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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 Jun 01. 2024

당신이 불행한 것은 당신의 뇌 때문이라는 거짓말

[벌거벗은 정신력]을 읽고 (by 요한 하리)

워낙 도둑맞은 집중력이 화제에 오른지가 벌써 꽤 되었고, 이미 여러 군데에서 나의 귀엽고 하찮은 집중력은 도둑맞은 지 오래길래 이 책을 단숨에 읽었고 그 뒤로 순차적으로 내 집중력 도둑들이 잡히는 대로 나오는로 데스노트에 기록 중이다.


그리고 나서 요한 하리가 또 신간을 낸 줄 알고 단숨에 읽기를 결정한 이 책

[벌거벗은 정신력]

아마 나처럼 낚인 독자분들 꽤나 많겠지. 디자인과 컬러 조합은 참으로 탁월하다. 총천연색의 주황색과 초록색과 같은 폰트의 책 디자인때문에 너무도 망설임 없이 골라졌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살짝 반전이었다. 이 책은 도둑맞은 집중력을 내기 2-3여년 전에 먼저 낸 책이라는 사실. 아마도 요한 하리는 이 책을 먼저 쓴 후에 본인의 우울과 불안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원을 파악한 후에 더 귀납적으로 타고 올라갔고 그 결론이 도둑맞은 집중력을 미디어와 생활 환경에서 찾은 것 같다.


한편,

책 제목을 도대체 누가 지었는지, 이렇게 잘 못 지을수가 있는지 차라리 내가 지은 제목이 훨씬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뒷받침 한다는데 내 새끼발가락 발톱 오른쪽에 튀어나온 못생겼지만 귀여운 애 한조각을 걸겠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요한 하리의 이미지는 엘리트 석학에 분석적이고 통찰력과 날카로운 연구자로 묘사되었는데 몇 년전의 요한 하리는 연약하고 무언가 지켜주고 싶고 늘 우울한 조그만 한 사람으로써 느껴지는 것이 가장 큰 차이 같다. 아무래도 이러한 연구들이 뒷받침 되어 도둑맞은 집중력 책에서 날카로운 비판이 가능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저자의 가족구성원과 저자는 아주 어릴때부터 정신과적인 약물에 일상을 의지해왔다. 그것은 DSM에 수록된 다양한 증상과 딱 맞은 퍼즐처럼증상과 약물의 환상의 조합에 의해 현대인들은 일상을 안전하게 유지해오고 있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그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정교한 사이클에서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신과적인 우울과 불안 역시 신경과학적인 질병에 불과하며 이것도 감기나 여타 다른 크고 작은 감염병과 바이러스처럼 "니 뇌가 생겨먹은 것이" 잘못이며 너는 니 부모로부터 잘못된 유전자를 타고 났고, 니 부모가 우울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그냥 니 뇌 생김새가 그래. 그러니 "이 약을 먹으면 너는 씻은듯이 나을꺼야" 라는 깔끔한 환상에 빠져있다는 것을 차분하고 친절하게 파헤치고 있다.


우울과 불안을 치료하는 오늘날의 닥터들이 제안하는

정석적인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먼저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생활 패턴, 그리고 규칙적인 식사와 주변에 내 결정과 내 생각을 지지해주는 좋은 사람들. 추가로 정신과 약물과 신뢰하는 상담가와의 예견된 주기적인 만남.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너무나 기본적으로 한 템포만 느리게 생각해보면


배고프면 밥을 먹는다.

아프면 병원에 간다.

슬프면 운다.

와 같은 명제와 별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울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뇌 속에 화학적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근거는 없어요. 그 용어는 전혀 말이 안돼요. 우리는 애초에 화학적으로 균형을이룬 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요. 약물은 인공적인 상태를 만드는 거죠" 단순히 화학적 불균형 때문에 정신장애가 생긴다는개념 자체는 제약회사들이 우리에게 약을 팔기 위해 만든 '미신' 이라는 것이다.



또한 책에서는 우울증 약이 임상실험에서 유효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 만들어진, 아주 교모하거나 혹은 허무할정도로 허술한 여러가지 연구 디자인들을 신랄하게 조목조목 비판한다. 우울증의 기본적인 조건들을 제거해나가며 우울증 약을 복용 후에 우울한 정도를 체크한다거나 하는 기만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책에서 이 구절이 이제까지 본인의 뇌 불균형 때문에 이유없이 뇌 탓을 해온 모든 알고리즘을 부드럽게 깨부셔주었다.


우리의 고통이 그저 고장 난 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이야기에 대해 그녀는 "그러한 메시지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유리되고,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서 단절된다" 고 말했다.


