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동력, 목마름과 차오름.
우리는 끝없이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린아이도 중학생 아이도 40대에 접어든 나 역시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목마름과 차오름이 있다.
월급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20대에는 월급을 위해서 일한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고 나의 시간을 써서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나는 필요한 존재가 되면서 동시에 내가 필요한 것을 취할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통장에 내역이 찍히고 잔고의 숫자가 점차 채워져 가는 만큼 마음도 차올랐던 그 시절이 어쩌면 가장 순수하게 일을 하고 만족감이 컸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쁘게 하던 일을 그만두었을 때,
쉬는 시간을 가지고 멈춤을 가질 때
그제야 우리는 내 안의 진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일의 만족감이란 1차적으로는 월급이지만 그다음으로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이상 직장에서 할 수 없게 되는 때가 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찾아온다.
원치 않는 부서 변경, 기대했던 것만큼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했을 때, 나 스스로 더 이상 불태울 의지가 남아있지 않을 때, 의지하던 동료가 떠났을 때..
일을 하고 있지만 내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주 찾아온다. 월급이라는 보상이 주는 뿌듯한 만족감은 내 손에 남는 것이 고작 월급밖에 없다는 절망으로 한순간에 추락하고 만다.
오로지 월급만 남는 일이
가장 쓸쓸하고 비참한 노동이었다
글을 쓰려는 의지가 가장 크게 솟아오를 때는 더 이상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이가 가까이에 없을 때일지도 모른다. 의식하지 않았더라도 내 소리를 어디에든 꺼내지 않으면 버틸 수 없겠다는 마음이 차오르고 만다. 그때야 말로 내 안에 진짜 변화가 꿈 트는 시간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날 수 있다면 스스로 찾아감으로써 다시 그곳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도저히 내 의지로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분명히 달라졌는데, 내 달라진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땐, 아니 없는 것 같다고 느낄 때는 지독한 외로움으로 결국 내 이야기를 스스로 하게 된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메아리로 맴도는 것 같다 할지라도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꺼내게 된다. 내 진짜를 꺼내지 못하면 우리는 시들어버리고 만다. 몸도 마음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방법은 간단하다. 글을 적어보는 것이다. 알아볼 수 없게 뒤엉킨 생각의 조각들이 글자의 형태를 갖추는 순간에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거나 아무런 거름망없이 감정의 응어리를 마구 쏟아내고 싶을 때는 혼자 노트에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그저 지금 나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을 뿐이라면 생각을 단 한 줄이라도 열려있는 공간에서 꺼내어보면 좋겠다. 아무에게도 닿지 않을 것 같았던 메아리에 응답을 받는 그 순간을 경험하면 달라진다.
더 이상 달라진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친구나 지인을 붙잡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나'라는 사람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지나치게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를 꾸며내거나 포장하지 않아도 내 모습 그대로 도움을 줄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진심이 담긴 가볍고 편안한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된다.
내 글이 닿는 곳에 숫자가 많을 필요는 없다. 단 한 명이어도 상관이 없다. 아니 어쩌면 단 한명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 하루키가 열 명 가운데 한 명의 마음에 든다면 괜찮다고 말한 것과 같다. 한 명의 마음에 드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앞부분에 그가 소설가가 되기 전 가게를 운영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안에서 그의 글쓰기가 어떻게 세상을 사로잡았는지 힌트를 찾아볼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을 짓게 할 수는 없다', 쉽게 말하면 그런 뜻이 된다.
가게를 경영하고 있을 때도 대체로 같은 방침이었다. 가게에는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그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상당히 좋은 가게다, 마음에 든다, 또 오고 싶다'라고 생각해 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열 명 중 한 명이 단골이 되어준다면 경영은 이루어진다. 거꾸로 말하면 열 명 중 아홉 명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그 '한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마음에 들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경영자는 명확한 자세와 철학 같은 것을 기치로 내걸고, 그것을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비바람을 견디며 유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가게를 경영하면서 내가 몸소 체득한 것이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66p / 무라카미 하루키]
글쓰기는 잘 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문학이라는 예술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잘 쓰고자 더 노력해야 하지만 처음부터 단번에 예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도 지금 살아있는 날뛰는 생각들을 붙잡고 모아서 글과 문장으로 옮기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