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직장인이었던 무엇에게

너는 어떤 꿈을 꾸었니

by writer Lucy

어렸을 적 꿈을 묻는 질문에 '직장인'이라 답한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었을까. 아마 대통령, 우주비행사, 선생님, 경찰관 등 어린 날의 내가 보기에 가장 멋있고 근사해 보였던, 그렇지만 실체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직업 중 하나를 겨우 답하며 눈을 반짝였겠지.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은 이런 거다. 그들 또한 결국 수많은 직장인들 중 하나였다는 것. 출근을 하는 방법이나 장소(우주비행사는 비행선을 타고 우주정거장으로 출근할 수도 있으니!)만 다를 뿐 그들 역시 무거운 몸을 끌고 특정 장소에 도착한 후, 큰돈이 오고 가는 중요한 계약이나 회의부터 꿈꾼 것과 전혀 상관없는 잡다한 업무들까지 처리한 후 칼칼한 안주와 소주를 찾으며 퇴근할 테니. 그렇게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이 그런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보내니까. 어쩌면 평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등골이 섬찟해지지만.


홍보인의 하루는 보통 이렇게 흘러간다. 아침엔 브랜드가 언급된 기사가 있는지를 훑고, 대응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매체사에 연락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르지만 호소 혹은 읍소에 가까운 무언가를 끝내면 이제 수많은 서류들과의 전쟁이다. 보도자료, 결과 보고서, 기획서, 미디어 대응을 위한 답변서, 혹여 이벤트가 있다면 거기에서 발표할 구두 자료, 인터뷰 서면 답변지까지 입과 손으로 나갈 모든 자료들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검수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은 어쩌면 홍보업계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게, 제품에 특정 성분을 '더했다'라고 하는 것과 '첨가했다'라고 하는 건 소비자들에게 전혀 다른 뉘앙스를 주기에 모든 문서를 점검할 때 촉이 한층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홍보업계에서 살아남는 사람들, 홍보를 '좀 한다'하는 사람들은 이 사소한 차이를 무시하지 않았던, 무시하려야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느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와 손을 벼리고 벼려 문서를 완성했다면 이젠 입에 단내가 날만큼 커뮤니케이션을 할 차례다. 대상은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할 경우 클라이언트가 될 때도 있고, 인하우스 홍보팀에서 근무할 경우 사내 여타 팀이 될 때도 있다. 대상과 상관없이 '설득'은 이 커뮤니케이션에서 사용되는 원 툴이다. 중립적인 정보는 이만큼인데, 바로 이게 내가 생각한 이 제품 혹은 서비스의 특이점이야. 이 특이점을 (대체로 무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타겟은 이 그룹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니?를 최대한 맛깔나게, 매력적이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 홍보인의 숙명이다. 예전에 홍보업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한 선배가 '홍보는 조개와 같다. 열심히 입을 열다가 불리한 지점 혹은 순간에는 입을 싹 닫으면 된다'라고 한 적이 있다. 옛날엔 진리처럼 통용되는 말이었지만 요즘에는 무응답이 곧 인정이 되어버리기에 이에 대한 위기관리도 필요하다.


tempImagex8Moim.heic 머피의 법칙은 위기관리에도 통용되는 법.


이렇게 머리, 눈, 입, 손을 모두 사용해 탈수기 돌린 마냥 너절한 몸이 되었을 때 즈음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내 생각이 곧 브랜드의 의지이자 언어가 될 때쯤 퇴근길에 몸을 실으면 회사에 머무르는 잠시 잠깐의 시간 동안 다른 내가 끼어들었다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 든다. 공중으로 날아가버린 오늘의 나였던 무엇은 과연 나였을까, 나를 빙자한 아예 다른 인격체였을까. 무엇이든 하얗게 퍼져나가는 김처럼 쉬이 사라져 버린 그것에게 묻고 싶다. 너는 어떤 직업을 꿈꾸었느냐고. 진정 이게 네가 원하던 너의 모습이었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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