노랗고 총천연색의 아름다움으로 물들었다 이내 지고 있습니다. 저도 패딩을 꺼내 입었고요. 올해의 달력도 한 장밖에 남지 않았네요.
아쉬운가요? 저도 그래요. 하지만 또 한편으론 아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지만 매일 또 새로운 하루는 주어지니까요. 그렇게 우리 순간을, 지금, 여기를 반짝이며 삽시다. 날이 추워요. 몸과 마음 따뜻하게 채우시고요.
저도, 매거진 각도 조금은 성장하는 모습으로 또 인사드릴게요. 부재중이었던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요, 그 시간 동안 저는 무얼했는지, 어떤 로컬 콘텐츠들을 수집하며 살았는지 천천히 풀어볼게요.
7월부터 9월까진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경험을 통해 내 몸의 신호를 즉시 알아차리는 방법, 내면을 쌓는 에너지에 대해 배웠고요. 10월에는 '생각의뜰채'라는 이름의 출판사 신고를 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1월 현재 저는 로컬수집가로서 여기저기 좋은 콘텐츠들을 즐겁게 채집하며 지내고 있고요, 감사하게도 '생각의뜰채' 이름으로 외주 일을 받기도 했습니다. 1인 출판사로 내는 첫 책은 제 책으로 하려 했는데 뜻하지 않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네요. 그래도 비매품인 책이라 공식적인 첫 책은 제 책이 될 수 있다 여지를 둬봅니다.
이제 매거진 각도 멈춰만 있지 않고 슬슬 시동을 걸 때인 거 같아요. 적절한 시기입니다. 저는 단단해졌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으니까요. 당신에게 이 이야기가 부디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모두의 안녕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2021.11.10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매거진 각 편집장 권진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