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야 무엇이든 상관없을 걸
2년 반의 공백을 깨고 회사로 돌아간다고 말했을 때 주변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엇갈렸다. 나와 같이 직장생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쉬는 내내 직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냐며 묻던 한 지인은 예상과 달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냐며 다그치자 "너는 우리 직장인들의 희망이었다고! 직장인이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라며 한숨 섞인 푸념을 내쉬었다. 2년 반 동안 돈 없다, 할 거 없다 징징대던 내 모습은 '다시 이직한다'는 한마디에 모두 까먹어버린 건지. 하지만 그 말을 하기까지 지인이 내 과거를 함께하며 그렸을 아름다운 이상이 무언지 느껴버렸기에 나도 할 말을 잃은 채 끓는 마라탕 냄비를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또 다른 희한한 반응을 보인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덜컥 퇴사를 했다, 혼자 일을 벌이다, 다시 면접을 보고 끝내 합격해 버린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나 다시 회사 간다"라며 상황을 응축해 버린 내게 "너 지금 대드냐"라고 물었다. 대들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황당한 얼굴로 되묻자 "네 미래를 엄마 아빠가 보장해 줄 수 없으니까 지금 다시 돌아가겠다는 거잖아"라며 응수했다. 내가 언제 엄마아빠한테 내 미래를 맡겨놨는데?라고 반문할 수도 없을 만큼 어이가 없었다. 어쩌면 엄마 역시 지인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었을 수도. 매일 사람들에 치이고 찌든 얼굴로 돌아와 죽상을 하고 마지못해 내일을 그리는 내가 아닌, 2년 반 동안의 모습처럼 항시 편안하고 평안한 내 모습이 이어지리라는 어떤 기대를 품고 있었을지도.
두 사람,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기대 혹은 응원을 뒤로하고 직장으로의 복귀를 결심한 건 사실 큰 이유가 아니었다. 크기보다는 중요도의 문제라고 볼 수 있으려나.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하던 일은 생활을 영위할 만큼의 소비는 허락했으나 그 이상을 꿈꾸기엔 너무 앙증맞았다.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은 내 꿈에 더 많은 디딤돌을 쌓으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 내가 택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 가장 쉬운 건 회사에 들어가는 거였다(더 어려운 방법 중에는 도둑질, 로또 1등 되기 등이 있었다). 물론 이런 취업난에 쉬이 이직이 가능했던 건 운의 영역에 가까웠으나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다니 다행이지.
돈 이외에 부수적이지만 중대한 이유가 있다면 '더 지나면 직장 생활을 하기 힘들 것 같아서'였다.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리고 대외적으로나. 일단 신체나이가 높아질수록 출퇴근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뒷받침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혼자 일하는 상태가 오랜 시간 굳어져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함께 일하는 감각을 잊게 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대외적으로는 여기에서 더 사회적 공백이 생기면 회사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적어놓고 보니 어쩌면 이미 들어버린 나이에 대한 압박감이라고 볼 수 있겠네. 흑흑.
이유가 뭐가 됐건, 시간은 흘러가고 흘러간 시간만큼 경험 혹은 경력이 쌓인다. 그것들은 주관적이기도 하지만 꽤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서, 내가 어쩌지 않고도 나중에 쌓인 것들을 보고 나서야 '이런 게 있었지!'하고 체감할 수 있는 것들이니. 오늘도 차근차근 쌓이지만 추후 발견하게 될 것들을 막연히 그리며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이유는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택한 결정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