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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식 Jun 18. 2018

워드프로세서에 가장 쓰고 싶은
것부터 입력하기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글쓰기 안내서 2

글쓰기가 막막한 이들에게 아주 간단한 방법 하나를 소개한다. 바로 가장 쓰고 싶은 장면부터 쓰는 것이다. 


가장 좋은 장면, 

재밌을 것 같은 장면, 

제일 재미있는 절정이 될 것 같은 장면, 

이 이야기를 쓰면서 제일 신날 것 같은 장면을 그 무엇보다 먼저 쓴다. 


물론 문제는 있다. 대뜸 가장 결정적인 장면부터 시작하면 독자가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가 있다. 도입부에서 배경을 알려주고 등장인물을 보여준 뒤에, 독자가 등장인물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친숙해져서 등장인물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을 때쯤 가장 재미난 결정적인 장면을 터뜨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이유 때문에 이 방법은 한 세대 전만 해도 쉽게 써먹기 어려웠다. 재미있는 장면부터 바로 써내리고 싶어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 한계를 끝낼 수 있는 도구가 있다. 바로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다.


워드프로세서와 컴퓨터가 있기 때문에 일단 제일 재미있는 장면을 써놓고 앞에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대목을 앞에 끼워 넣을 수 있다. 


그러면 된다. 다시 끼워 넣어도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 펄럭거리는 원고지 사이에 복잡하게 수정을 위한 기호를 까맣게 쓰거나, 수백 장을 뒤적이며 페이지를 맞추려 헤맬 필요가 없다. 그냥 화면 위에서 깜빡거리는 좁다란 까만 네모를 움직여서 글을 더 끼워 넣고 싶은 데에 옮기고, 더 써넣어야 할 내용을 나중에 더 써넣으면 끝이다. 

워드프로세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제일 재미난 장면부터 먼저 쓴다는 이 화끈한 수법을 현실에서 부드럽게 활용할 수 있다.



내가 이 방법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의욕적으로 쓰기가 쉽다.

본격적으로 재미난 부분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루한 부분을 쓰다가 작가가 먼저 지쳐버리면 글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될 위험이 있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단순히 쓰는 것 자체가 귀찮아질 수도 있다. 처음에는 신선한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그 소재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점점 진부한 느낌에 휩싸일 수도 있다. 나중에는 체력이 부족해질 수도 있고, 혹시 병이 나서 드러누울 수도 있다. 그 외에도 글을 쓰기 싫은 온갖 이유가 비무장지대의 지뢰처럼 빽빽하게 작가의 걸음걸음마다 숨어 있다. 그럴 때 일단 글 쓰는 사람 스스로가 글 쓰는 것이 즐겁고 신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부터 출발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두 번째, 활기차고 생각이 신선할 때 제일 중요한 장면을 쓸 수 있다.

제일 쓰고 싶은 장면은 대체로 제일 중요한 장면이거나 적어도 무척 아끼는 장면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장면을 잘 써야 하고, 그 장면이 멋져야 하고, 그 장면의 비중이 커야 한다. 그런데 그 대목이 절정 장면이라고 해서 나중으로 미뤄두면 그 대목을 쓸 즈음에는 글 쓰는 사람이 힘이 빠져 있을 수가 있다. 그래서 그토록 중요한 장면을 대충 쓰게 될지도 모른다. 처음 그 대목을 쓸 때 왜 그렇게 좋은지, 왜 그게 멋진지 마음속에 갖고 있던 느낌도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잊힐 수 있다.

가장 쓰고 싶은 장면부터 쓰면 넉넉한 시간을 활용해서 그 장면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일 수 있다. 나중에 다른 이야기를 써나가다가 다시 가장 쓰고 싶은 장면으로 되돌아가서 그 부분을 다듬고 더 좋게 고칠 기회도 넉넉하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장면이 가장 많은 시간을 거치며 가장 여러 번 돌보는 대목이 된다. 그렇게 해서 중요한 장면에 비중을 더 많이 할애하고 중요한 장면을 더 잘 쓸 수 있게 된다.


자기소개서를 쓴다면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떻게 학교를 다니며 자랐는지 차례대로 장황하게 쓰기 전에, 왜 내가 이 직장에 적합한 사람인지 핵심부터 쓴다. ‘지난 5년간 이태원의 옷 가게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하루에 네 시간씩 일했기 때문에 무역 회사의 해외영업 일도 잘 배울 자신이 있다’는 말부터 시작한다. 만약 구인처에서 정해놓은 자기소개서 형식상 앞부분에 어린 시절 가정교육에 대해 반드시 쓰게 되어 있다면 그 대목은 중요한 내용부터 먼저 다 써넣고 나중에 써서 끼워 넣으면 된다.

일기를 쓸 때도

오늘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서 아침으로 뭘 먹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보다는 저녁때 만난 친구와 왜 싸웠는지부터 쓴다. 지리산 등산기를 쓴다면 출발 전에 얼마나 설렜는지, 지리산까지 가는 길에 어떤 버스를 탔는지 하는 내용은 차차 쓰고 반달곰과 마주쳤을 때의 공포와 반달곰을 쫓아내기 위해 휴대폰으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크게 틀어놓고 온 힘을 다해 큰 동작으로 춤을 췄다는 사연부터 쓴다.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쓰고 나면 그 앞부분에 끼워 넣어야 하는 이야기는 자연히 간략해진다. 이미 가장 쓰고 싶은 부분을 써버렸는데 그 앞에 벌어지는 일들은 굳이 주절주절 설명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지리산에서 만난 반달곰 앞에서 춤을 추는 이야기를 이미 써놓았는데, 버스 기다리며 시간 때운 이야기를 뭘 그렇게 길게 하고 싶겠는가? 그렇게 하면 이야기를 완성한 최종 결과에서도 시작하는 대목이 빠르고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일단 이야기의 핵심을 먼저 쓰고 보면 이야기를 쓰기 전에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 다른 느낌이 든다. 구체적인 글을 눈으로 보고 나면 이야기의 구조를 좀 더 냉철하게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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