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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자라 나를 공감해 주는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의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

by 치유언니


"엄마, 이쪽이에요." "엄마 다 왔어요, 여기요."


딸이 손가락을 모으고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방향을 가리키며 안내했다. 공무원인 딸은 어른들을 모시는? 일이 몸에 배어있다. 귀빈 대접받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다. 30대에 이혼 후 프랜차이즈 미용실에서 일할 때,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인데 겉으로는 웃어야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내 딸도 그러겠지. 아무리 힘들어도 거래처나 상사 앞에서는 마음을 감추고 공손하게 행동하겠지.


딸이 두 번 말하게 하지 않으려 정신 차리고 따라다녔다.




나와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도 네이버 지도 길을 놓치지 않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찾는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다음 목적지를 미리 서치한다. 차 타는 시간, 걷는 시간, 먹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알차게 사용한다.


딸은 올해 5월에 결혼했다. 연휴 중 하루가 비어 부산 오는 기차표를 끊었단다. 덕분에 선물 같은 하루를 보냈다. 오전 11시 부산 도착, 해운대 기요항에서 카이센동 먹고, 바닷가 구경했다. 해리단길 골목길을 다녔다. 딸이 좋아하는 소품 가게에 들르고 수제 마카롱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사 먹었다.


저녁에는 금련산역 근처에 있는 숯불 곰장어 집에서 청하 한 병을 나눠 마시며 산 곰장어를 숯불에 구워 먹었다. 소화 시킬 겸 근처 복합 문화 공간에서 소품, 문구류, 책 구경했다.


우리는 금련산역에서 헤어졌다. 나는 일광역으로 딸은 부산역으로 갔다. 예전에는 부산역에서 맞이하고 배웅했다. 부산역에서 일광역까지 한 시간이 넘는다. 딸이 걱정되었나 보다. 자기도 나도 서로 부담 되지 않는 거리인 중간 지점에서 헤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했나 보다. 부산역에서 저녁 8시 40분 출발하는 SRT 타고 대전으로 갔다.



딸과의 데이트, 학창 시절 친구 따라다니는 기분이었다. 내 친구들은 부자였다. 학교 앞 문방구부터 시내 아트박스나 음반가게, 서점에 나를 데리고 갔다. 친구 뒤를 따라다니며 구경했다. 그때는 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예쁜 쓰레기라고 생각할 만큼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다.


딸은 소품 쇼핑을 좋아한다. "예쁜 쓰레기들이 참 많네." 했더니 발끈한다. "아니에요~. 책상에 잘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언젠가는 버릴 예쁜 쓰레기." 주고받는 농담 속에 딸과 우정이 싹트는 느낌이다.



성격을 잘 알기에 서로 불편하지 않게 배려한다. 맛집에 먼저 가서 줄서기, 대기 시간이 너무 길면 무작정 기다리지 않고 다른 곳으로 장소 이동하기, 특별한 찻집 찾기 등 죽이 척척 맞는다. 조금 다른 부분도 서로 양보하고 함께 시간 보내는데 의미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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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에 취향 저격 찻집을 발견했다. 유리 통창으로 광안대교와 바다가 보였다. 딸은 말차를 마시고 나는 동방미인을 마셨다.


어쩌다 동생, 그러니까 딸에게는 이모의 엄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딸은 나와 동생의 엄마가 다른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아차,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딸이 깜짝 놀랐다. 엄마가 그런 삶을 살았다는 걸 처음 알기도 했고, 놀랍고, 우리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어쩔 수 없는 미안함'을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의 삶이 힘들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딸도 동의했다.


딸이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내가 책에 쓰고 있다고 했더니 자서전 같은 거냐고 물었다. 나를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쓴다고 했더니 궁금하다고 했다. 더 알고 싶어 하길래 책 사서 보라고 했다. 독자 하나 확보다.



딸이 여섯 살 되던 해에 헤어졌다. 잠시 내가 데리고 있다가 아빠에게 보냈었다. 아이들과 주기적으로 만나기 위해 아이들 아빠를 설득했다. 아이들과 이런 날을 만들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잡고 살았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고 버텨냈다.


내가 할 일을 찾고, 성실하게 살다 보니 딸이 스스로 나를 찾아주었다. 결혼하고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걸까?


여섯 살 된 딸아이를 보낼 때, 생살 도려내는 것 같았다. 보내고 나서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죽이고 싶은 고통을 안고 산 지 24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은 만났다. 항상 내가 먼저 만날 약속을 잡았었는데, 이번에는 딸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딸이 자라 나를 공감해 주는 친구가 되었다.


자기 삶과 나의 삶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딸에게서 예전의 나를 봤다.

예전에 나는 불완전했다. 내가 힘들 때 도와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완전해졌다. 딸에게 어떤 일이 생겨도 나는 딸을 도와줄 수 있다. 그로 인해 예전의 나도 치유할 수 있을 거다.



다행입니다. 딸이 온다고 할 때 시간 내어줄 수 있어서.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입니다. 딸에게 나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서. 서로에게 우리를 공유할 시간을 갖게 되어서. 이런 날 오기를 바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날이 올 거라는 바람이 이루어져서. 선물같이 딸이 친구가 되어 와줘서. 우리를 공유하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만약, 아이들과 헤어져 있거나, 문제가 생겨 고통의 순간을 보내고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원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기쁨을 미리 충분히 느끼길 바랍니다. 그러면 꼭 이루어질 겁니다.

실망과 좌절은 잠시만 하고, '원하는 그날'을 미리 느끼고 그 순간을 위해 오늘을 삽시다.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당신의 빛나는 삶을 응원합니다.

자기 치유 성장, 치유포유

셀프 치유법을 전하는 치유 언니

치유성장 에세이스트 최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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