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8월 22일에 나간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스스로가 얼마나 뜨거웠으면 열이었을까요?”
뮤지컬 ‘박열’이 관객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이준익 감독의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 전 독립운동가 박열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박열’은 1923년 관동대지진의 원인이 조선인에게 있다는 괴소문이 퍼지게 되고, 그로 인해 일어난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아나키스트 박열을 구속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박열과 그의 아내 후미코 등 실존 인물들의 사실을 기반으로 서술된 이야기에 가상인물 류지의 서사가 더해져 입체감 있는 인물구조와 서사가 담긴 작품이다.
조선인 아나키스트로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국과 비밀결사단체 불령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박열’ 역에는 김재범, 김순택, 백기범, 조훈이 분한다. 박열의 아내이자, 국적은 다르지만 조선인 박열과 뜻을 함께하는 아나키스트 후미코 역에는 이정화, 허혜진, 최지혜가 연기하며, 도쿄재판소 검사국장으로, 박열을 통해 업적을 세우려는 야망가 ‘류지’ 역에는 권용국, 문경초, 임별, 정지우가 함께한다.
최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열’ 역의 백기범은 “‘박열’이라는 작품에서 작품의 이름인 박열로 연기해 떨린다. 실존 인물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위인에다가 이제훈이란 배우가 표현했던 인물을 제가 2차적으로 해서 부담스러우면서도 재미있다”며 소감을 전했다.
백기범은 ‘박열’을 '불덩어리'로 표현한다. 그는 “정말 뜨겁다. 데일 것 같은 느낌이다. 박준식이란 본명을 두고 박열이란 이름을 택하지 않았나. 자신이 얼마나 뜨거웠으면 열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을까. 박준식이 자신 스스로를 어떻게 느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박열과 저는 싱크로율이 낮은 것 같다”며 “하지만 저는 연습할 때는 치열하고 집요하게 고민해서 열정적이다. 연습할 때는 저의 성격이 아닌 것 같은데, 이때만 박열의 성격과 비슷하고 평소에는 아닌 듯하다”며 웃어 보였다.
박열에게 후미코가 없었다면 감히 이 정도로 뜨거울 수가 있었을까. 백기범은 후미코와 박열의 사랑에 대해 “일반 남녀의 로맨스라기보다 동지적인 사랑이었을 거다.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랑을 표현하려고 했다. 폭탄을 만들 수 없었던 박열에게 진짜 폭탄이었던 후미코. ‘너는 폭탄, 나는 열, 너와 내가 만나서 함께 터뜨릴 수 있겠다’는 마음이다”고 설명했다.
박열은 ‘개새끼’라는 제목의 시를 써, 그의 기개를 드러낸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내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백기범은 ‘개새끼’ 시를 읽고 “그 시대에 이 시를 썼다는 것이 패기 넘친다. 누가 보면 치기 어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린 나이에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박혀있다고 느꼈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단단한 정신을 가졌다고 느껴지더라”고 전했다. 이어 “박열은 부술 수 없는 것을 부수려는 사람으로, 폭탄을 구하려고 한 것처럼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 이것저것 다 해본 것 같다. 전문 시인도 아닌데 ‘개새끼’라는 시를 쓴 것을 보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박열은 후미코와 재판에 참석할 때도 당당했다. 재판장에게 죄인 취급하지 말 것, 재판장과 동등한 높이의 좌석을 설치할 것, 조선 관복을 입힐 것, 조선어를 사용할 것. 총 4가지 조건을 요구했지만 일본 재판부는 재판장과 동등한 높이의 좌석 설치와 조선어 사용을 빼달라고 한다. 하지만 꿋꿋하게 조선어를 사용했던 박열.
“박열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말로는 독립운동가분들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게다가 적지인 호랑이굴 한복판에서 일본 재판부를 향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요구사항을 내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상상만으로도 하기 힘든 것을 해낸 분인 것 같아요.”
백기범은 사형 선고를 받은 박열과 후미코가 박열의 고향에 함께 묻히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는 장면으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프러포즈라고 말한다. 그는 “결혼해서 함께 살자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 나랑 죽어서도 함께하자는 프러포즈여서 대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가네코 후미코로 박열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이정화, 허혜진, 최지혜에 대해서는 “지혜와 연습을 가장 많이 하고 첫 공을 같이 해서 합이 잘 맞는다. 지혜가 실제로 제일 어린데 후미코의 실제 나이와 비슷해서 마음이 아프고, 정화 누나는 눈빛이 정말 깊다. 사람을 집중시키는 눈을 가진 정화 누나와 공연을 하면 제일 많이 울게 된다. 혜진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매력이 있는데, 박열도 그런 모습에 끌리지 않았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백기범은 ‘박열’을 하면서 가장 뜨거운 장면을 ‘불꽃처럼’을 꼽았다.
“아- 한번은 긁혀야만. 빛을 내는 불꽃처럼. 수없이 깎여야만. 자율 찾는 우리의 길. 마지막 한 끗까지. 타오르고 타올라. 재가 될 때까지. 함께하기로 해. (작사 이선화)”
그는 “지금은 자유가 보장되어있는데 그때는 자유를 찾으려면 우리를 부수고 깎아야 찾는 거여서 안타까웠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불꽃처럼’ 대사를 다시 말하는 데 이때 눈물이 많이 난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때의 독립운동가분들이 스스로 불 태워서 얻은 자유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구나. 내가 물처럼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를 그분들 덕분에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박열’은 9월 18일까지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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