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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Jul 15. 2021

윤나무 "'살수선', 메시지 강요 안 해서 좋아"

윤나무.(제공=프로젝트그룹 일다)

다음은 6월 10일에 나온 인터뷰 기사이며 해당 공연은 종연했습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초연에 참여한 배우 손상규, 윤나무와 함께 2년여 만에 재연으로 돌아왔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불의의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게 된 열아홉 살 청년 ‘시몽 랭브르’의 심장 이식 과정을 둘러싼 24시간의 기록을 그린 1인극이다. 하지만 1인극 같지 않은 1인극으로 한 명의 배우는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 남겨진 가족,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장기 이식 수혜자 등 각각의 인물과 그들을 관통하는 서술자까지 총 16개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하나의 사건 속에서 맺어진 관계의 파생과 생명의 연결을 표현한다.


8일 오후 서울 정동극장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나무는 지난 1일 개막해 관객을 만나고 있는 소감으로 “초연을 할 때와 거의 비슷하게나 똑같이 노력하려고 했지만, 1년 반 만에 공연을 다시 하다 보니 그동안 저라는 사람의 생각이나 사유도 당연히 달라졌을 거고, 같은 역의 손상규 형님이나 연출님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초연을 거쳐서 익숙한 편안함이 생기기보다 대본이나 상황을 낯설고 살아있는 순간으로 만들고 싶어서 치열하게 고민했다. 첫 공연에 무대에 올라가서 암전 속에서 첫 대사를 뱉기 전까지 긴장되고 떨렸는데 대사를 하는 순간 편안함이 생겼다. ‘내가 이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누려고 지금까지 살아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공연하면서 잘 안 떠는 편인데 이번 첫 공연 때는 정말 떨렸다. 일주일간 기분 좋게 공연을 끝내고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나무. 제공=프로젝트그룹 일다)

다음은 윤나무와 일문일답이다.


Q. 약 1년 반 만에 다시 만난 작품인데 가장 크게 다르게 느껴진 부분이 있나.


"공연장이 달라져서 공간에 대한 게 가장 컸다.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을 정동극장에서 하면서 극장 주변, 무대 등 환경이 다른 건 알고 있어서 연습하면서 연출님과 상규 형님에게 어떻게 다른지 전파했다. 기술적인 문제들은 제작진분들이 지원을 많이 해줘서 해결되는 부분이었고 저는 인물에 대한 깊이를 초연보다 더 깊숙하게 들어가 보려고 했다. 공연이 공간이 큰 극장으로 왔기 때문에 제가 더 크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고, 제가 믿고 의지하는 순간 관객도 같이 따라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연습할 때부터 고집을 부렸던 건 마이크를 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스피커를 통해서 목소리가 들리는 거와 육성이 들리는 건 다른데 공연의 특성상 마이크를 쓰는 건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핀 마이크를 차고 공연했는데 정동극장은 단차도 좋고 어디서든 이미지를 보는 건 지장이 없고 목소리에 대한 우려는 있었지만 많은 스태프가 도와줘서 가능했다.


텍스트상으로 다르게 느껴진 점은 저는 예전에 해본 공연이니 기억이 어느 정도 날 줄은 알았는데 새롭더라. 첫 대사부터 끝 대사까지 낯선 게 많았지만 내심 그게 좋았다. 재연이라는 생각 없이 새롭고 낯설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1년 반이 지나니까 지난 공연에 안 보이던 게 보였다. 전에 쌓아온 부분이 중첩돼서 새로운 부분을 보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 좋게 연습했다. 지난 시간보다 다들 달라져 있어서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상황이 됐다."


Q. 1인극이지만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 남겨진 가족,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장기 이식 수혜자 등 16명의 캐릭터를 표현해낸다. 가장 표현하기 어려웠던 인물이나 묘하게 다가온 인물은 있나.


"올해 서른일곱인데 연령대가 있는 역할은 어느 정도 상상 속에서 그려낸 인물이다. 간접적으로나마 피부에 와 닿게 체험할 나이가 아니어서 상규 형님이나, 연출, 대표님께 질문을 많이 했다. 미혼에다가 아이가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뇌사상태로 온 아이를 본 부모의 마음은 어느 정도일지, 이럴 때는 마음이 어떨지 물어봤다. 이런 질문을 할 때 특별한 대답을 하신 건 아니고 눈빛이나 뉘앙스를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인지 알 수 있었다. 연습실에서 상규 형님이 하는 걸 보면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저만의 것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저에게는 감사하게도 1인극과 모노극을 떠나서 이 공연을 만들고 있는 모두의 힘이 조금씩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인물을 구축하면서 제가 경험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가지고는 부족한데, 여러 사람의 의견이 많이 반영 되어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이번에는 심장을 이식받는 수혜자인 여성 캐릭터가 다르게 다가왔다. 연습실에서는 그런 순간을 캐치를 못 하다가 리허설을 돌다가 이상하게 감정이 탁 터진 적이 있다. 초연부터 심장을 수혜받는 사람의 마음 자체가 피상적이었는데 푹 빠져서 생각하다 보니 묘한 게 있었다. 1년 반 전에 공연할 때는 몰랐는데 지인 중에 아버지께서 심장 이식을 받은 분이 있는데, 심장은 다른 장기보다 이식받는 게 드물다고 한다. 그분은 1년 중 본인의 생일보다 기증받은 날이 더 큰 행사라고 하셨다. 그분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 여자 캐릭터에 몰입했다. 대사처럼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오늘 누군가가 죽었기 때문에 심장을 받는 건데, 심장을 받는 입장에서 그 사람을 떠올린다는 게 묘하고 세상이 조금은 달리 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실제로 경험한 사람에 비해서 티끌만 한 감정도 이해 못 할 수 있겠지만 제가 그려낸 인물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그 사람 가족에게 고맙다고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크게 와 닿았다. 초역 대본과 원작 소설에는 있지만 초연에 안한 대사 중에 “클레르 메장은 시몽 랭브르의 심장을 받던 새벽 4시에 토마 레미주의 마지막 읊조림 워크맨 7번 트랙을 들었을까요?”이다. 너무 직접적인 거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 초연에는 안 하고 이번 연습 때 연출님께서 무대 위에서 이 대사가 본능적으로 나오면 해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첫 공연 날은 못하고 두 번째 공연부터 계속하고 있다. 클레르가 심장을 받았을 때 시몽이 마지막으로 들었던 토마 레미주의 읊조림이나 파도 소리는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 같다."

