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넘어서는 '용기'
공자가 말하길,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그 뜻을 관찰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 행동을 관찰해라, 3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효자라 말할 수 있다!"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89페이지
글을 읽다가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리고 공자 님의 말씀에 질문이 생겼다. 올바르지 않은 아버지의 삶을 따르지 않는다고 불효라는 말인가.
"아버지의 도가 바르지 않다면? 그래도 따라야 하고 그게 효일까?"
질문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계속 읽어나갔다. 내 질문에 바로 답이 나왔다.
송나라 휘종 사례가 나온다. 고지식한 아버지의 철칙을 지키며 정책을 펼쳤고 결국 송나라는 파멸했다고.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따르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아버지의 정신, 가치관, 사람 됨됨이, 원칙 등이 옳지 않다면 말이다.
경제관념 없고, 이기적이고, 가정에 무책임한 아버지의 길을 어떻게 따를 수 있나.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게 불효라면 어쩔 수 없다.
이 책의 저자 판덩은 '3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효자라 말할 수 있다!'를 시대에 맞도록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한다. 저자 본인은 '도'를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가풍이나 가훈, 가치관 같은, 추상적인 것으로 이해한다고.
부모가 시대 흐름을 잘 모르더라도 정직해야 한다거나 사람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거나 하는 가훈이나 교훈 등은 얼마든지 전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게 뭘까. 적어봤다. 가난, 이별, 빚, 배다른 동생들, 억울함, 분노, 버림받음, 정신적 상처 등등. 그리고 계속 적어봤다. 아버지가 평소에 나에게 말했던 것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과 행동규칙들을 떠올려봤다.
근면, 성실, 정직? 이건 학교에서 본 건가? 헷갈린다.
청결, 절약? 아 그래!
아버지는 신경질적으로 깔끔했다.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화를 냈다. 아버지 입에서 두 번 이상 같은 말 나오게 하면 매를 맞았다. 밥 먹을 때 돌이 나오거나 반찬에 머리카락이라도 있으면 밥상을 뒤엎었다. 배고파 죽겠는데 밥상을 엎어버리는 바람에 밥도 못 먹고 그릇들이 널브러진 방을 치워야 했다. 깨끗한 밥은 밥그릇에 잘 담아 부엌에 가서 먹었다.
절약, 용도에 따라 휴지 칸수가 달랐다. 평상시에는 한 칸만 써야 한다. 코 풀 때는 두 칸, 화장실 갈 때는 세 칸이다. 잘 접어서 요령 있게 뒤처리해야 한다. 화장실에 갈 때는 신문지를 마구 비벼 사용했다. 그게 더 편했다.
그래,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것 중에 긍정적인 건 청결과 절약이다. 좋은 단어다. 하지만 나에게는 강박과 결벽증으로 남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올바르지 못한 삶을 보여줬고, 좋은 습관인 깔끔함과 절약정신은 강압적이었기 때문이다.
물건 각이 잘 맞춰져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슈퍼를 가도 남의 집에 가도 꼭 한 번씩은 정리했다. 친구 집에 가서 방 정리해 준 적도 있다. 삐뚤어진 걸 보고 지나칠 수 없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리하지 않으면 찜찜한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스물세 살에 첫아이를 낳았다. 큰 아이 키울 때,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았다. 9살 아래 동생을 업고 다니다가 친구들과 놀이하느라고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다가 죽도록 맞았던 기억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름한 집에 살았어도 물건은 칼같이 정리했다. 매일 털고 쓸고 닦고 햇빛에 소독했다. 환경, 공기에 예민하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숨을 잘 쉬지 못했다. 코로나 때 마스크 쓰는 게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했으니까. 헬스장, 의료센터, 비행기, 열차, 버스 안 등 사람 많은 곳에는 마스크를 꼭 껴야 했다. 안 그러면 기침 나고 귀와 목이 부어올랐다.
아버지의 올바르지 못한 삶을 따라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몸에 배어 있던 거다. 환경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아버지가 나에게 한 것처럼 나도 아이에게 물려주었더라.
큰 아이가 손을 자주 씻는다. 코로나 때는 소독용 알코올을 사용해서 손과 팔을 씻어냈다. 피부가 다 벗겨지기도 했다. 피부 장벽이 무너져서 조그만 자극에도 빨갛게 부풀어 오른다. 함께 살지 않아서 전혀 알지 못했다.
좋은 습관도 강압적으로 물려주면 상처가 된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아버지에서 나로 나에서 아이에게 대대로 이어진 청결과 절약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보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행동이라도 나에게 어떻게 인식되었느냐에 따라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강박적인 습관이 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일부러 지저분하게 살아보기로 했다. 치울게 보여도 행동 대신 쳐다보기만 했다. 게으름뱅이가 되어 보는 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망므도 편하고 몸도 편했다.
지금 내 주위는 난장판이다. 마치 아버지한테 반항이라도 하듯이 물건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하도 지저분해서 날 잡아 각 잡고 정리하지만 곧 흐트러진다.
예전에는 꺼낸 자리에 그대로 가져다 두었지만 지금 옆에 아무 데나 던져 놓는다. 책도 종류별로 꽂아야 하고 노트도 색깔별로 줄 세워야 했다. 지금은 노트가 어디에 섞여 있는지 모를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예전 같으면 빗자루 맴매 감이다.
아버지의 습관이 나에게는 강박이 되고 결벽증이 되었지만, 이제는 이겨냈다. 한 단계 걸러져서 아이에게 전해진 결벽증과 강박도 차차 나아지고 있다. 아이도 곧 나처럼 엉망진창인 곳에서도 멀쩡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제 서른이 넘었으니 한 십 년 만 더 있으면 나처럼 되지 않을까. 스스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정렬하는 게 나쁠 건 없다. 누군가에게 강요하지만 않으면 된다. 아버지처럼.
글을 읽으면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나를 기억하고, 변화된 나를 느낀다. 글을 쓰면서 나의 효에 대한 정의를 내려본다.
어버이에 대한 효란,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라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잘못된 것은 걸러내고 이겨내는 용기가 아닐까. 나는 아버지의 삶을 상처로 물려받았지만, 이제는 넘어서고 삶의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당신의 빛나는 삶을 응원합니다.
자기 치유 성장 치유포유
셀프 치유법을 전하는 치유언니
치유성장 에세이스트 최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