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2년 차 회사원에서 그냥 엄마가 되어보았더니.

회사를 멈춰보다.

by 윤담

29살의 어린 엄마는 만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아이와 차를 타고 남편과 5시간 걸리는 시댁으로 향했다. 기저귀와 내복은 당연했고 분유와 젖병, 아기욕조, 부스터, 아이의 이불까지도. 아이의 모든 물건을 차에 가득 실었다. 출산 6개월 복직을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복직을 하고 금요일 퇴근길이면 우리 부부는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KTX보다 저렴한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서. 일요일 오후에는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지하철을 타고 불 꺼진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아이를 만나기 위해 지방 시댁에 내려가 주말을 보내고 다시 출근을 위해 올라오는 버스 안은 차분했고 조금 피곤했다. 자주 울지 않았다. 아니 거의 울지 않았다. 평일 저녁 퇴근을 하고 잠시 비는 시간이면 유독 마음이 허전해서 인형 만들기 공방에 다니고, 그림을 그리러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출근을 해야 했는데 어린 아기를 믿고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가장 안전한 선택을 했다. 상황을 슬하기엔 대안이 없었고 시간이 흘러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자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초등 입학을 앞두고 육아휴직을 한 서른 중반을 훌쩍 넘어 후반으로 들어선 엄마는 그 애달팠던 때의 기억들이 흐려져 회사 업무에 에너지를 쏟으며 지냈다. 육아휴직 직전까지.



육아휴직을 결정했지만,

육아휴직을 제대로 준비하지는 않 셈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에 필요한 물품들과 책가방이며 입학식에 입을 옷 등을 먼저 준비했고, 그러한 일들을 분주히 마무리하고서야 나는 그럼 남는 시간에 뭘 하지? 란 질문이 떠올랐다. 맡고 있던 업무의 인수인계를 논의하고 사무실 짐을 정리하고 아이의 입학과 함께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육아휴직 첫 날이 아이의 입학식이었다. 신혼 때 수영을 배우려다 임신을 하면서 다 배우지 못했던 일을 떠올렸다. 집 가까운 체육센터 수영장에 수영 기초반에 등록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와 주방정리와 거실 청소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수영장으로 갔다. 수업이 없을 때는 어느 날은 설레는 마음으로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고, 같은 반 엄마들과 티타임을 가지기도 했다. 아이들 수업 마칠 시간이 다가오면 각자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 앞으로 갔다. 아무 약속 없이 빈 시간도 있었다. 대체로 비슷한 날들이 이어졌다.









편안한데 밍숭맹숭하다.

내 삶에 뭐가 빠진 거지?



아이 등원 후 엄마들의 티타임이나 브런치는 아이를 서울로 데려온 후부터 쭉 나의 로망이었다. 나는 사무실 자리에 앉아있는데 어쩌다가 같은 어린이집이나 동네 또래 엄마들끼리의 평일 오전 카페 타 가진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나는 참석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몇 년을 애타게 바라고 바라던 로망의 오전 자유 시간이 휴직을 하면서 내게 생겼다. 그 시간이 매일 생겼는데, 자유시간이 생긴 것 만으로는 기대한 만큼의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에 빠르게 집안 정리를 마치고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적당히 편안했고, 뭔가를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날이면 심심하고 아까웠다. 이제 막 입학한 1학년은 하시간이 더 빨랐다. 오전 자유시간을 경험해보니 그 시간은 무언가 목적성이 있는 일을 하기에는 짧았다. 그렇다하여 불만은 없고 문제도 없었는데 만족감 또한 느껴지지 않는 밍숭 맹숭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 안에서 나는 계속해서 내가 해야 하거나 할 수 있을 법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맸다. 요리스쿨에 가서 요리를 배워와서 아이와 남편에게 만들어 그날 저녁메뉴로 제공하고, 홈베이킹을 도전해 집에서 오븐으로 브라우니나 호두파이를 만들기도 했다.


늘 시간이 모자란 삶을 살아왔는데, 그 시간이 생겼다고 만족스러울 수 없는 삶이라니. 묘하게 허전한 상태로 휴직의 시간이 흘렀다.


"공인중개사시험준비나, 영어공부라도 해보면 어때?"


"아침에 학교가면 점심먹고 금방 하교시간이야. 그럴 시간이 어딨어?"


내가 집에서 노는 줄 알아! 매일 저녁밥 차리는거 안보여! 라고 소리를 빽 지를뻔 했지만, 그 말은 하지 않고 대답했다. 남편이 여러번 반복해서 내게 뭔가 하기를 권했을 때는 소리를 지른 것 같기도 하다. 집에서 아이 등하교에 정신이 없고 그날 저녁 메뉴만을 고민하는 내가 안타까웠을 남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모처럼만에 일을 쉬는 휴직 시간에 책을 펴고 공부를 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원래도 부지런함과는 거리가 멀고 느긋하고 행동이 느린 편인데 괜한 자존심에 고집까지 센 편이라 내가 스스로 하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거나 외부의 압력(-이를테면 월급)이 없다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 성향이다.


목적성을 옅게 띈 무언가를 하고 지내기는 했다. 수영과 요리강습. 수영을 배우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몸의 힘을 필요로 했고 즐거웠으나 그것 만으로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발차기 요령을 배우는 초보였으니까. 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며 시간을 보내온 분들은 그럼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걸까? 내가 아는 몇 안되는 육아를 하는 지인들 중에서 자기 관리를 잘 하고 책도 많이 읽어서 만나면 늘 이것 저것 배우고 돌아오는 분이 떠올랐다. 마침 나처럼 아이가 하나이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했고. 그분에게 오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물어보며 조언을 구했다.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고 약속이 있거나 참여해야 하는 여러 활동들이 있어 뭘 해야하지- 란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쁜데~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때 나는 절실했지만 참 실례인 질문이었다. 어쩌면 회사원에게 점심시간에는 운동을 하는게 좋을까요 영어공부를 하는게 좋을까요? 뭘 해야 더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본 것과 비슷했을지도? 난 그만큼 엄마로서의 시간에 적응을 못하고 붕 떠 있는 셈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나는 내게 무엇이 빠졌던 건지, 그때 그 마음은 왜 그랬던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회사원에서 엄마가 되어보니 내 삶에서 갑자기 빠진 것

: 바로바로 눈에 바로 보이는 성과, 성취감.


더 중요한 놓친 것

: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나도 몰랐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갇혀있던 생각의 틀.

: 성과가 없는 시간들이 무의미하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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