우울증은 단순히 나쁜 사건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이 있을 때 발병한다는 뜻이었다. 반면 안정감을 주는 긍정적인 존재가 있다면 우울증이 생길 가능성은 크게 줄어 들었다.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을 때, 배우자가 자신을 지지하고 배려할 때 놀라울 정도로 우울증이 감소했다.

반대로,

가까운 친구도, 지지해주는 배우자도 없는 사람의 인생에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들이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은 75%다. 이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다.


뒤에서 설명하는 여러가지 사례들도 사실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이 책의 매력은 탄탄한 사례와 임상실험 그리고 논리적인 구조였다.


자신의 삶에서 주도권을 잃는다는 느낌이 들 때,

노력과 보상과 균형이 맞지 않을 때,

사람들은 우울해진다.

세상이 나에게 공정하다고 느껴지지 않을때,

나의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노력하고 싶지 않아진다. 내 삶을 항해할 키를 쥔 손의 힘이 빠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것을 이기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낄때 아주 명확하게 우울증에 사로잡힌다는 것이었다. 그저 외롭기 때문에 자위 한번 더 하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연락하고, 그저 그런 사람과 삽시간에 가까워져버린다던지,

술 한잔에 혹은 분위기에 취해 오늘만 날인 것 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모든걸 다 의지할 것 처럼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인간 양식이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가벼운 유희적인 것으로 치부될 것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한 맥락으고 사람의 외로움을 파고드는 사업이야말로 도덕적으로 엄격한 잣대로 운영되어야 하고, 상업적으로 치우치는 것에 대해서 소비자인 우리 스스로 경종을울릴 힘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는 긴장감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 다음 책을 썼나보다)


외로움은 실제로 천천히 인간의 삶을 갉아먹으며 결국엔 그 중간의 척수의 뿌리까지 갉아먹고 공허한 인간의 껍데기만 남아 심각한 우울증에 삶을 잠식당하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자살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다만 이러한 상황들이 천천히 죽여가고 결국 나는 물리적인 몸뚱아리의 유기체의 흐름만 막으면 되는 그 수준까지

가는 것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구나.


그것 뿐만 아니라 저자는 소비주의가 사람들이 주목받고 싶어하는 욕망을근본적으로 자극하여 소비지상주의의 러닝머신 위에서 끊임없이 달리도록 재촉한다 고 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나인투식스 일터에서 피같은새끼들을 떼어놓고 초 단위로 머릿속에 번뜩 번뜩 수없이 많은 걱정들을 하면서도 엉덩이는 직장 의자에 간신히 붙여놓고 해야 할 일들을 허겁지겁 해내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

혹은,

어떤 큰 목적이 있기에 타인에게, 나에게 나는 이렇게 적어도 내앞의 너보다 우위적인 삶을,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끝없이 자위하고 인지하고 강조하는가.


내가 정말로 감정을 나누고 의지하는 상대가 아닌 가상의 상대, 그러니까 SNS상에서의 여러 불특정 다수에게는 내 이야기를 맑고 밝게 할 수 없다.

그러면서 내 삶의 괴리는 점점 넓어지며 현실을 탓하게되며 불안이 야기되며 우울까지 사이좋게 데리고 오는 그 사이클로 흘러가는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다.







책에서는 너무나 신박한 해결책을 제시해준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모두 다 어디서 들어봄직한 이야기들.. 믿고 의지하는 개인보다 단체에 몸을 담궈라, (내 편이 많아지니까) 명상을 해라, 안정된 봉급을 받아라 (이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힘들면 절대로 당신의 뇌 탓, 호르몬 탓, 유전 탓이 아니다. 힘든 상황에 당신이 놓인 것이니 당신을 탓하지 말고 알려진 좋은 방법들을 행하라고 이야기한다.


장엄한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아웅다웅 다투며 살아가는 인간생의 크고 작은 일들이 더욱 심플하게 느껴지며

더 큰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고,

찾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것마저도 의미가 있다고 조용히 개인의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우울과 고난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나직하게 당신 옆에서 잊을만 하면 속삭여주는 책.

그러나 아무런 근거없이 힘내라는 말만 부산떨며 수다스럽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 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러하다. 그러니 너무 슬퍼 말고 가끔씩 너의 눈물도 닦아 줄테니 스스로 탓하지 말고 천천히 일어서자.

일어서기가 힘들면 잠깐이라도 고난의 협곡으로 가는 그 발길을 멈추고 잠깐 그 자리에서 내가 하는 말만 들어줘라. 그리고 당신의 기분은 당신이 결정하라.

라고 말해주는 책.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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