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합니다:)
제 플레이리스트 속 아끼는 곡들을 꺼내 소개합니다! 저에게 큰 위안을 주었던 노래들이 그대들 마음 구석에도 자그마한 따스함이 되었으면.
1. 오르트구름 - 윤하
'오르트 구름'은 2021년 11월 발매된 윤하 앨범 <END THEORY>의 3번 트랙이다.
작년 11월 닷새의 제주 여행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몇 곡이 지나고, 윤하의 ‘오르트구름’이 흘러나왔다. 심장소리 같은 기타 스트로크가 깔린 전주를 듣는데 정말 불현듯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이 노래는 여행의 시작에 어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장 달리고 싶어지는 경쾌한 멜로디인데, 게다가 원래 자주 듣던 아주 익숙한 곡이었는데,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따뜻해졌다. '아니, 나 왜 눈물이 나지?'
벅찬 맘으로 이 궤도를 벗어나
생각해 보면, 오래도록 돌고 있던 궤도를 벗어난다는 건 아주 두렵고 힘든 일이다. 궤도를 타고 있으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가던 길을 항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궤도를 벗어나는 것이 '힘듦'이 아니라, 오히려 '벅찬 마음'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고된 시간이 있었던 걸까. 그 벗어남을 위해 모아두었을 응축된 힘이 노래에서 흘러나와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녹록지 않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이의 단단함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시시각각으로 날아가버릴 일상의 반짝이는 것, 그리고 녹슨 것들까지도 잘 잡아두고 싶었다. 2021년 봄부터 시작했던 매일 일기 쓰기는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훗날에는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지, 좋은 이야기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긴 한지 당최 알 수 없었던 때였지만 말이다. 매일 조금씩 나의 문장을 화면 속에 가두다 보면 언젠가는 종이 위에 잉크로 새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결국 나도 단단한 뿌리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에게 어떤 용기를 건넬 수 있는 이야기를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얻게 된 어떤 것들이 흘러서 누군가에 닿을 수도 있을 거라고 자주 바랐다.
높은 고도 위 커다란 철덩이 안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그런 마음들을 떠올렸고, 나의 이 궤도를 벗어던지는 것이 두렵지 않을 어떤 미래를 그려 보기도 했다.
누구도 본 적 없는 낯선 우주 속에
겁 없이 뛰어들어
2. 행진 - 들국화
'행진'은 1985년 9월 발매된 들국화 앨범 <들국화 1집>의 1번 트랙이다.
바이닐 음악에 입문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은 거의 없지만 그냥 특별히 좋아하는 앨범들을 LP로 하나둘 장만하는 것에는 꽤 재미를 붙였다. 이사하면서 발견한 아빠의 낡은 옛 LP들이 있고, 요즘 굿즈처럼 구성해서 예약 판매를 하는 LP를 주문하기도 했다. 또 바이닐샵에 가서 좋아하는 팝가수들의 LP를 살 때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스무 장 쯤 소장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구매한 LP인 들국화 1집을 가장 좋아한다.
LP는 한 면 전체가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재생을 위해 바늘이 올라가며 내는 철커덕 소리와 재생이 끝나 바늘이 내려가는 철커덕 소리까지. 두 번의 철커덕 소리와 그 사이의 모든 음들이 20분 남짓의 노래 한 곡으로 느껴진다. 특히 들국화 1집의 side A는 '행진'으로 시작해서 '축복합니다'로 끝나는데, 총 다섯 곡의 흐름이 정말 너무나 좋다. 정말 좋다는 말이 더할 나위 없는 표현일 정도로.
이 노래의 전주는 비교적 경쾌한 피아노 음과 함께 '행진~' 하는 읊조림으로 시작하는데, 조금 무거운 톤의 전인권 님의 가창이 뒤를 잇는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그러면서 점점 힘찬 행진을 시작하는 듯이 악기들과 가창이 고조되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노래를 쭉 듣고 있자면, 엄청나게 유쾌하거나 활기차지 않지만, 묵묵히 오래 걷는 행진에 함께하는 기분이 든다. 그게 마치 우리 각자가 삶을 걸어나가는 모양과 닮은 것도 같다.
아주 옛 노래이지만 여전히 유명한 노래이기도 해서 이미 알고 있는 곡이었는데, LP로 들어보기 전에는 대단히 집중해서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레코드로 들으니 왠지 더 집중해서 듣게 되었고, 멜로디나 악기, 가창과 가사가 좀 더 구체적으로 닿았다. 노래의 진가를 알게된 것만 같았다. 사실 내가 왜 이 앨범을 나의 첫 LP로 선택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미지의 끌림 덕에 앨범 전체를 톺아 들을 수 있었고, 왜 이 앨범이 100대 명반에 속하는지도 알 것 같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 앨범이 세상에 나온 지 30년을 훌쩍 넘어 40년에 가까워지는데,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는 노래들로 남아 있다는 건 정말로 멋진 일이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것들이 있고, 그 여전한 것들이 존재하는 덕에 오래 묵은 위안을 얻는다.
3. 무얼 훔치지 - 이승윤
'무얼 훔치지'는 2016년 6월 발매된 이승윤 0집 <무얼 훔치지>의 12번 트랙이다. 원작자 이승윤 님의 요청으로 현재 음원 사이트에서는 내려진 상태고, 이승윤 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들을 수 있다. (https://youtu.be/QTe3zSSAPc4)
'ODG'라는 유튜브 콘텐츠가 있다. 이승윤 님이 거기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세 명의 초등학생과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었다. 그들과의 대화 끝에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https://youtu.be/BbAKsEXW4mg) 이 영상이 올라왔을 때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있었는데, 인적이 드문 어느 계단에 앉아 눈물을 훔치며 이 노래를 들었다. 이 노래 안에는 열등감이 가득하면서도 그 열등감을 지니고 다음을 향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지금은 어둡고 아프고 후미진 '나'만이 덩그러니 있지만, 그럼에도 다음에 올 것들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힘이 느껴진다.
날짜들보다 오래된 발자국처럼 노래가
신발 아래서 들려와 포기하려 했는데
낡은 마음에다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와
왜 내가 바라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1월 26일에 발매될 <꿈의 거처>라는 제목의 이승윤 2집은 티저로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었다. 뮤직비디오 티저에 나온 어느 댄서의 춤, 세 작가에게서 받은 <꿈의 거처>라는 이름의 그림 세 점, 세 시인에게서 받은 노래에 대한 코멘터리, 어느 애니메이터가 만든 모션 커버까지. 아주 다양한 작품이 그 노래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꿈의 거처>는 아티스트 이승윤이 지은 노래지만, 아마 그 안에 있는 부분들은 어떤 춤과 어떤 그림과 어떤 시와 어떤 노래로부터 왔을 것이다. 또 <꿈의 거처>로부터 온 어느 춤과 어느 그림과 어느 말들이 있다. 건너오는 마음과 건너가는 마음을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노래가 지닌 힘 이상의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서로의 것을 훔치면서도 새로이 다른 것을 만들어가는 그 마음들을 보며,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게 한다.
이 노래를 들으며 내가 여기저기에서 훔쳐온 것들을 다 덜어내고 나면, 최후에는 나에게 무엇이 남을지 걱정하면서도, 결국에는 누군가의 무엇을 훔치지 않고는 나 역시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도 했다. 그러니 나는 이승윤의 많은 것들을 오래, 촘촘히, 귀하게, 자주, 감사히 훔치고 훔칠 것이다. 훗날 누군가에게 나의 것들이 훔쳐질 수 있도록 바라고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