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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12. 2024

'한국이 싫어서'라는 말의 의미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개인적 리뷰.

*해당 글은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리뷰로 줄거리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가 싫은 분들은 영화를 본 후 읽어주세요.


한국에 사는 게 좋아, 싫어?라고 물으면 뭐라 답하시겠어요? 내 주변 지인들은 대체로 '좋다'고 말했으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밤늦게 다녀도 총기 위협을 받지 않아서, 아플 때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서, 떡볶이랑 치킨 등 좋아하는 음식이 많아서 등등. 반대로 '싫다'고 하는 이유엔 다음과 같은 얘기들이 나왔다. 보여주기식 문화가 심해서, 세상에 뒤처지는 걸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라, 혐오가 만연해서. 써놓고 보니 좋아하는 이유는 굉장히 구체적이지만 싫어하는 이유는 모호해서 더 숨 쉬듯 느끼는 것들이다. 재밌는 건 모든 이들이 약속한 듯 "한국은 돈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하기야 프랑스는 돈 많은 걸 과시하면 스포츠카에서 끌어내린다는데 우리는 자랑할수록 선망의 눈길이 붙으니.


개인적인 의견을 얘기하자면 한국에 사는 건 나쁘지 않다. 좋게 느껴지기도 한다. 애매하게 말하는 이유는 장점과 단점이 한 덩어리로 뭉개진 채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점이 치안이지만 여성 치안은 오히려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건강보험은 좋지만 건보료는 점점 오르고 있다. 한식 그까이꺼 안 먹어도 상관없지 않나 해도 해외에서 사 먹는 한식은 기묘하게 로컬의 맛을 빗겨 나 역시 어떻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결국 내리는 결론은 대단히 좋아서 사는 것도 아니요, 대단히 나빠서 떠날 것도 아니다. 어학연수도 저어했던 내게 사는 나라를 선택한다는 관념은 꽤나 급진적이기도 하고.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그런 면에서 꽤 자기 주도적이고 확신이 있다. 어쩌면 확신을 가질 만큼 지지리도 한국이 싫었는지 모른다. 그럴 만도 한 게 한국에서 계나의 사정은 여의치 않다. 매일 지옥의 출퇴근을 감내하지만 일의 의미는커녕 회사 비리나 감싸줘야 하고, 태생이 부유하게 태어나 편한 소리만 하는 남친과의 대화는 어긋나기 일쑤다. 부모님은 재개발 이후 입주할 아파트를 위해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겠다 고집하고 회사 입사는 했으니 이제 결혼하고 애만 낳으면 된다는 말을 한다. 그 사이에서 계나는 말 그대로 '동태 눈알'을 하고 종종거린다. 무언가 진행은 되는데 계나는 수시로 멍하고 감정 표현은 오직 화낼 때뿐이다. 스스로를 경쟁력이 없는 자라 칭한 계나에게 한국의 삶은 앞을 향한 달리기가 아닌 뛰어봤자 제자리에 힘만 빠지는 러닝머신이다.


결국 계나는 뉴질랜드로 떠난다. 왜 뉴질랜드냐는 질문에 더듬거리며 답한 이유는 따뜻한 기후가 좋아서. 아메리칸드림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민을 결심한 계나에게 뉴질랜드의 삶은 고단하다. 음식점 서빙, 택배 물품 집하, 한인 게스트하우스 등을 전전하며 자리를 잡아가지만 나이를 이유로 연장자로 대우받을 것을 종용하고, 지잡대를 나와 미래가 없어 뉴질랜드에 왔다는 재인에게 "나는 홍대야"라며 은근 거리를 두는 등 불현듯 툭툭 튀어나오는 한국인 바이브는 계나가 한국을 떠났어도, 그런 게 싫어서 떠났음에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재인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의 외양과 행동을 보고 '술 먹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오랜 시간 생각했지만 후에 재인이 생활고로 일을 했다고 했을 때 깨달은 계나의 표정처럼. 싫다고 단번에 벗어날 수 있었다면 그건 애초에 한국인이 아니었다는 신호 아닐까.


계나의 뉴질랜드 이민은 여러 에피소드로 행복하게 완성되진 않는다. 친구의 일탈 행동에 연루되어 벌금을 물고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인도인 친구의 프러포즈 겸 비즈니스 파트너 제안에 흔들리고, 과외를 했던 유학원 일가족이 사망하고(맥락상 심신불안증세를 보였던 아버지가 주도한 사망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간간히 연락을 이어오던 고시생 친구의 죽음으로 계나는 혼란을 직면한다. 게다가 오랜 안정을 준 전 남자친구와의 재회까지. 만일 이 상태로 머무른다면 현실적이긴 하나 조금은 실망스러웠을 텐데, 결국 다시 떠나는 계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계나가 몸서리치게 싫었던 한국과 다시 찾았을 때 봤던 한국은 달랐을까. 행복보단 돈을 좇아야 한다며 일갈했던 한국의 계나는 뉴질랜드에선, 아니 다른 곳에선 달라졌을까.


이 영화는 원작인 소설을 읽지 않고 접해서 그런가 친절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계나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보여주는 시퀀스는 혼란스럽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어딘가 붕 뜬 느낌이었는데 희한하게 그게 나쁘지 않았다. 뭐랄까, 명품 브랜드에서 비싼 가격에 내놓은 니트인데 의도적으로 실이 다 풀려있는 것처럼 장면에 착 붙지 않고 엉성하게 붕 뜬 연기와 연출이 계나가 해외에 갔을 때 목도했을 자신의 모습 같아서 일견 의도된 부분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처음엔 '헬조선'의 현실을 압축한 영화인줄만 알았는데, 한국이 싫다는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했다. 어쩌면 계나는 위치가 어디든 그냥 행복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공시생 친구와 롯데리아에서 나눴던 환상 속 대화처럼 계나는 따뜻한 게 좋은데, 그저 한국이 너무 추워서 한국이 싫었는지도.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는데 그걸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자리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떠나야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떠난 곳에서 유토피아를 찾을지 험지를 발견할지 모르지만 결국 떠나지 않는다면 모를 일이다. 행복도 찾아본 자가 누릴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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