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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민 May 12. 2020

옛것의 고집스러움이 주는 것은

에세이 #1


 전자기기는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사는 시대를 정보화 시대로 만들었다. 기존의 쓰던 것들을 ‘옛것’, ‘낡은 것.’, ‘오래된 것.’이라고 적는다면,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 등장한 것들은 ‘신식의 것.’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보화 시대를 맞으며 새롭게 등장한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e북 리더기’와 ‘전자책 애플리케이션’이다.

 10년 전만 해도 지하철에서는 교통카드보다 종이로 된 지하철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태블릿 PC가 없었던 그 시절, 지하철 내에는 종이책과 신문을 들고 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에서는 그러한 옛것들이 하나에 단독으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고, 사람이 거의 없는 지하철에서는 그것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해주었다.

   

 최근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고풍스러운 외관의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난 정보화 시대에 맞춰 종이 지도를 꺼내 그 카페를 표시하는 것이 아닌 스마트폰의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꺼내 표시해두었다. 카페는 빌라가 즐비해 있는 동네 골목길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다소 이질적이면서도 빌라들과 한껏 어우러져 보였다. 가볍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생각으로 카페에 들어갔을 때는 뭔가 신비로운듯한 느낌이 내 몸을 감쌌다. 카페 내부는 최근의 소품들, 길게는 30년이 넘어 보이는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고 시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몽환적인 느낌을 주었다. 심플한 베이지 톤의 카페, 아기자기하고 색감이 예쁜 카페 등이 주목받는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이 카페에는 규칙이 없는 소품들이 다소 조잡스러워 보이게 여기저기 나열되어있었다. 20년 전에 있던 골동품 가게 같은 느낌의.

 카페 창가 자리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시키고 책을 꺼내 읽었는데 어째서인지 집에서 읽을 때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카페에 앉아서 읽을 때보다, 서점에서 읽을 때보다 더 감각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손가락 끝으로 작은 물방울들을 건드리고 터트렸을 때 느껴지는 감각처럼.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따듯해서였을까. 카페 사장님이 틀어놓으셨던 클래식 음악이 책과 어울려서였을까. 카페에 있는 2시간 동안 손님이 나밖에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골동품 느낌의 ‘오래된 것’의 카페가 주는 하나의 느낌이 있어서여서일까.    


 책을 다 읽고 잠깐 휴식을 취하다 들고 온 필름 카메라로 카페의 흔적을 남기고 있을 때 사장님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그건 인화할 거지요?”

 요즘엔 스캔만으로도 바로 사진을 볼 수 있기에 인화라는 단어가 생소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반사적으로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사진을 확인하냐는 사장님의 질문에 나는 필름 카메라가 요즘에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지 설명해 드리며, 스캔만으로도 내가 찍은 사진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얘기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나는 인화하지 않으면 사진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했고 나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그 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했다.

 ‘내 핸드폰에 일본 여행 사진이 6,000장이나 있었는데 그게 다 날아갔어. 핸드폰에 열이 나는 거야. 터질까 봐서 바로 처치했지. 그래서 그 핸드폰에 있는 사진 하나도 못 옮겼어.’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사장님은 자신의 얘기를 연달았고 나는 ‘인화’만이 사진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장님의 생각이 고집스럽다고 느꼈다.

 사장님은 내가 나가는 순간까지도 사진을 인화하는 것에 관해 얘기를 했는데, 그런 사장님의 고집스러움이 ‘옛것’을 고집하는 내 고집스러움과 닮지 않았나 생각했다.     


 최근 e북 리더기와 전자책이 발전하면서 종이책보다는 간편하게 들고 다니며 볼 수 있는 전자도서가 주목받고 있지만, 나는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며 굳이 수고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종이책에 더 손을 뻗었다. 왜 종이책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책을 읽는다는 게 시각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책을 읽는 순간에는 촉각과 후각도 느껴야 진짜로 읽는다는 느낌이 들어.’

 책을 넘길 때의 느낌, 그 넘어가는 순간에 코끝에 다가오는 종이 냄새. 작가가 손가락으로 적었을 그 작은 글씨들을 느끼는 내 눈과 손과 코를 고집하는 마음.    


 유독 오래된 것에 집착하는 우리의 고집은 다시 ‘낡은 것’, ‘오래된 것.’으로 넘어가며 필름 카메라를 다시 집어 들고, 집에 굴러다니던 MP3에 이어폰을 연결하여 귀에 꽂으며, 집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꺼내 들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고집은 옛것의 정과 옛것의 기분을 다시 느끼게 해주며 지나온 것들을 잊히지 않게 상기시켜준다. 나는 그런 옛것의 고집이 있기에 현대를 살아가면서 지친 마음을 위로받음이 아닐까 싶다. 지난날, 시간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바쁘게 흘러가는 시대에 맞춰 나오는, 빠른 템포의 아이돌 노래에서 잔잔하고 여유로운 김광석의 음악으로, 한 번 보고 지워버릴 수 있는 핸드폰 사진에서 현상을 해야만 볼 수 있는 필름 카메라로,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전자책에서 시각과 촉각과 후각을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종이책으로 넘어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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