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더 라스트맨' 주민진 "하고 싶은 걸 다 해도 돼"
다음은 12월 27일에 나간 뮤지컬 '더 라스트맨'의 배우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저 혼자 하는 공연을 보러 오시는 게 참 신기해요”
코로나19로 전 세계는 거대한 방공호에 갇혔다. 국경을 폐쇄한 나라도, 지역 간에 이동을 금지한 곳도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상황 속 우리는 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생활 방역 속에서 지내고 있다.
뮤지컬 ‘더 라스트맨’은 좀비 바이러스 출몰로 인해 지하 방공호에 살아남은 생존자의 모습을 다룬다. 생존자는 좀비들과 생존 대결을 펼치며 열악한 환경과 고독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수도와 전기가 끊기며 점점 버티기 힘들어진다. 어느 날, 문밖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생존자는 좀비 떼가 아닌 지 의심을 한다. 좀비인지 진짜 사람인지 의문인 가운데, 생존자는 문을 열고 나갈 것인가.
뮤지컬 '더 라스트맨'은 창작공연의 활성화를 위해 서울예술단이 주최하고 네이버가 미디어 후원한 ‘청년예술가 웹뮤지컬 창작 콘텐츠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웹뮤지컬로 관객들과 먼저 만난 '더 라스트맨'은 좀비를 소재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경쾌하고 독창적으로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더 라스트맨’은 제목처럼 1인극으로 정민, 정동화, 주민진, 김려원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더웨이브 연습실에서 만난 주민진은 ‘더 라스트맨’의 웹뮤지컬과 리딩 공연에 이어 무대에 오르기까지 함께한 배우다. 그는 “정말 큰 영광이다. 작가님과 작곡가님이 웹뮤지컬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시도를 하셨고, 실제로 연극으로 있던 것을 영상 작업을 하면서 참여했다. 그리고 더웨이브 대표님께 웹뮤지컬을 보여드렸더니 마음에 드셨는지 작가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저는 원래 뮤지컬 ‘더 모먼트’가 잡혀 있어서 일정상 할 수 없었는데 어떻게 해서든 의미 있게 마무리해보자고 하셔서 하게 됐다. 공연을 올리고 보니 정말 뿌듯하고 창작진과 스태프, 관객들에게 감사하다”고 ‘더 라스트맨’ 초연에 함께한 소감을 전했다.
‘더 라스트맨’의 네 명의 배우들은 각자 다른 ‘생존자’를 연기한다. 주민진은 그중 가장 기본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는 “연출님께서 네 명의 ‘생존자’가 완벽하게 다른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각자 라인을 다르게 가져갔고, 저는 웹뮤지컬부터 했으니 기본 베이스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제일 기본 맛이다. 샌드위치 집에 가면 기본 맛에 무언가를 더하고 빼면서 다른 맛이 나오듯, 세 명의 배우들은 다른 맛을 내고 있다”며 미소 지었다. 이어 “연출님께서 의도적으로 네 명의 배우들이 연습실에서 만나지 못하게 연습 콜타임을 다르게 짜셨다. 각자의 색깔이 뚜렷했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더라”고 덧붙였다.
“제가 연기하는 ‘생존자’는 너무 힘든 가정환경에서 자라왔어요. 한국이라는 사회와 그릇된 가정문화를 경험하고 그 뒤에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걸 해봤지만 외부와 내부로 인해서 막힘을 경험하죠. 그래서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마음의 문이 방공호의 문이 될 텐데 그 안에서 생활하게 되는 친구예요. 방공호에 오기 전에 직업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는데 공사장, 식물원, 마트 등에서 일을 했고, 교육을 받아야지 하는 일보다 몸만 있으면 하는 일을 주로 한 ‘생존자’입니다.”
‘더 라스트맨’은 무대 양쪽에 여러 개의 모니터에서 ‘생존자’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의 화면이 나온다. 방공호 속에서 나날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주민진은 ‘생존자’가 녹화를 안 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녹화 버튼을 누르지 않고 혼잣말을 했을 것 같다. 전기와 통신이 끊기고 배터리도 없기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 네 명의 ‘생존자’ 중 저만 하는 대사로 "이 영상을 찍는 목적이 저라는 사람이 저 같은 사람도 살아있었다는 현시대의 역사적 증거가 되길 바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생각을 전했다. 또한 “눈치 빠르신 관객들은 아실 텐데 무대가 반이 갈라져 있다. 반은 이 아이가 생존하는 공간이고, 반대로 넘어가면 판타지적인 행동과 말이 나온다. ‘생존자’의 망상 속에 있는 모습이라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무대 뒤 박스에 무전기, 교복, 음식 등이 들어있는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 만지지 못한다”고 재미있는 지점을 설명했다.
“‘생존자’의 교복을 보면 이름표가 많이 달려있어요. 어릴 때 친구들의 명찰을 뺏어 붙이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생존자’의 어린 시절에는 친구가 많이 없었을 테니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또 야구공과 글러브가 있는데 야구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 스포츠로 이 친구가 못하는 것들과 원하는 것을 박스에 놓았습니다.”
