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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야 Jul 23. 2024

교사의 직업병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한두 가지쯤은 직업병이 있다. 나에게도 그 직업병이 근무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찾아왔다. 처음 발령받고 난 후 가장 고민스러웠던 점은 화장실에 언제 갈 수 있을지였다. 쉬는 시간이 되면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주말에 부모님께 혼났던 일이나 재미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러 왔다. 특히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쉬는 시간을 거의 빠뜨리지 않고 찾아왔다. 때로는 학습과 관련된 질문을 하느라 오는 기특한 아이들도 있다. 학생들에게 나는 한 명의 선생님이지만, 나는 여러 학생을 담당하고 있기에 매번 많은 질문을 받는 느낌이었다. 물론 아이들은 이런 사정을 알 수 없기에, 가끔 찾아오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친절하게 대답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쉬는 시간의 나를 아무데도 가지 못하게 붙잡아두는 주된 이들은 바로 ‘일러바치기’를 하는 아이들이다. 재미있게 놀다가도 뭐가 서운했는지, 친구와 엉켜 놀다가 "선생님, 은수가 자꾸 때려요.", "선생님, 수지가 자꾸 놀려요.“라고 웃으며 일러바친다. 해결해주길 바라는 건지, 그저 들어주길 바라는 건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꾸 나를 찾는다.     


화장실을 가거나 다른 볼일을 보려해도 아이들이 엉켜붙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없는 사이에 안전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발길을 돌릴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쉬는 시간이 바람에 실려가듯 지나가버린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은 깨알같이 챙겨서 놀고서는 공부시간이 되면 잊고 있던 화장실을 다녀온다. ‘너희들은 공부시간에도 마음껏 화장실을 갈 수 있어 좋겠구나.’ 부럽기만 했다. 그리하여 신입 교사 시절 몇 차례 겪은 고질병이 바로 방광염이었다. 특히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 듯 떠오르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친구와 영화관에 갔다.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을 기다리다가 화장실문을 보는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는 정말로 오랜 시간 화장실을 못 가서 생긴 급함이 아니라, 물을 보거나 화장실문만 보면 내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오작동이었다. 내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긴급함이었다. 결국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그만 바지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바지가 서서히 노란빛으로 물들어가 가는 것을 보며 느꼈던 수치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더 이상 이 글로도 적고 싶지 않다. 집에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은 화장실을 눈치껏 잘 다녀오고 있어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내가 겪은 직업병 두 번째는 성대결절이다. 신입 교사 시절에는 요령도 없고 마음만 급해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게 되고 목을 아끼지 않게 된다. 하루 여섯 시간 수업을 하고 아이들의 말에 일일이 대꾸하다보니, 방광염이 나아갈 때쯤 성대결절이 찾아왔다. 그 이후로도 조금 무리하다 싶으면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거나 쇳소리가 났다. 

‘가수들만 걸린다는 그 성대결절이 나에게도 찾아오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고 학교를 쉴 수는 없다. 일단 학교를 나가기는 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아이들 지도를 어떻게 하나 고민이 되었다. 결국 컴퓨터에 하고 싶은 말을 쓰고 TV에 띄워 놓으며 아이들과 글로 대화를 했다. 아이들도 선생님이 짠했는지 오히려 말을 더 잘 듣는 느낌이었다. 말을 많이 한다고 소리를 친다고 아이들이 집중을 더 잘하는 건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아이들은 선생님 목소리 어떻하냐며 애꿎은 허스키보이스의 대명사 박경림씨와 비교를 해댔다. ‘아이들아. 박경림씨는 지금 사회자로 잘 나간단다!’      

  

직업병 세 번째는 난청과 이명이다. 물론 병원에서 심각하다는 진단은 받지 않았으나 귀가 점점 안 들리는 기분이다. 아니 내 스스로 안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듣기를 포기하는 느낌.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이라면 알 것이다. 아이 두 명이 내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두 명도 세 명도 아닌 25명이 넘는 아이들이 떼로 소리치고 노는 소리에 자주, 그리고 오랜 기간 노출되다 보면 내 귀가 내 귀가 아닌 기분과 함께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마음 한 구석에서 새어나온다. 그래서 특히 급식시간은 밥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헷갈릴 지경이 된다. 어지간한 소음에는 이제 면역이 생겼지만 왜인지 전보다 귀가 안 들리는 느낌이다. 아마 소음을 의도적으로 안 들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안 듣는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소리를 안 들으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이 빛을 발해 사람들 말에 집중을 잘 못하게 된 것 같다. 교사들이 원래 본인은 말하기 좋아하고 듣는 것을 싫어한다더니 이 때문이랴. 교직원 전체 회의 시간 다른 교사의 설명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을 하는 것을 보면 원래 집중력이 이 만큼은 아니였을 사람들인데 너무 웃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는 네 번째 직업병은 심장 두근거림이다. 밤에 학부모 문자나 전화가 올 때 증상이 심해진다. 그리고 그 문제가 심각할 때는 밤잠을 설치게 된다. 이는 나만 느끼는 증상은 아니고 주변 동료 교사들에게 물어보니 나와 비슷한 증상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타고난 걱정쟁이인 나는 끝없는 걱정을 하다 날을 꼬박 새기도 했다. 예전에는 담임 교사의 핸드폰 번호를 공개하였기에 정도가 더 심했다. 특히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의 친구 문제가 많이 걱정스럽기에 늦은 밤이라도 연락을 해야했을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사실 문제 해결은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해야 대부분 해결이 된다. 요즘에는 상담 시간을 정해놓는 편이고 사회적으로 퇴근 이후의 사생활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을 얻고 있어 많은 부분이 개선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를 겪는 교사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마지막 직업병은 바로 심한 자기검열이다. 어느 정도냐면 문자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려다가도 행여나 맞춤법이라도 틀릴까봐 한번 쓴 글을 여러 번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내 자녀의 친구 엄마에게도 교사가 왜 저러나라는 말을 들을까봐 말조심, 행동 조심을 과도하게 하게 된다. 가면을 쓰고 만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면 안되겠지만 아주 사소한 거라도 내가 한 행동이 옳은 것인가, 내가 한 말이 옳은 것인가 머릿속으로 여러번 생각한다. 특히나 학교 근처 동네에 살 때는 밖에서 내 자녀를 혼낼 때도 어지간히 눈치가 보인다. 가끔 내 자녀이기에 친자확인하는 기분으로 더욱 욱할 때가 있는데 학부모님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이렇게 혼내고 있다고 오해할까봐 조심하게 된다. 동네에서 나도 모르게 나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역시 선생님은 돈 못버는 연예인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구나를 생각한다. 쌩얼 외출은 꿈도 못꾸게 된다. 과도한 자기검열이 예민한 내탓인가 싶다가도 맘카페에 우리 선생님이 술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선생님이 SNS에 수영복 차림의 사진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써놓은 것을 보면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닌게 틀림없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한 개인의 사생활은 존중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교사에게도 그런 영역들이 있음을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18년 동안 초등교사를 해오며 얻은 직업병이다. 어쩌면 내일은 또 새로운 직업병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언제나처럼 부디 내가 아이들과 부대끼며 직업병을 잘 이겨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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