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고
가까운 친구 Y는 ‘비혼 주의’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태라면 결국에 비혼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연애를 하지 않은지 꽤 되었고, 연애를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딱히 노력하고 싶지도 않은 상태라고 해야 할까. (연애와 결혼은 별개지만, 보통은 결혼을 하려면 연애부터 시작해야 하니) 그렇지만 언제나 가까이에 친구들이 많았으면 하는 전형적인 외향형 인간이기 때문에 친구들이 모두 결혼을 하면 누구랑 놀아야 하나 걱정하곤 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비혼인 친구들에게 나중에 같은 건물에서 살자고 '프러포즈'하기 시작했는데, 그 건물은 이름하여 ‘해피타운’. 나중에 좀 더 나이가 들면, 비혼인 친구들과 함께 출자금을 모아 서울 근교에 땅이나 건물을 사서 주거 공동체 ‘해피 타운’을 짓겠다는 것이 Y의 꿈이다. 날로 고공 행진하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 해피 타운을 언제쯤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Y는 여러 친구들에게 꾸준하게 프러포즈하고 있다. ‘너도 해피타운 들어올래?’ 하면서.
좀 더 어렸을 때 상상했던 30대의 내 모습은 막연하게나마 결혼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남편’이라는 존재가 있고, ‘아이’라는 존재가 있는 모습. 그러나 막상 진짜 30대가 된(지 3년째인) 지금의 나는 딱-히 결혼에 대한 현실감이 없다. 결혼하고 싶은 애인을 만났던 적도 없고, 현재 연애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결혼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의무감은 더더욱 없다. ‘결혼 안 할 거야!’라고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잔소리를 차단하고자 집안 어른들에게는 결혼하기 싫다고 말해 뒀다. 그래도 슬쩍 끼어드는 잔소리가 없지는 않다.) 대단히 결혼이 하고 싶었던 시기, 아니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대단히 만나고 싶었던’ 시기를 지나기도 했다. 아직 Y에게 ‘해피 타운’에 들어가겠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어쩌면 나도 출자자 중 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어쨌든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친구들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간 여러 친구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결혼은 일단 준비부터 만만치 않았다. 일단 어마어마하게 큰돈이 들어가며, 무언가를 기계적으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고, 당사자 외의 많은 이해관계를 헤아려야 하는 것들. 그나마의 재미로 여겨지는 드레스 피팅이나 웨딩 촬영 같은 것은 내가 그다지 재밌어하는 영역이 아니기도 했다. 결혼 후에 만나는 다양한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 시가 혹은 처가와의 관계, 자녀 계획, 육아로 인한 커리어 불안정 등 - 나는 매일 한두 시간 이상은 온전히 혼자인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만으로도 결혼은 나의 영역이 아닌 것만 같다. 어쨌거나 시작부터 다양한 어려움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그 세상에 발을 내디딘 이들이 아주 용기 있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만큼이나 ‘비혼으로 사는’ 것도 못지않게 멋진 일이다. 오만 사람들에게 받는 ‘결혼’에 대한 질문이나 질책을 나의 몫으로 가지고 오지 않는 것,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더라도 그것을 나의 불안으로 삼지 않는 것, 사회에서 요구하는 퀘스트를 나의 과제로 여기지 않는 것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면면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두 작가에게서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각자의 삶’의 일부분을 ‘우리의 삶’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들이 참 다정하고 유쾌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의 방식을 천천히 이해하고, 인정하고, 채워 나가는 모습은 나를 향한 무언의 응원이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앞으로 내가 삶의 모양을 어떻게 빚든 무엇을 선택하든 결국에는 잘 걸어 나갈 수 있으리라는 용기가 슬며시 솟았다.
물론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어서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은 인생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그래서 해피타운에 입주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과는 관계없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빚는 다양한 삶의 모양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나름의 멋짐에 박수를 보내며, 그 속에 자리한 각자의 용기를 잊지 않고 싶다. 우리 각자의 삶은 각자의 모양대로 ‘해피’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