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노 근본 K-기레기의 시발점
“꿀타래 보다 더 촘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저희 잡지사에 지원하신 거 맞죠? 면접 볼 수 있나요?”
“네. 가능하긴 한데요?”
“내일 시간 되시는 지요?”
“내일요? 되긴 하는데…”
이렇게 빨리 면접 연락이 온다고? 믿기지 않았다. 마치 보이스피싱 급의 놀라움이었다. 지금처럼 잡지사 생태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저런 면접은 애초에 응하지 않았어야 했다. 왜냐고 취재기자는 부족하고 누구든 빨리 데리고 와서 일을 시켜야만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업시장에 발을 디딘 1일 차 망생이가 잡지사 생태계는 물론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도통 알지 못했다. 그나마 서점에서 스치듯 본 잡지여서 지원했고 면접 제안을 받았다는 거에 기분이 좋았다. 지금처럼 회사 뒷이야기를 가감 없이 평가할 수 있는 앱이 있었다면 면접조차 가지 않았을 텐데 그 시절엔 정보 얻을 곳이 취업카페뿐이었다. 그런데 난 그 흔한 취업카페도 가입하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망생이 었던 것이다. 그렇게 첫 커리어부터 꿀타래보다 더 촘촘하고 찐득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깔끔한 면접룩을 입고 9호선 샛강역으로 향했다. 우리 집과 대각선 방향에 있는 그곳은 너무나도 멀었다. 지하철로만 1시간가량 소요됐으니 집 문부터 시작하면 90분은 족히 걸린 셈이다. 첫 시작이 강렬한 마라맛 그 자체였던 것이다. 거리도 사람들도 일도 모든 게 매웠다.
면접은 너무나도 쉽고 약소했다. 편집장이라는 사람과 약 30분 정도 담소 나눈 게 끝이었다. 인턴경험도 없는 나를 대뜸 합격시키더니 그 주부터 나오라며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정작 내 의사는 정확히 물어보지 않았고 편집장 마음대로 이미 난 그 잡지사 에디터 3호로 확정됐다.
직장인이라면 가장 중요한 부분인 연봉, 복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나도 무지했던 게 그런 당연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취업난이 그토록 심했던 당시 난 일사천리로 취업에 성공했다. 그것도 내가 원하던 분야인 에디터로 한큐에 끝낸 것이다.
작디작은 귀여운 잡지사에 나와선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 나 취업했어. 이번 주부터 나오래”
엄만 너무 잘됐다며 같이 기뻐해줬다. 밥벌이를 못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취업이 된 거냐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엄마한테 인정받은 거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첫 출근 날, 편집장은 나에게 사수라며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기자를 소개했다. 당시 사수는 지금 내 나이대로 추정된다. 사수는 나에게 “기사를 써 봤냐” “우리 잡지를 본 적 있냐” 등 몇 가지 질문을 했고 난 “기사는 안 써봤지만 글 쓰는 걸 좋아하고 학부 때 많이 써봤다”고 은근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싸이월드 다이어리급 쪽팔림이다.
기사를 한 번도 안 써본 난 ‘그냥 블로그처럼 쓰면 되지’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기자 일을 시작했다. 우선 내 첫 업무는 과월호를 훑어보고 어떤 기사를 다루고 있는지 분석하는 거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잡지는 사양 산업이었고 판매부수도 저조했다. 해당 잡지는 주로 정치인, 경제인을 조명하고 다음은 광고성 기사 그리고 약간의 피처(트렌드, 문화 등) 기사를 다루고 있었다.
그 약간의 피처 부분이 내가 담당할 꼭지였다. 첫 출근 날이 끝날 무렵 사수는 내게 취재하고 싶은 기획안을 제출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 무근본 K-기레기의 역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