Q.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라는 제목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


"제목을 잘 지은 거 같다. 중의적인 표현인 느낌이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한다는 건 뇌사상태 육체를 수선하는 것도 있지만 이번 재연을 하면서 느낀 건 심장도 있겠지만 동 시간에 신장, 폐, 간을 적출해서 다른 이식의 수혜자에게 흩어진다. 그 사람의 몸을 수선하는 걸 수도 있고, 수혜자의 심장, 새로운 삶을 수선하는 걸 수도 있고, 두 시간 동안 극을 보고 관객의 마음이 수선되는 걸 수도 있다. 답을 정해놓기보다 매회 매 순간이 다를 거고 매회 다른 공연을 체험한 관객의 마음이 다를 거 같다. 열려있는 메시지이지 않을까. 이 공연이 좋은 게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아서 좋다.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생각을 답으로 생각하면 좋을 거 같다."


Q. 시몽 랭브르의 가족이 아들의 눈을 이식하는 건 안 된다고 하는데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감각이라는게 시각, 청각, 촉각 등 여러 가지 감각이 있지 않나. 시몽의 부모님은 아들이 지금 급박한 상황에 있지만 아들의 안구가 빠져나간 상태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을 거 같고, 더 나아가서 시몽이 하늘나라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서핑을 하거나 바라보고 싶은 걸 보게 하기 위한 마음 같다. 물론 각막도 기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모의 마음이 그런 거 같다."

Q. 이 작품을 보기 전까지 장기 기증에 관련된 사람은 마냥 진지하고 철학적이며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극을 통해 장기 기증을 슬프게만 생각했다가 오히려 덤덤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됐는데,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참여하기 전과 후에 장기기증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나.


"저희 어머니는 장기 기증을 신청한 상황이고 저도 신청을 할 예정이라 더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작품 연습을 하면서 드라마 촬영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엄마한테 제가 뇌사상태가 오면 장기 기증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장문의 답장이 왔다. 아들이 그렇게 되는 거에 대해서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겠지만 아들 심장이 어딘가에서 뛰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위안이 될 거 같다고 하셨다. 저도 나중에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을 때 정말 예쁘고 좋겠지만 저에게도 그런 상황이 오면 ‘나도 기꺼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초연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 작품이 장기 기증 캠페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극이고 메시지가 있지만 그걸 강요하지 않는 극이다. 무대에 올리는 극으로써 엔터테인먼트적인 부분이 있어야 하고 제가 하면서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심장 이식을 하는 24시간 동안 타임라인을 촘촘하게 살아있는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이 공연을 통해서 장기기증의 홍보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Q. 커튼콜 때 보니 가슴에 손을 얹고 톡톡 치던데 어떤 마음인가.


"관객들을 만나고 싶었던 거 같다. 연습할 때 연출님께 이 공연을 잘 알고 있는 사람 말고 새로운 사람과 낯선 사람들의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서 연출님의 제자들이 런쓰루를 보고 갔다. 그때부터 공연을 하며 각자의 심장, 한 분 한 분이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분들과 제 심장이 두 시간 동안 같이 심장 박동을 잘 느꼈다는 마음이 들고 개개인에 대한 사람과 삶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하고 있다."


Q. 최근에 심장 박동이 느껴질 정도로 떨렸던 순간이 있나.


"첫 공연하기 전의 시작이었다. 파이팅 콜을 하고 스태프들이 다 빠져나가고 분장실에 저와 스태프 한 명만 남아있는데 몸의 일부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비르질리오의 대사처럼 제가 알고 있는 미신, 기도문을 다 부여잡고 하늘에 대고 애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첫 대사를 뱉는 순간 마음이 굉장히 편해지면서 두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관객 300명과 같이 잘해볼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윤나무.(제공=프로젝트그룹 일다)

Q. 오늘의 24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해보자면.


"우선 일어나서 밥을 먹고 인터뷰를 할 준비를 했다. 제가 공연이 없는 날이라 드라마 촬영할 대본을 보다가 옷을 예쁘게 입고 나왔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공연을 하거나 공연 없는 날은 드라마 촬영이라 몸을 분리해서 잘 쓰고 있다. 지금 인터뷰가 끝나고 두 번째 인터뷰를 끝내면 공연장에 가서 상규 형님과 파이팅 콜을 하고 집에 돌아가서 혼자 극을 해본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잘 예정이다."


Q. 현재 촬영 중인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극의 대사를 이용하자면 각자의 파트에서 소비되고 있는 인간의 에너지가 드라마 현장에 습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열정적으로 찍고 있고 좋은 분들과 작업하고 있다. (김)주헌 형이 제가 공연하는 것을 되게 부러워한다. 형의 마음을 대변하자면 공연을 너무 하고 싶어 하고, 드라마와 공연 사이에 시간이 조율될 때 무대를 하지 않을까 싶다."


http://www.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7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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