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라도 발을 뺏어야 했는데…
‘K-직장인’ 하루 패턴은 늘 똑같았다. 거리가 먼 관계로 6시 40분에 알람을 맞춰놨고 알람을 끄면서 하루가 시작됐다. 고3 이후로 그 시간대에 일어나 본 경험이 없었던지라 며칠은 너무 피곤하고 졸려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랬던가? 피곤하지만 그 시간대면 절로 눈이 떠졌고 잠드는 시간도 점점 늦어지더니 결국 12시가 돼야 잠자리로 향했다.
그렇게 1주일이 흘렀다. 27살 사회초년생이 며칠 사이 훑고 살핀 게 얼마나 영양가 있었겠느냐 말이다. 그냥 아담한 사무실에 그런저런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일하는 분위기로만 알았지. 꼰대 사장에 착하지만 무능력한 사수 그리고 편집장과 임주임으로 불리던 경리가 이모와 조카 관계란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입사하고 며칠 뒤 사진기자 겸 편집기자 임무를 맡은 새로운 기자가 입사했다. 그리하여 우린 입사동기로 묶였다. 나보다 2살 많았던 그 동기와는 서로 존칭하면서 지내기로 했다. 우린 서로 '김기자님', '이기자님'이라고 부르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우린 입사 후 열흘 정도 지나던 그 시점에 마감이라 불리는 지옥을 경험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입사하기 전 약 두 달 정도 편집장과 사수 둘이서 고군분투하며 마감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나와 김기자를 급하게 입사시키며 용병처럼 부려 먹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마감은 말 그대로 잡지 인쇄를 넘기기 전날 즉 '데드라인'이다. 1차 마감 때는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편집팀에 넘기면 인디자인을 통해 레이아웃을 잡는다. 편집팀은 마감 전 1주일간 기사를 적당한 레이아웃에 얹히고 잡지의 전체적인 톤앤매너를 잡는다. 마감 날에는 완성된 지면을 기자들끼리 돌려보면서 교정·교열을 본다. 대부분 매체가 3차까지 본다. 그리고 여유 있는 매체는 기자뿐 아니라 전문적인 교정·교열 기자가 따로 있다. 그러나 아담하기 그지없는 그 잡지사에는 전문 교열기자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리하여 나와 사수가 1, 2차를 보고 마지막인 3차는 편집장이 보기로 했다. 텍스트로 보면 굉장히 심플하고 쉬워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은 그 다음날 9시까지 그러니까 24시간가량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 좁디좁은 곳에서 5명이 온종일 있었으니 이산화탄소량도 굉장하고 배에서 나는 의미심장한 소리까지. 난 냄새에 예민한데 하필 그때가 초여름 시기였다. 산소량도 없고 땀냄새 등 역하고 탁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젠 끝이다"라고 편집장이 말을 하고 결정을 해야 집에 갈 수 있는데 그분은 선택을 못했던 분이었던 것이다. 수장이 선택을 못하는데 결정권 없는 우리가 뭘 할 수 있었겠느냐. 그냥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네이트온으로 서로에게 하소연을 했을 뿐. 인쇄소에서 걸려오는 독촉 전화 덕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게 내 인생 최초의 ‘마감’이었다. 피폐하기 그지없었던 마감 뒤엔 현타 그 자체였다.
24시간을 사무실에 묶여 있었는데 택시비조차 주지 않았다. 임주임은 경험해본 일이어서 그리 놀라지 않았으나 나와 김기자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고생했는데 택시비는커녕 아침도 안 사주다니. 출근하는 직장인들 사이를 비집고 퇴근하는 우리 셋은 처량하게 여의도역을 향해 갔다. 아, 그때라도 발을 뺐어야 했는데, 무지했던 난 꾸역꾸역 매달 마감에 참여했다. 김기자와 네이트온으로 쌍욕을 하면서 말이다. 그때부터 난 갑을병정 중 정의 일상이 이어진 셈이다. 이런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