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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Dec 08. 2022

어떤 어른(1) 어른의 손을 놓친다는 것

그러니까 언제였던가, 내게 세상의 쓴맛을 가장 처음으로 맛보여준 곳은 교회와 교회 사람들이었다. 나는 청소년 선교단체에서 독실하고 전위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당찬 청소년이었다. 어느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교회 어른 입에 담기도 힘든 범죄 사실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일이 있었다.


 그는 나의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이었으며 내가 신앙을 갖게 되고 교리를 배우며 실천해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나의 에버노트에는 그의 설교 녹취록이, 나의 핸드폰은 그의 제자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메세지들로 가득했다. 그의 갑작스런 부재와 들려오는 2차가해적인 언행은 충격 그 이상이었으며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도,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이 친구들과 돌연 사라진 그가 보고싶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시절도 있었다.


 많은 독자들이 그 사람의 구체적인 범죄명에 대해 궁금증을 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내가 짚고 싶은 포인트는 그 당시 내게 가장 결핍되었던 지점이 어디였는가에 관한 것이다. 부모님의 보호나 가르침 없이 홀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된 나에게는 그래서 무엇을 기도해줄까,하고 물어줄 교회의 흔한 어른 한 사람이 간절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의 열정적인 예배와 모임이 결국은 자신과 자신의 단체만이 옳다는 가스라이팅의 결과물이었다면, 나는 일순간 어른의 절대적인 손을 놓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능력도, 보호해줄 사람도 없었다. 친구들은 원래 다니던 교회로 부모님께로 도망치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돌아갈 교회도(출석하던 교회도 그의 교회였다) 신앙적인 부모님도 부재했다. 언제나 굳건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선배들 또한 혼란에 빠져 서로를 비난하고 단죄하는 상황을 목격한 나에게 누구의 행동이 왜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를 알려주는 사람과, 그럼에도 여기에 있으면 안전하단다, 포근하고 신뢰할 만한 한 마디가 고팠다. 두려웠다.


당연한 수순처럼 나의 모든 세상과 인간관계망은 카오스 국면에 돌입하게 되었다. 몇년 간을 울음과 회의와 의심으로 신앙과 신념의 무너진 기둥들을 수리하느라 마음을 바쁘게 놀려야 했더랬다. 이 모든 과정을 교회 어른들은 그저 이슈와 가십으로 소비하며 한 발자국 뒤에서 자신의 자식들을 보호하기 바쁘고 종교적 고아들을 관조하는 것처럼 느껴져 외롭고 억울하기도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자려고 누우면 자꾸만 눈물이 났고 몇 년이 지난 뒤에도 어른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마음의 물음에 그럴듯한 답을 달지 못했다.


 그것이 스물둘의 일인데 스물여덟인 아직까지도 그럴듯한 어른을 별로 만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이라는 황량하고 전의가 감도는 벌판에 홀로 남겨진 치타 새끼마냥 방황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도 외로운 일이다. 나에게 이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는 어른이 있었더라면. 지금 있다면. 천진난만하고 순진했던 나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일을 감당하고 먹잇감을 사냥하는 법을 알려주며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독립시켜줄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내 불안한 시절을 누군가에게 의탁하고 싶은 소망은 나이가 드는만큼 둘 곳이 좁아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사람은 의지할 만한 존재가 아니며 진실된 어른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회의감이 깊어질 수록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는 것은 정말이지 감당하기 힘든 양가감정이다. 약간은 무안한 기분이지만 나는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여전히 어른을 원한다고 적고 싶다. 난리를 피우고 속을 썩이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만큼이나 명료하게 느끼고 있기에 거짓을 말할 수 없다. 나는 존재 자체로 마음 한켠의 안정을 주는 어른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선택의 기로에 서고 트라우마적인 사건에 노출될 때면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기도하게 된다. 어른이 필요합니다, 내가 너무너무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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