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갑자기 휴직. 변화의 시작은 이사로부터.

근속 만 12년 워킹맘. 육아휴직을 마음먹은 이유.

by 윤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그해 크리스마스 날. 하늘에는 비인 듯 눈인 듯 한 진눈깨비가 살살 날고 있었다. 크리스마이면서 일요일. 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 느낄 새 없이 진눈깨비를 맞으며 아파트 1층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가 올 때 이사를 하면 잘 산다고 하던데, 겨울이라 쏟아지는 비가 내리지 않아서 다행이지."


비가 오면 가구가 다 젖지 않을까 걱정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사센터 직원들은 부지런히 트럭에서 짐을 내려 엘리베이터로 나르고 있었고 대편 사다리차 사다리를 거실로 연결할지 안방 베란다로 올릴지 위치를 보고 있었다. 안방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하자마자 이내 안방 베란다 새시 창문을 떼어내고 사다리를 뻥 뚫린 베란다 연결했다. 삿짐 중 부피가 큰 가구 다리를 타고 빠르게 이사할 집으로 올라갔다.


아이 하나와 맞벌이 부부. 그렇다. 우리는 아이 초등학교 입학 전 그 해에 거주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고 주말마다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주말이면 차를 타고 집을 나서서 동네를 살펴보고 부동산 문을 두들겨 집을 알아보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지금 살던 곳부터 교통 좋은 곳, 학군 좋은 곳, 한창 건물이 올라가도 있는 새 아파트 등등 후보군이 많았는데 최종적으로 매수비용과 저학년 아이 케어하기에 좋은 직장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그리고 진눈깨비가 날리던 일요일의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그 집으로 이사를 들어가는 날이었다.


원하던 대로 방 3개에 화장실 2개의 30평대 아파트. 앞이 트여있어 해가 잘 드는 집.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는 곳 동네에 새로 조성된 길은 반듯하고 환했다. 아이와 자전거 타기에도 딱이었다. 아이가 다닐 초등학교가 집에서 내려다 보일 정도로 가까웠고 등하굣길도 볼 수 있었다. 직장에서 가깝고 초등학교도 가깝고 안전한 하교길까지. 우리 가족에게 너무 잘 맞는 조건의 집이었다.


딱 한 가지 문제 빼고 말이다.


직장에서 가까운 곳을 골랐지만, 실은 가깝지가 않았다.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지만 지금 당장 회사로부터는 멀어졌다. 직장이 1년 후에 이사할 예정인 곳으로, 회사는 이사를 안 했는데 우리만 먼저 이사를 간 셈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직장이 멀어졌다.

대중교통으로 편도 1시간, 자가운전해서 50분. 그 길 차 안에서 직장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던 아이와 께였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더라도 휴직할 마음이 없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복귀하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 짧은 6개월의 공백만으로도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일반 사기업에서 육아휴직은 여유 있는 사람들의 사치로 느껴졌다. 요즘엔 돌봄 교실이 잘 되어있다고 하니 돌봄교실과 학원에 보내거나 정 안되면 오후 시터를 구해봐야겠고만 생각하던 터였다.




"수인이 입학하면 나 육아휴직 해야겠어."


사람은 의지보다 환경에 훨씬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두 달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편도 1시간 왕복 2시간 막히는 길 운전해가며 아이를 옆에 태우고 출퇴근다보니 어느 순간 나는 각하고 고민할 필요도 없이 미 휴직을 마음먹고 있었다.


남편도 그 시기에 부서를 옮기면서 출퇴근 시간이 나보다 더 었다. 양가 부모님 댁은 멀었고 지방이었다. 믿고 아이를 매일 맡길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를 케어하면서 부부가 둘 다 장거리 출퇴근을 매일 한다니. 정시출근만 있었지 정시퇴근이란 없었던 업무가 많고 야근도 잦았던 과거 그때엔 시터를 구하지 않는다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쉬었다 왔을 때 내 자리가 남아 있을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회사는 입사 이후 언제나 위기였다. 사업부는 몇 년째 인력감축을 이어오고 있었고 앞날이 불안하고 불안한 그 속에서 난 평범한 조직 구성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입사를 하고 근속 만 12년을 채운 그 해.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해 이사를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이 멀어졌다. 아이는 엄마손이 가장 많이 간다던 초등 1학년을 앞두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잠시 하던 일을 좀 쉬어보라는 보이지 않는 인생의 표지였을도 모르겠다.


온갖 걱정과 불안들이 미처 머릿속에서 뒤엉킬 새도 없이 휴직을 결정했고, 근속 12년 직장인 생활을 멈추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일 직장으로부터,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멀어져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