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안 되는 ‘좋았던 추억’ 썰 푼다

그때 그 청년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던데…

by 낯선 방문객

첫 마감을 끝내고 다음 달 호 기획에 들어갔다. 수습 중이었지만 정기자 역할도 함께 수행해야 했던 난 다음 달 잡지에 내가 직접 취재하고 쓴 기사를 게재하기로 했다. 아이언맨이 된 것처럼 약간 흥분됐다. 사수는 며칠 후 다음 달 호 회의할 때 나도 기획안을 작성해오라는 임무를 줬다. 입사 후 첫 회의 그리고 첫 기획안, 첫 기사. 모든 게 처음이어서였을까. 나름 의욕이 넘쳤고 여러 가지 주제를 고민했다.


바야흐로 2012년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휩쓸던 때였다. 뭔가 강렬한 주제를 원했던 난 싸이 뮤직비디오 촬영지를 조명하면서 그의 창조적인 힘에 대해 분석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게 ‘잘 되가냐’며 ‘잠시 기획안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냐’는 사수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싸이 관련 기획안을 말했다. 그랬더니 사수는 고민을 하는 듯했다.


“이기자의 의도는 알겠어요. 근데 아직 수습이고 기사를 많이 써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분석 기사보다는 인터뷰를 통해 풀어내는 게 더 기사 쓰기 수월할 거예요”

그러하다. 난 너무 의욕에 앞서 마치 평론가가 쓰는 듯한 멋들어진 기사를 쓰고 싶어 다소 어려운 주제를 택했던 것이다. 인정했다. 난 아직 그런 역량이 되지 않을뿐더러 그에 맞는 넓은 시각 또한 갖고 있지 않았다. 더불어 전 세계를 휩쓴 싸이의 창의성과 이를 통해 얻은 경제적 수익 등을 글로 풀어낼 극적인 글솜씨도 없었다.

“네, 과장님. 조언 감사합니다”


빠르게 수긍했고 사수의 조언을 받아들여 인터뷰 형식으로 기사를 풀어낼 만한 아이템을 찾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청년’이란 단어가 화두였다. 청년을 위한 정책들이 쏟아지던 때였고 청년을 내건 요식업 간판도 많았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난 ‘청년’이란 단어에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이들의 패기는 내 의지와 의욕이기도 하다. 말도 안 되는 연결성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즉 저들의 패기가 곧 내 패기.



그렇게 스스로 머릿속에서 기획안을 정리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제 막 창업을 시작한 청년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포털사이트에 ‘청년창업’, ‘청년 사업가’, ‘20대 대표’ 등 관련 단어를 검색했다. 이들과 관련한 기사는 물론 블로그 게시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다음 단계는 이들 중 한 곳을 섭외하는 거다. 잡지 기사면 적어도 2면 이상을 채워야 해서 원고지 분량 20매는 넘어야 한다.


워드 프로그램 기준으로 한다면 3장가량 작성해야 한다. 부담되는 분량은 아니지만, 여러 주제로 나눠 이야기를 풀면 분량도 풍성해질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인터뷰이 역시 한 명보단 여러 명인 게 더 좋다. 이런 조건에 맞는 청년들을 찾았다. 섭외 첫 전화. 그 찰나가 왜 그리 떨리는지. 마치 소개팅 이후 첫 전화를 거는 기분이었다. “여보세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월간지 기자인데 청년이 화두인 요즘 창업을 한 당신들을 취재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쪽에선 다행히 바로 승낙했다.


“감사합니다. 메일로 기획안 보내드리겠습니다. 인터뷰 날 뵈어요”

그들은 대학 선후배, 고향 친구 사이로 묶인 청년 4명이었다. 그들의 메뉴는 주먹밥이었다. 따로 창업비용이 들지 않아서 주먹밥을 택했단다. 이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수백 개의 주먹밥을 만들고 직접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당시 주먹밥 기부도 하고 앞으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그중 나랑 나이가 같은 대표도 있었다. 그들에게 좋은 기운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자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들의 진심이 기사에 잘 담길 수 있도록 열심히 쓰고 고치길 반복했다.

그들이 삶을 대하는 방식과 주먹밥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삶의 태도는 내게 많은 것을 성찰하게 했다. 나는 주체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가부터 직업에 대한 에티튜드를 가져야겠다는 반성도 했다. 통상적으로 잡지가 나오면 우편으로 보내준다. 하지만 그들에겐 직접 갖다 주고 싶었다.


잡지 4권을 챙겨 그들에게 직접 전해주며 당시 “더 성공하면 또 취재하러 올게요”라는 인사를 전한 것으로 기억한다. 10년이 지난 2023년 그들의 브랜드는 커졌고 청년들이 꿈꾸고 바라던 회사로서 굳건하게 나아가고 있다. 그들은 날 기억 못 하겠지만 난 추억한다. 그리고 고맙다. 잡지사 경험 중 몇 안 되는 좋은 추억이고 값진 시간을 내어줘서 말이다.

그리곤 때론 그들 매장을 우연히 보면 말한다. “저 주먹밥 집 내가 취재했던 곳인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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