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한 세대를 거른다.
"엄마가 다시 일하러 가면 어떨 것 같아?"
"절대 안 돼. 난 엄마랑 계속 있고 싶은데, 유치원 갈 때 이럴 때만 참는 거야. 그것 말고는 안돼"
결론적으로 아이의 등하원은 엄마가 꼭 해야 한다는 뜻. 적어도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가족 사람이 해야지 모르는 사람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해도 되겠다 싶은 일자리를 마음에서 접었다. 아홉 시라면 모를까 아침 일곱 시 반 출근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이다. 남편의 도움을 받는 것도 상황적으로 보나 무리이며, 주변 부모님도 안 계시니.
수많은 육아 프로그램, 유튜브, 서적으로 우리는 유년기 시절의 가정환경, 부모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그리고 그 시절 겪었던 결핍이 언.젠.가.는. 밖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도. 구멍의 크기가 작냐 크냐일 뿐 부작용이든 방향 전환이든 살아가면서 영향을 준다는 것.
유년시절 엄마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었다. 그 시절 0교시가 있었고, 집에서 한 시간이나 떨어진 학교로 출근했기에 엄마는 늘 새벽부터 출근하느라 분주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시기별로 그 자리를 메꿔 주셨지만 '엄마가 집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느낀 공허함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남의 아이들 열심히 가르친다고 내 아이들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는 큰 결심과 함께 엄마는 내가 11살 무렵에 사표를 내고 집으로 복귀했다. 그날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여전히 또렷한 기억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싶다. 좋은 날로는 뭔가 부족하고 '불안에서 해방된 날'이 더 적절한 표현 같다.)
그 시절 너무나 갈망해서일까. “아이는 내 손으로 직접 키운다"가 어렸을 때부터 뇌리에 박혔다. 남편의 이직과 이사로 인한 퇴사가 빛 좋은 핑계였지만, 아이를 기관에 오래 두는 것이 늘 편치 않았다. 아니 너무 괴롭고 가슴이 찢어지듯 아려 왔다. 집안의 온기, 색, 향까지 바뀌었던 그날을 아이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반대로, 엄마가 전업주부였던 지인들은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가난의 대물림, 부의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익숙하다.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결핍만큼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어떤 경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는 게 좋겠다.
스스로 공부에 전념했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자녀가 너무 학업에만 매진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있다.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예체능을 많이 시킨다든지,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자주 할 것이다. 반대로 학업에 대한 결핍이 있는 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열을 올린다. 조금 더 좋은 기회가 자녀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다음 세대가 나의 결핍을 해소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뭐 여러 마음이 모여서.
과거 나의 영어 공부와 방향에 대해서도 보면 그렇다. 엄마는 영어를 사용하는 현지인과의 대화, 회화에 대한 갈증이 크셨고, 그 결과 나는 문법보다 회화에 집중하는 영어 교육을 받기도 했다. (엄마의 교육 방향성은 이렇게 영향력이 크다.) 오히려 나는 문법의 중요성을 결핍을 통해 느끼고, 나의 자녀에게는 문법도 회화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줄 것 같다. 무엇이든 기초 공사가 튼튼해야 함을 삶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 ‘결핍'에 대해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모아 보았어요. 글쓰기는 정말 생각들을 한 곳에 모으는데 탁월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결핍이 없으면 좋겠지만 결핍을 통해 성장하기도 하고요.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네요. 결핍을 뛰어넘고 다음 세대에게는 좀 더 나은 것들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