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여느 때처럼 점심식사 후 양치질을 했다. 개운한 기분으로 사무실로 돌아와 핸드크림을 집어 들었다. 크림을 왼손 손등에 쭉 짜서 펴 바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어머, 내 반지!"
사무실에 함께 있던 동료가 내게 물었다.
"반지요? 반지 잃어버리셨어요?"
"그냥 반지 아니고, 결혼반지예요."
절반은 울먹여가며 답한 뒤, 재빨리 가방과 외투를 주섬주섬 만지며 잃어버린 반지를 찾기 시작했다. 내 자리와 사무실 전체를 돌아다니며 바닥을 휘젓고 구석구석을 들쑤셨다. 건물 화장실에도 갔으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직원이 함께 있는 단톡방에 도움의 글을 올려보라는 선배 말에 혹시 이런 모양의 반지를 보시면 꼭 알려달라는 부탁의 카톡도 올렸다. 심각한 사실은 언제부터 반지가 손에서 빠진 건지 그 시점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막막했다.
'도대체 언제 빠진 거지?'
잃어버리고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반지가 끼어져 있던 왼쪽 약지 손가락 주변을 만지작만지작거렸다. 처음 반지를 손가락에 낀 5년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손에서 결혼반지를 빼본 적이 없다. 어쩌다 빠진 적도 없다. 어느새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결혼반지. 그래서일까. 손에서 반지가 없어진 걸 인지한 후로 왼쪽 약지손가락이 허전했다. 그 공허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고 커졌다. 일에 몰입할 수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도 반지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퇴근길.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눈물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얼마 주고 샀더라?'
반지값을 헤아려봤으나 내 마음속에서 그게 얼마인지는 문제가 아니라고 외쳤다. 문득 결혼반지를 처음 남편과 맞추던 날이 떠올랐다. 두 손을 꼭 잡고 예물가게로 들어선 우리 둘은 미소를 머금은 채 반지를 숙고해서 고르고 골랐다.
"이 반지가 딱이다, 그렇지?"
남편과 마음이 통했다. 고심 끝에 마음에 드는 반지를 선택한 우리가 언약의 의미인 반지를 서로의 손가락에 껴주고 행복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정식적으로 반지를 주고받으며 평생을 약속한 결혼식 장면도 떠올랐다. 결혼반지가 생각보다 내게 큰 의미였다는 걸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결혼반지라는 이 작은 물상 하나도 내게 큰 의미로 남아있는데 결혼한 배우자가 곁에서 없어지거나 헤어진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 끝에 얼마 전 아침, 왜 결혼을 또 해서 고생을 사서 한 건지 후회를 곱씹던 내가 생각났다. 남편 때문에 화가 나서 아침 통근길, 원인재역에서 내려서 인천 2호선을 타기 위해 향하는 길 내내,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왜 이 남자인가요? 안 그래도 힘든데, 왜 열세 살이나 어린 배우자를 제게 보내주신 건가요? 아니지. 결혼을 꼭 했어야 했나요? 결혼 같은 거 안 해도 저 혼자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왜 자꾸 제게 고난을 주시는 건가요? 답변을 주세요!'
매일 아침 읽는 성경 대신 분노가 담긴 하소연인지 기도인지 모를 것을 허공에 대고 했었다. 그리곤 손을 꼭 모아 답을 달라고 간곡히 청했다. 그게 엊그제였다.
내 기도에 대한 답이구나. 평소 빼 본 적이 없는 결혼반지가 말도 안 되게 사라지면서, 그로 인해 결혼에 대해 빼곡히 반추하는 하루를 보냈다. 소중함도 깨달았다. 그러니 주님께서 보내주신 답변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내 분노로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남편의 존재가 내게 상당히 크다는 걸. 만약 그가 떠나거나 헤어지기라도 하면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지금의 상실과 공허함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서 몹시 힘들 거라는 걸 잠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때 회사 단톡방에서 톡하나가 올라왔다.
"이러고 혹시 집에서 발견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좋겠다!"
저마다 나름의 염려와 위로를 건네주었다. 고마웠으나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럴 리 없으니까. 손가락 뼈마디가 굵어서 저절로 빠질 수 없는 사이즈의 반지였으니까.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는 심정으로 퇴근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저기, 혹시... 집에서 내 반지 못 봤지? 자기야, 화장실 세면대나 바닥, 안방 화장대 좀 봐줄래요? 책상 위에도."
수화기 너머 어디에도 반지가 없다는 남편의 답변을 돌아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 다시 기도했다.
"아버지, 반지 꼭 찾게 해 주세요. 제발요. 결혼반지잖아요! 찾게 해 주세요."
나는 주님께 되지도 않는 떼를 썼다.
집에 도착해서 안방과 거실, 화장실 세면대 등 내가 거치거나 머물렀던 장소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결혼반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쯤 되면 잃어버린 게 확실했다. 마음이 아렸다. 아픈 가슴을 누르며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먹었다. 하루 내내 쌓인 피로가 밀려와 어서 씻고 자고 싶었다. 샤워 후 화장대에 앉아 양 눈썹이 힘없이 내려간 내 얼굴을 보며 반성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내가 한 결혼, 내 배우자에 대해 품지 말아야 할 생각을 하는 건 아닌데, 난 아직도 철들려면 멀었나 보다. 얼마나 더 살아야 성숙해지려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로션을 다 바르고 일어나 침대에 누우려고 담요를 걷었다.
쨍. 눈이 부셨다. 갑자기 눈부신 빛이 이불을 걷은 침대 매트리스 위에 놓여있는 작은 무언가를 휘어 감쌌다. 결혼반지다! 하루 종일 찾아 헤맨 반지가 진열장에 놓여 있듯이 곱게 놓여 있었다. '하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걷어낸 담요를 한 손에 꼭 쥔 채로 얼어붙어버린 내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온종일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나 자신을 책망하고 결혼을 다시 돌아보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여보, 반지 찾았어!"
격한 감동에 흥분된 목소리로 남편에게 소리쳤다. 남편이 놀란 얼굴로 어디서 찾았냐고 물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을 훔치며 평소와 다르게 와닿는 반지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왼쪽 약지 손가락에 꼈다. 이건 하늘에 계신 주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그렇게 밖에 해석이 안된다. 아버지께서는 오늘도 부족한 날 이렇게 또 키워가신다. 불평을 해도, 떼를 써도 어떻게든 사랑으로 키워가신다. 이날, 나는 한 뼘 더 자랐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