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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Dec 14. 2020

이기현 "우리는 얼마나 교감을 하며 살까요?"

[인터뷰] '흔해빠진 일' 이기현 "우리는 얼마나 교감을 하며 살까요?"

이기현.(제공=지구엔터테인먼트)


다음 내용은 12월 11일에 나온 인터뷰 기사입니다.




[아시아뉴스통신=위수정 기자]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요”


컨셉추얼 씨어터 ‘흔해빠진 일’(연출 양문수, 작곡 장지영)은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혼합한 다중 스토리 구조를 보인다. 또한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어 배우가 관객 바로 옆을 지나가며 배우와 관객의 ‘교감 지수’를 높인다.


‘흔해빠진 일’은 지난 11월 20일부터 12월 20일까지 공연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상향됨에 따라 6일 조기 폐막을 하게 됐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극 중 클로디어스 역을 맡은 배우 이기현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이기현은 ‘흔해빠진 일’에 함께 하게 된 계기로 “제작진과 미팅을 통해서 연락이 왔고 어떤 역할을 하고 싶냐고 하셔서 고민하다가 클로디어스를 선택했다”며 “작년에 이 작품을 리딩하는 걸 봤는데 클로디어스가 유일하게 가장 두드러진 악역이라고 생각했다. 클로디어스 아니면 트레고린을 고민했는데 클로디어스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트레고린으로 연기하는 정지욱 배우가 20년 지기 친구이다. 이 친구가 이 공연을 통해서 데뷔를 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같은 꿈을 꿔왔다. 그런데 같은 역할을 하면 같이 무대에 설 수 없으니까 클로디어스를 선택했다.(웃음) 또한 클로디어스가 제 외모, 음역대, 연기 스타일을 봤을 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어 20년 지기 친구와 한 무대에 같이 선 소감을 묻자 “같이 작업을 하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다. 아무리 20년 지기라고 해도 성인이 되면 각자 삶을 사느라 바쁘고, 같은 꿈을 꿔도 보기가 힘든데, 이번 작업을 통해서 서로에게 더 허물없는 사이가 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벅찼던 마음을 전했다.


이기현.(제공=지구엔터테인먼트)

‘흔해빠진 일’은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에 비해 배우가 26명이 캐스팅 됐으며, 온스테이지로는 16명이 오른다. “저도 총 26명인 걸 나중에 알았어요. ‘이렇게 많이 나온다고?’싶었죠. 그런데 양문수 연출님과 장지영 작곡가님이 대극장을 생각하고 만든 작품이시고, 사정상 이번 공연장에서 하지만 작품의 퀄리티를 낮추고 싶어하지 않으셨던 거 같아요. 작은 역할 하나하나까지 다 챙겨주시는 분이고, 다들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이기현은 왕인 형을 독살하고 왕좌와 형수까지 빼앗아버린 악역으로 파격적인 정사씬을 선보인다. 그는 “대본을 받았을 때 정사씬이 있는 거 보고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주의였고, 정말 야하고, 이 장면을 통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사실 무대에 올린 버전은 ‘순한 맛’이다. 연습할 때는 완전 ‘마라 맛’으로 세게 나가고, 조명이 없어서 적나라하게 다 보이니까 다른 배우들이 놀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클로디어스라는 악역을 연기하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쓴 부분으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점”을 꼽았다. “왕이라는 위치에서 본인의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며, 형을 죽여서 얻은 걸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강한 척을 하려는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겉은 아닌 척하지만, 이 사람이 악한 사람이라는 게 온몸으로 뿜어져 나왔으면 좋겠더라고요. 숨길 수 없는 악함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리고 제가 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았기에, 등장할 때 저라는 인물의 악함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싶었어요.”


이기현.(제공=지구엔터테인먼트)


