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하는 사람에게 마케팅을 하라하시다니요

홍보랑 마케팅은 다르다고요. 아.시.겠.어.요?

by writer Lucy

언제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 옛 고릿적 글에도 적은 적이 있지만... 홍보와 마케팅은 다르다. (글 참고: https://brunch.co.kr/@writerlucy/32) 광고홍보학과를 나왔단 말에 "그럼 광고 만드시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는 시절은 지났지만, 마케팅팀에 홍보 담당자 1~2명 정도 들어가면 구색 맞췄다 생각하는 임원들이 아직 즐비한 마당에 이런 차이점을 매번 짚고 넘어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어쨌든 홍보랑 마케팅은 엄연히 다른 구역으로 묶이는 개별적 존재라고요. 이런 거미줄 친 얘기를 왜 다시 꺼내 쓰냐면.


최근 홍보인들에게 마케팅을 요구하는 사례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분명 나는 '홍보직'이라고 해서 간 회사인데 갑자기 유튜브를 하래? 여기까진 그래, 브랜딩과 PR을 하는데 인플루언서를 활용하거나 채널을 확장하는 건 도움이 되지 하고 받아들였는데.. 영상이 올라갔는데 매출이 바로 안 오른대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요. 그럼 제 표정은 어떻게 되겠어요.


-99372523.jpg?type=w420 네? 이익이요?

황당 그 자체가 되는 거예요. 홍보의 장기적 목적은 이익 창출에 있겠지만 단기적 목적은 브랜드 이미지 창출과 타겟과의 관계 형성이란 점을 전혀 모르는,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는 질문에 조금 황당해지려 하는데.. 이런 얘기가 다시 들려온다.


"물론 00님이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브랜드에 도움이 된다는 건 알겠는데 결국 중요한 건 이익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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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이 중요하시면 영업과 리테일, 마케팅에 더 신경 쓰면 되지 않을까요? 싶지만 그럼 분명 홍보와 마케팅이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받을 게 뻔하다. 이렇게 마케팅 업무를 줄줄이 하다 보면 마케팅 인재로 쨘하고 변신!..이라면 꿀이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지라 나의 정체성이 혼미해지고 업무의 경계는 흐려지고 퇴사가 말리고.. 그렇게 되는 것. 여기에서 홍보인들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는 다음과 같다.


1단계: 당황. 홍보 콘텐츠 발행하는데 발행하자마자 수익을 내라고요? 이게 무슨 호떡 사줬는데 어묵 내놓으라는 격이야.

2단계: 혼란. 홍보와 마케팅이 다른가? 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부터 시작해서 이걸로 돈을 어떻게 벌란 거지? 하는 실제적인 고민까지 지금 내 모습 마치 카오스 그 자체.

3단계: 자괴감. 홍보로서는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없는 거야? 왜 다들 홍보를 이렇게 괄시하고 폄하해!!!!!! 난 왜 홍보를 택해서 이런 대접을 받나!!!!!

4단계: 수용. 뭐 어쩌겠어요. 먹고살아야 되는데요.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정체성 따져서 뭐 합니까. 하하.


1단계에서 4단계까지를 수용하여 어찌어찌 살아남을 방도를 찾았다면 리스펙 드립니다. 그럼 대체 이런 사단이 왜 벌어진 것이냐.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업무 트렌드가 변했다. 이전의 홍보는 언론 홍보 등을 중심으로 관계성에 집중하는 측면이 강했지만 업계 전반에서 '정량적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 중심으로 업무가 재편되면서 홍보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압박이 강해졌다. 정성적 성과처럼 애매한 거 말고, 성공인지 아닌지 측정할 수 있는 결괏값만 가져오라 이거야. 둘째, 플랫폼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이전에는 신문기사, 매거진 등의 전통 매체의 역할이 컸기에 그들이 주장하는 임프레션, 미디어 밸류가 중요했지만 요즘은 개개별 인플루언서나 채널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 그리고 그 모든 결과물은 수치화될 수 있다. 셋째, 플랫폼 시스템이 수익화 구조 위주로 돌아간다. SNS든 포털 사이트든 모든 웹 서비스가 수익화를 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어떤 광고에서, 콘텐츠에서, 커뮤니티에서 유입되어 구매하는지가 트래킹 되어 발행된 내역의 성과를 측정할 수가 있다. 이 모든 게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니 어떤 게 돈이 되고, 안 되는 콘텐츠인지 구분하기 한결 수월해졌고 이익 극대화가 목적인 기업 입장에서는 돈 되는 걸 하라고 닦달할 수밖에.


근데 왜 그걸 마케팅팀에 안 시키고 홍보직에게 시키나요..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하나뿐이다. 마케팅에 더 큰돈을 쏟아붓기도 싫고, 홍보직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걸 더 잘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 있는 인재 활용하는 게 낫지, 언제 사람 뽑고 대행사 쓰고 그러냐고. 그럴 바엔 홍보 담당자 시키는 게 낫지. 물론 본인 입장에서는 괘씸한 마음인걸 알지만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가면 갈수록 홍보직을 뽑는 티오는 줄어들지만 '마케팅'이 붙은 직군은 어딜 가나 환영받고, 실제로 산업 트렌드가 이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마케팅직으로 옮기는 게 미래를 위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홍보를 할 때 이게 브랜드에 효과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애매모호하고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사람이라면 결괏값이 바로 출력되는 마케팅이 더 적성에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의지가 있을 때지 등 떠밀려 시작한 일이라면 조금 낙심할 수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얘기들도 다 비슷한 이야기다. "아니, 아무것도 없는데 다짜고짜 수익 내라고 하면 내가 신이냐?!?!??" 이제 홍보직은 마케팅도 모자라 신까지 되어야 하는 걸까. 아이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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