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담 Sep 28. 2022

휴직자의 용돈은 얼마가 적절할까?

맞벌이 부부, 아내가 휴직을 선택하고 나서.



맞벌이 부부,

아내는 휴직을 선택했다.


아내는 오늘도 운동을 마치고 자신을 위한 커피 한잔을 결제했다.



비록 3천 원에서 1500원으로 할인 이벤트를 하는 작은 카페의 커피이긴 했지만 자신만을 위해 커피값을 지불했다. 오늘 아침에 단톡방에서 받은 소중한 스타벅스 블랙 글레이즈드 라테 기프티콘은 나중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때 쓰기 위해 아껴두기로 한다. 테이크아웃을 위한 커피를 살 때 스타벅스에서 사는 것보다는 스타벅스에서 머무를 때 사용하는 것이 몇배는 더 가치있다는 자신만의 척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근을 할 때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면 사용했을 것이다. 오전 운동으로 이미 충족된 소소한 뿌듯함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진 일회용 테이크아웃 커피 컵은 나중을 위해 미뤄둘 여유가 있었다.



남편은 집에서 매일 커피를 마시는 아내를 위해 페트병에 담겨 나오는 스페셜티 아메리카노를 집으로 2박스 배송 주문했다. 회사 아이디카드에 충전된 식대에서 지불하기 위해 아이디카드의 잔여 포인트를 결제할 수 있는 임직원 전용 쇼핑몰에서 구매했음은 물론이다.



"나를 위해 한 달에 50만 원 정도만 사용하면 안 될까?"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남편은 쿨하게 그렇게 하라고 했다. 결혼 초부터 긴 시간을 용돈 15만 원을 사용하고 엄청난 절약을 한 것은 아니지만 사치를 하지 않으면서 직장생활에도, 육아에도 나름대로 충실했다. 열심히 맞벌이 생활을 이어온 탓에 지금은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얻게 된 고마움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아내의 육아휴직은 육아휴직이지만 육아휴직 기간 동안에 육아휴직 급여가 나오지 않는다. 법정 육아휴직 1년은 모두 사용했다. 직원 복지 차원에서 사용할  있는 무급 육아휴직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남편은 결혼 이후 절반의 시간 동안 15 원을 개인 용돈으로 사용했고 나머지 절반은 25 원을 사용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제법 오래 한 맞벌이 부부인 것을 생각해보면, 얼핏 듣기에도 많은 금액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20   대학생 용돈도 20 원이었던  같은데..



물론 아내, 남편 둘 다 모든 지출을 25만 원 안에서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옷을 사거나 필요에 의해 쇼핑을 할 때는 신용카드로 공동 생활비에서 지출을 한다. 그러니 25만 원은 순수한 사적인 용돈인 셈이다. 친구나 직장 동료를 만나 밥을 사 먹고 맥주 한잔을 하고 커피를 마시는, 소소한 개인적인 지출을 하는 금액이다. 전에는 핸드폰 요금과 후불교통 결제금액도 이 용돈 안에서 지불했다. 요 근래에는 걸어서 출퇴근을 하면서 교통비 지출 항목이 자연스럽게 제외되었다. 25일에 용돈을 이체하면 남편은 다음 달 25일까지 25만 원에서 언제나 돈이 남았고 아내는 언제나 25일이 되기 전에 남은 용돈을 다 쓰기 일쑤이다.





휴가 쓰는 날,

주말은 본격적으로 돈을 쓰는 날이 되곤 했다.

쓸 시간이 없어서 돈을 쓰고 싶어도 못쓰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직장인이라면 이 말에 공감이 갈 것이다. 아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소소하게 돈 쓸 곳도 많아졌다. 출근할 때는 매일 마시는 커피도, 건강을 위해 선택하는 샐러드도 구내식당에서 아이디카드에 매달 충전되는 식비 포인트로 모두 해결할 수가 있었다. 이제는 커피도 샐러드도 소소한 간식도 용돈에서 지불해야 한다. 시간이 많아져서 운동도 시작했고 가끔씩은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사 먹기도 한다. 혼자서 카페에서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사서 먹기도 하고 사람들과 주고받는 선물도 많아졌다. 25만 원이라는 용돈은 턱없이 부족해졌다.



처음엔 마지막 출근했던 한 달치의 급여를 남겨놓았던 돈에서 보충해서 지출을 했는데, 요즈음은 말없이 생활비에서 10만 원씩 가져가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편에게 오픈한 것이 한 달에 50만 원이었다. 비록 육아휴직 기간이 2년 반 포함되었지만 직장생활을 17년을 이어왔는데 매일매일 돈을 안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귀찮아지기도 했음이다. 그것보다는 스스로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소소한 카페에서의 지출과 영감을 주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 가야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매월 읽고 싶은 책을 사는 비용도 제법 나간다.



수영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어느 분은 휴직을 하고 다시 강습받으러 왔다는 아내에게 반가움을 표하며 동시에 이런 당부를 했다.


"일 해야지,

그냥 휴직만 하고 그만두지는 말고 복직 꼭 해.

여자는 일이 꼭 있어야 돼.


시간이 흐르고 애들도 다 크니까,

자기 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 보이더라."


아내는 남편이 사둔 페트병 커피 두 박스를 모두 마실 때 까지는 카페 출입을 좀 줄여볼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만난 인생 선배님의 그 진심 어린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휴직자가 아니라 일을 그만두고 벌이가 온전히 사라진다면 어떨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24살 이후 제일 좋았던 것이 경제적인 선택권이 엄마 아빠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경제권을 남편에게 위임할 수 있을까. 자존감이 높진 않더라도 자존심은 굉장히 강한 아내이다. 왠지 아찔한 기분이 든다. 꼭 커피값 때문은 아니지만 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나만의 일은 회사 밖에서 꼭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을 한번 더 해본다.



금액이 너무 컸나?

다시 계산해볼까.

한 달에 사용할 용돈의 액수를 고민해보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굳이 숨기려 하지 않을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