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바로 급식시간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선생님도 이 시간을 제일 기다린다는 걸 아이들은 알까. 남이 해주는 밥은 원래도 맛있지만 특히나 급식은 영양선생님께서 5대 영양소를 신경 써서 짠 식단표로 만든 음식이라 더 맛있게 느껴진다. 아침을 굶거나 저녁을 대충 먹어도 급식 하나라면 몸에 미안함이 덜하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급식을 먹기 위해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식 먹기 바로 전 수업시간은 급식실에 얼른 뛰어가고 싶어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기분이다. 아이들도 급식시간이 다가오면 배가 고프다며 아우성이다. 특히 식단표에 치킨이나 맛있는 케이크 같은 디저트가 나오는 날이면 더더욱 그렇다.
수업이 끝나고 손 씻고 오기가 무섭게 번호순으로 아이들 줄을 세운다.
‘오늘은 제발 빨리 가보자.’
마음은 이리 급한데 아이들은 배고픔도 잠시 잊고 저마다의 사정으로 눈치 없이 줄을 제대로 서지 않는다. 옆 반 친구들과 인사하느라 느릿느릿 손 씻고 오는 아이들, 손 씻고 오며 복도에서 서로 얽혀 장난을 치며 도무지 오질 않는 아이들, 줄을 섰긴 섰는데 친구들과 장난치고 떠드느라 몇 번이고 인원수를 다시 파악하게 만드는 아이들, 물통 챙기느라고 줄에서 다시 이탈한 친구들, 그 사이에 또 무슨 사소한 다툼이 생겼는지 일러바치는 아이들. 그러나 배가 고픈 아이들 몇몇과 눈치 빠른 몇몇은 이들에게 얼른 줄을 서라고 성화다. 이때 가장 빨리 줄을 세우고 출발하는 나만의 노하우는(노하우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숫자를 세는 방법이다. 아이들이 모두 줄서기를 기다리다간 급식시간이 다 끝나고 말 것이다.
“10,9,8,......3,2,1. 출발!” 아이들도 그제서야 “어엇!” 하며 부랴부랴 줄에 합류한다.
“선생님. 현우 집에 갔어요?”
반에서 제일 급식을 잘 먹는 준석이가 묻는다. 제일 잘 먹는다는 의미는 반드시 두 번은 꼭 급식을 리필하는 아이라는 뜻이다.
“응. 현우. 집에 갔지.”
열이 나기 시작한 현우가 보이지 않자 궁금해서 질문하는가 싶었다.
“선생님. 현우 너무 안됐어요.”
“그치? 얼른 나아야 할텐데......”
“아니요. 오늘 뿌링클 치킨 나오는 날인데 못 먹어서 너무 안됐어요.”
표정 보니 진심이 느껴진다.
“아 그치....... 뿌링클... 진짜 안됐네. 풉!”
친구 몸 걱정보다 뿌링클 치킨을 못 먹는 것이 더 안쓰러운 맑고 투명한 통통 참새 같은준석이. 이런 사소한 말 한마디가 집에 돌아와서도 혼자 웃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급식을 먹을 때는 급식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를 때가 많다. 특히 저학년 담임을 할 때는 더욱 심한데 디저트로 짜먹는 요거트가 나오는 날에는 가위를 들고 26명의 요거트를 따줘야 한다. 짜먹는 요거트는 이해가 가지만 생수병을 매번 따줘야 하는 아이들은 제발 물통을 가지고 다니길 바랬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힘주면 열 것 같았지만 선생님이 따주는 맛나는 물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마음으로 웃으며 생수병을 열어주었다.
급식시간에 제일 난감한 일은 급식을 먹지 않겠다고 떼를 부리며 가지 않는 아이가 있을 때다. 이유도 도통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안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면 내 몸은 하나인데 나는 어찌야 하나 고민이 된다. 일단 다른 아이들을 얼른 급식실에 데려다주고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급식실 계시는 영양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께 도움을 청한 뒤 후다닥 교실로 돌아온다. 급식실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를 달랜다. 나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이유일지라도 본인에게는 무척이나 큰 일이다. 우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 지우개가 없어졌음을 급식시간이 되어서 깨달았다. 지우개를 잃어버려서 입맛도 잃어버린 것이다.
“우준아. 많이 속상하지? 다시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혹시 못찾더라도 너무 속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도 우리 밥은 먹는게 어때? 선생님도 너무 배고픈데 말이지......”
“선생님. 저 정말 밥 못먹겠어요. 죄송해요. ”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부모님께서도 우준이가 점심을 굶었다는 것을 알면 몹시 걱정하실거야. 앞으로도 잃어버리는 물건이 종종 생길거야. 선생님도 자주 잃어버렸거든. 그래도 우준이가 훌훌 털어야 지우개도 주인과 잘 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지우개는 다른 주인 만나서 또 잘 살고 있을지도 몰라. 무엇보다 선생님을 기다리는 다른 친구들이 급식실에 있고 친구들도 우준이가 같이 급식을 먹길 기다려.”
혹시 내가 건넨 위로가 위로가 안되고 우준이를 더 슬프게 만들까봐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건넨다. 결국 급식을 안먹겠다고 고집을 끝까지 부려 나도 그날 급식을 먹지 못했다. 아침을 굶은 나는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수업을 겨우 끝냈다. 다음 날 나는 우준이를 다시 불러 속상한 일이 생길 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고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우준이는 죄송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건넸고 사과를 굳이 들을 목적은 아니였지만 다시는 급식을 못 먹는 일이 생기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방학중에 제일 그리운게 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단연코 급식이다. 너희들이라고 말하지 못해 미안해 아이들아. 원래 부모 마음이 그래. 원래도 예쁘지만 자면 더 예쁘거든. 그거랑 비슷한 그런 마음이야. 각설하고 나중에 퇴직하고 나서 제일 그리울 것은 아마도 5대 영양소 풍부한 급식일 것만 같다. 물론 늘상 급식을 먹을 때마다 나도 회사원들처럼 여유있고 조용하게 점심특선 먹고 테이크아웃 커피한잔 사들고 오고 싶은 생각을 자주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