작년 말부터 올 2월까지 공연된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에서 닉 캐러웨이로 연기를 한 이기현은 또 관객 몰입형 작품 ‘흔해빠진 일’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이머시브 공연이 아직 낯선 가운데 "이머시브 공연 전문 배우가 되는 거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어 “예전에 뉴욕에서 이머시브 공연 ‘슬립노모어’를 보고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라 너무 충격적이었다. 제가 공연을 하는 이유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기 위해서다. 정사씬도 충격적이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보여주려는 거다. 제가 뉴욕에서 ‘슬립노모어’로 그런 경험을 겪고 이러한 압도적인 경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청년예술단에서 이머시브 공연 ‘88탁수’를 연출하고, ‘위대한 개츠비’와 ‘흔해빠진 일’로 이머시브 공연을 해왔는데, 컨셉츄얼 뮤지컬이라고 하면 개념과 틀에서 벗어나서 정신으로 가는 것이다. 무대에서 관객과 가장 강력하게 교감할 수 있는 건 이머시브라고 한다. 이머시브 씨어터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관객 몰입형 연극으로 이머시브 뜻이 ‘액체 속에 담그다’, ‘잠기게 하다’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을 사방으로 에워싼 장소를 특징으로 의미한다. 참여라는 게 꼭 배우와 관객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상황 속에 놓여있는 것도 참여다. ‘흔해빠진 일’은 이머시브 형태를 띄고 있는데, 무대와 객석을 허물었고 배우가 바로 옆에서 눈을 마주치면서 연기와 노래를 했으며, 코로나 시대의 이 이상의 참여는 하기 힘들었을 거 같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위대한 개츠비'때는 처음에 관객에게 직접 다가가 말을 걸고 연기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재미를 찾았는데, 오히려 ‘흔해빠진 일’에 와서 그걸 못해서 더 아쉬웠다. 이번 작품은 송스루이고 한계점도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관객 바로 옆에서 연극이 아닌 뮤지컬로서 연기와 노래를 하는 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고 덧붙였다.


이기현.(제공=지구엔터테인먼트)

이기현은 ‘흔해빠진 일’의 키워드를 ‘교감’이라고 전했다.


“연습할 때 교감 훈련을 많이 했어요. 배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져서 일처럼 다가가는 게 있었는데, 연기 훈련을 하면서 연습을 진행하는 게 평소에는 실제로 많지 않아요. 이 훈련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많이 하는 메소드인데 서로 눈을 보고 어떠한 주제로 서로를 상상하는 거예요. 이때 어떠한 터치는 하면 안 되고 가장 강력한 터치는 한 발 앞으로 나가는 것으로 상상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요. 평소에 이런 훈련을 혼자서 하기는 하지만, 파트너와 눈을 쳐다보면서 하는 건 처음이었죠. 관객과 교감이 이뤄지려면 배우인 우리가 먼저 교감을 이뤄야 했어요. 그런데 교감 훈련을 하면서 ‘내가 사람의 눈을 보고 사나?’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나?’ ‘내 말만 하지 않나?’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이어서 그에게 작품의 제목처럼 평소에 ‘흔해빠진 일’로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작품 주제도 그렇고 요즘에 탐욕과 기만이 너무 넘치며 교감하지 않는 게 많아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는데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죠. 안톤 체호프 ‘갈매기’ 원작에서도 사람들이 자기 말만 하는데 현대 사회도 그런 거 같아요. 안톤 체호프가 ‘갈매기’를 쓴 이유도 이렇게 살지 말고 제대로 교감하고 살라고 만든 작품이래요. 사람들은 여전히 자살하면 다 끝날 거로 생각하는데 그게 가장 큰 기만이에요. 우리 작품에서 마지막에 코스챠를 살리는 장면에서 만물이 나와서 코스챠에게 얘기하죠. 독수리, 사자도 끝까지 살아냈다고 너도 살라고 말이에요. 자기 삶을 끊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잖아요. 사람들이 제대로 소통하고 있지 않은 모습이 흔해빠진 일인 거 같아요.”


이기현.(제공=지구엔터테인먼트)


이기현은 올해 공연과 연습, 영화 촬영 등으로 쉼 없이 달려왔다.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한 해를 돌이켜 봤을 때 “기대한 만큼은 아니지만 왕성하게 활동한 해였다. 여러모로 모두가 힘들고, 저도 힘든 순간은 있었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걸 도전하고 시도해볼 수 있었던 한 해였다”고 자평했다.


그는 2021년 계획으로 “올해 너무 쉬지 못해서 내년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쉬는 시간을 갖고 싶다. 쉼 없이 일한 것은 정말 감사한데 조금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고, 인간 이기현으로 목표는 너무 눈치 보지 않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전했다.


아시아뉴스통신과 지난 2월에 인터뷰를 했을 때 이기현은 올해 소망으로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쉽지 않은 시간들이 있었는데 올 해가 되었을 때 너무 행복했다. 연말에 행복하게 마무리 하고 싶다”고 전한 바가 있다. 비록 쉬지 못하고 열심히 달려온 한 해였지만 다양한 도전을 경험했기에 한 해를 행복하게 마무리하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한편, 이기현은 내년에도 무대 차기작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로 대중을 만날 계획이다. 


https://www.anewsa.com/detail.php?number=230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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