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는 하타치, 업무는 상타치?

잘못 끼운 첫단추, 그래서 남는 후회

by 낯선 방문객

첫 마감을 겪고 제대로 발을 잘못 들였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엄마와 친구들에게 종종 ‘일을 그만둬야 할까’라는 질문을 몇번이고 했으나 그때마다 돌아온 답은 하나였다. “아직 한 달도 안 됐으니 우선 참아봐”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좋은 점을 찾아보려고 스스스로를 감쌌다. 워낙에 모든 상황과 사물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던 난 그야말로 긍정의 마인드로 나은 구석을 하나씩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우선 미디어의 근본인 곳 ‘여의도’에 사무실이 있었다. ‘근본’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본질이나 본바탕을 의미한다. 즉 밑바탕이 되는 뿌리가 튼튼해야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그러려면 나에게 근본이 되는 기자교육을 해야 했고 몇 달간의 수습 기간을 거치는 것이 맞는 체계다. 하지만 작디작고 귀여운 이곳이 나에게 그런 호사스러운 기간을 주기엔 역부족했고 난 바로 취재기자라는 직함을 명받았다.


그런데 3개월간 급여는 인턴 수준으로 지급하겠다고 내게 속삭이던 게 아니던가. 즉 “급여는 하타치지만 업무는 상타치로 해주기 바라”라는 놀부 심보였던 것이다. 요즘 이런 내용을 담은 ‘좋소기업’ 밈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곤 한다. 그 좋소기업 경험자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쨌든 며칠 뒤 내 이름이 적힌 명함이 나왔다. 그곳엔 ‘취재기자’라고 떡하니 적혀 있었다. 취재를 해 본 적은 물론 이와 관련한 에티튜트조차 익히지 못했던 미생인 내가 취재기자라고? 그런 내게 ‘취재기자’라니 너무나도 과분한 직함이었다. 내게도 수습 기간이 있긴 있었다. 그 기간이 고작 하루였으니 문제지. 어느 날 사수는 퇴근 몇 시간 전 자신에게 오라고 내게 손짓했다.


“내일 취재 가는데 이기자도 같이 가봐요. 어떻게 취재하고 취재원을 대해야 하는지 보면 많이 배울 수 있을 거예요”

난 짧게 “네”라고 대답하며 “혹시 따로 챙길 거라도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사수는 “명함이랑 간단한 필기도구만 챙겨요”라고 덧붙였다. 그 당시에는 뭐라도 되는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취재라니. 날카로운 펜 끝으로 세상을 정조준하는 참기자가 된 것처럼 들떴었다.


다음 날 점심 식사 후 사수와 나는 짐을 챙겨 첫 취재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시 김기자는 편집장과 더 중요한 취재처에 동행했기 때문에 사진 역시 사수가 직접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수는 카메라를 어깨에 들쳐 매고 역으로 향했다.


“취재처가 광나루역 근처에요. 5호선 한 번에 타고 가는 게 편하니까 여의도역으로 가죠”

사수는 취재원을 만나면 우리 매체를 소개해야 한다며 꼭 잡지 한 부를 가져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무례한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는 등 취재 기본예절에 대해 알려줬다. 사수는 착하고 차분하고 가장 정상적이었다. 게다가 꼰대기질이 전혀 없어서 나에게도 존대를 했었다.


하지만 리더십이 부족한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행동이 분명하고 똑 부러지지 않아 답답함을 자아냈다. 마치 착하지만 무능력한 가장 느낌이었다. 성실하게 일은 하지만 보증을 잘 못 서서 집안 구성원을 힘들게 하는 그런 가장 말이다.


사수의 취재 과정은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듯하게 진행됐고 조금은 신기했다. 녹음기를 켜놓고 짧게 메모를 하면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취재원은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사수는 나오면서 “이번 취재는 메일로 다 상세히 설명해서 쉽게 끝났다”며 “사전 취재를 충분히 하고 가야 다양한 소스가 나온다”고 얘기해줬다. 그야말로 취재 과정을 어깨너머로 배운 셈이다. 그것도 인터뷰만 배웠을 뿐 르포나 스트레이트 기사 작성을 위한 취재 등 다양한 방식은 내가 직접 부딪히고 해나갔다. 이렇게 스스로 터득한 방식은 장·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인 교육에 참여했으면 더 날카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장점이라면 직접 부딪힌 방식 덕에 취재원 섭외에 적극적이고 틀에 박힌 기획이 아닌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다는 점 정도다. 그래도 10년 넘게 취재하고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언론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리고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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