‘더 라스트맨’은 1인극이지만 무대에 ‘존버’라는 곰 인형이 함께 등장한다. 방공호에서 생활을 같이하는 ‘존버’는 네 명의 배우의 색깔만큼 각기 다른 모습의 곰 인형이 준비되어있다. 주민진은 “네 명이 각자가 원하는 ‘존버’를 종이에 그려서 제작했다. 저는 실제 주민진이라는 아이가 겪은 어릴 적 모습과 ‘생존자’의 과거를 표현하고 싶었다. 저의 ‘존버’는 진한 갈색에 저와 똑같이 입 주변에 상처가 있고 보이스카우트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그리고 극 속에서 ‘존버’에게 하는 모든 말이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소개했다.
“하고 싶은 걸 다 해도 돼”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는 주민진. 그는 “제가 극 속에서 사회에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안 된다고 하는 게 너무 많다. 저는 천재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적으로 이것을 막고 잘난 친구가 나오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 "너 잘해, 될 수 있어,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해주면 사회가 좀 더 재미있어지지 않았을까. ‘생존자’는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도 ‘생존자’와 비슷했다는 주민진은 “학창 시절과 20대 중반까지 저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배우가 되지 못한다거나, 노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는 말, 대극장에서 앙상블을 할 때 주연을 꿰찰 수 없다는 말, 대학로에 못 간다는 말, 글을 못 쓸 거라는 말, 연출을 하지 못할 거라는 말 등등 뭐든 할 때 다 안 된다고 들었다. 저를 싫어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감사하게도 제가 하는 것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많고, 한 번 경험해보니 길이 터지던데 왜 시작을 못 하게 했을까 싶다. 아마 주변에 압도당했으면 지금 배우를 안 하고 다른 일을 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때 21살 때부터 25~6살까지 사람을 끊고 항상 연습실에 있었다. 지금은 그 친구들 덕에 이를 악물고 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주민진은 ‘존버’가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는 “‘존버’는 아직 경험하지 않은 친구이고, ‘생존자’는 이미 경험을 다 한 친구이다. ‘존버’는 방공호 안에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지만, ‘존버’가 나오는 곳은 판타지 공간이고 공연이 끝나면 제가 쓰고 있던 라이트를 ‘존버’가 쓰고 있는데, 실제로 ‘존버’가 존재했을까 싶었다. ‘존버’에게 하는 말이 그저 나에게 했던 말이고 아무도 없지 않았을까. ‘존버’를 몸에 매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인지하고 ‘생존자’의 인격 중에 하나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풀어냈다.
‘더 라스트맨’을 보는 하나의 재미로 관객들은 ‘생존자’가 여러 개의 잠금 장치로 잠겨있는 방공호 문을 열고 나가는지를 지켜보게 된다. 문을 열고 나왔으면 하지만, 나오지 않는다고 다그칠 수 없는 상황으로 주민진의 ‘생존자’는 문을 좀 더 걸어 잠그는 쪽이라고 한다. 그는 “나가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외롭고 힘들지만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존버’라는 희망을 애써 모른 척한다. 대사에도 "내가 열지 않으면 이 문은 안 열려"라고 하는 것처럼 결국 문을 열지 않는 건 본인이다”고 ‘생존자’의 마음을 대변했다. 만약 ‘생존자’가 주민진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거 같냐는 질문에 “나가야죠. 오래는 못 있을 것 같다. 예전에 혼자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해외에서 짧으면 3주 길게는 한 달 반을 혼자 다녀보니 여행이 저에게 안겨주는 건 미약하고 되게 외로웠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있다가 돌아오니 사람들에게 되게 잘하더라.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고 온 것 같다. 방공호에 갇히면 혼자 있는 순간은 힘들지만, 거기서 나오게 되는 순간 더 행복해지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영혼이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만 이겨낸다면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1인극은 부담도 되지만 재미있는 점은 극 자체가 저의 의도대로 가는 거죠. 다른 배우가 있으면 저와 반대되는 의사나 연기가 나오면 어려운데 1인극은 좋든 싫든 제 의도대로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혼자 하는 게 무서워 죽겠어요. 제가 뭐라고 저 혼자 하는 공연을 보러 오시는 거예요. 제가 요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짓도 한다니까요? 공연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서 몇 분 정도 보러 오시나 확인을 하게 돼요. 이런 저를 보러 오신다는 게 정말 감사하고 신기해요.”
‘더 라스트맨’에서 ‘생존자’가 방공호를 나가면 하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작성해 이야기하듯, 코로나19가 종식되면 하고 싶은 3가지는 무엇일까. 주민진은 “바이크를 타고 유라시아 횡단을 하고 싶고, 다음으로 몽골에서 열리를 랠리를 나가고 싶다. 세 번째로는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공연이 끝나면 팬들이 퇴근길 이벤트를 해주신 것처럼 제가 반대로 몇 분을 추첨으로 뽑아서 그분들의 퇴근길을 가보고 싶다. 그분의 퇴근을 기다려서 사진 찍고 싸인 받고 싶다”고 웃으며 자신의 위시리스트를 말했다.
2022년에 삼십 대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주민진은 “내년 겨울까지 공연이 이미 잡혀 있어서 열심히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그리고 살도 찌울 것이다. 노래를 더 잘하고 싶은데 체중을 늘리지 않는 이상 스케일이 더 늘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저를 더 채찍질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요새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옛날 생각이 많이 나는데, 어릴 땐 대사 한 줄이나 노래가 하고 싶었는데 안 시켜주지 않았나. 지금은 제가 외워야 하는 노래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혼자 하는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하나하나가 다 신기하고 감사해서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고 포부를 전했다.
한편, 뮤지컬 ‘더 라스트맨’은 2022년 2월 13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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