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부터 선자씨는 엄마에게 늘 듣는 말이 있었다.
" 여자도 꼭 직장이 있어야 해. 남편이 주는 돈으로 생활하면 더럽고 치사해도 이혼도 못하고 아무 소리도 못하고 산당께"
남편에게 생활비를 타서 쓰던 전업주부였던 선자씨 엄마는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하고 난 다음날이면 선자씨에게 꼭 이 말을 하셨다. 가난한 시골집 7남매 둘째로 태어난 선자씨 엄마는 선생님이 꿈이었으나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할 수 있었기에 늘 한이 많았다.
일종의 세뇌였던 걸까. 선자씨는 결혼 후에도 일하는 여성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1남 2녀의 둘째로 태어난 선자씨는 둘째이고 맏딸이라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 치이고 서러울 때도 종종 있었지만 교육에 있어서는 든든한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 선자씨는 45살 서울시 공무원이다. 9급으로 입사하여 18년차인 선자씨는 벌써 6급 팀장이 되었다. 그동안 진급을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 덕에 동기보다 빠르게 진급할 수 있었다. 남편과는 늦게 만나 36살이라는 나이에 늦게 결혼했지만 노산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도 금방 생겼다.
사실 선자씨의 원래 꿈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끼도 많았던 선자씨는 고등학교 시절 연극부에 들어가 연극부 후배와 선배들에게 꽤나 인정을 받았었다. 하지만 중소도시에 살고 있던 선자씨에게 서울에 있는 연극영화과 대학입시의 문은 쉽지 않았고 점수에 맞춰 행정학과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반짝 반짝 빛나던 10대의 모습은 사라지고 배우의 꿈도 까맣게 잊혀질 무렵 어느새 4학년 졸업반이 되었다.
취업이라는 큰 난관에 어찌할 줄 몰랐던 선자씨는 부모님 성화에 못이겨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2년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선자씨는 결국 서울시 공무원에 합격하게 되고 그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인지 어쩐지도 모른채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