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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식 Jun 25. 2018

꺼리는 글에는 이유가 있다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글쓰기 안내서 3

소재를 찾을 때 다른 이야기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점들을 메모해두는 것이 좋다. 그런데 찾은 소재를 펼쳐나가는 동안에는 반대로 다른 이야기에서 싫었던 점들을 피해나가는 것이 유용할 때가 있다. 더는 보고 싶지 않은 소재, 내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구성, 짜증나는 결말, 딱 보기 싫은 상황, 심지어 내가 싫어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런 것을 메모해두었다가 내 글을 쓸 때는 온 힘을 다해 피해가는 방법이 유용하다.


예를 들어, 여행기나 기행문을 쓰는데 여행한 장소마다 그곳에 있는 동상이나 건물의 역사와 유래를 백과사전식으로 줄줄 늘어놓는 것은 따분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면 그런 기행문이 따분하다고 어디 메모해두었다가 내 기행문을 쓸 때에는 그렇게 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은 이야기를 읽는데 식당 인테리어가 아름답다, 초라하다 혹은 분위기가 좋다, 어떻다고 하는 것은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다면 그렇게 메모해두고 내가 식당에 관한 글을 쓸 때는 그런 글을 쓰지 않도록 노력하면 된다. 반대로 식당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가게에서 머무는 동안 느끼는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 대해 다룬 식당 소개글이 너무 소홀하고 정확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내가 글을 쓸 때는 그런 내용을 차분하게 전달할 궁리를 하면 된다.


한때 나는 음식 맛을 설명할 때 ‘식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식감이란 그저 ‘먹는 느낌’이란 뜻으로 사실 대부분의 경우 쓰나 안 쓰나 별 상관도 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라는 느낌 때문인지 ‘식감’이란 단어만 쓰면 뭔가 세밀한 음식 맛 평가를 했다고 뿌듯해하는 듯한 글을 너무 많이 봤나 보다. 그러고 났더니 갑자기 그 단어가 너무 싫어졌다. 

‘식감’이란 말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였는데 2000년대 후반쯤 전염병처럼 퍼져서 지금은 너도나도 아무 때나 대단히 자주 쓰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무렵 음식 맛을 설명할 때 무조건 ‘식감’이라는 단어는 빼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맛을 자세하고 생생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재미난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TV 연속극을 보다 보면 ‘정말 이런 이야기는 지긋지긋하고 지겹다’고 느낄 때가 가끔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메모해두거나 잘 기억했다가 피하려고 노력한다.



싫어하는 이야깃거리를 피하면서 글을 써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싫어하는 이야기를 많이 봤다는 것은 남들이 주로 그런 이야기를 택하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면 손쉽게 다음 이야기를 짜기가 좋다든가, 쉽게 독자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든가, 어려운 상황을 쉽게 정리할 수 있다든가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싫다고 피하게 되면 그만큼 남들이 쉽게 풀어간 이야기를 더 어렵게 푸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신에 그만큼 참신한 이야기를 쓸 가능성이 높아진다. 독자가 뻔히 내다볼 수 있는 흐름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서 그만큼 독자를 더 놀라게 하고 다음 이야기에 독자가 더 관심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부잣집 며느리로 들어온 주인공이 시집살이를 하는 이야기라면 누구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천박하다고 몰아붙여 주인공이 고난에 빠지는 이야기를 생각한다. 주인공의 남편은 그런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또 다른 갈등을 겪는 곱상한 젊은이이거나 멍청한 얼간이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런 이야기를 지긋지긋하게 싫어한다면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짜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잣집 며느리로 들어온 주인공이 오히려 시어머니와 결탁하여 남편을 없애려고 하는 이야기는 어떨까? 어떻게 하면 그런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을까? 남편이 시어머니의 친자식이 아니라고 하거나 남편이 사악한 마법 같은 것을 믿게 되어 어마어마한 악행을 몰래 저지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궁리 과정에서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싫어하는 이야기를 피하는 방법을 쓰면 내가 싫어하는 점들을 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내가 애초에 어떤 이야기를 싫어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선명하게 느끼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분명 안 좋은 점을 느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싫어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싫어서일 수도 있고, 이야기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너무 비도덕적이거나 너무 결백하거나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벼운 이야기라서 싫어했을 수도 있다. 혹은 너무 많이 보던 이야기라서 지겨웠을 수도 있다. 싫어하는 이야기를 피해 가면 그런 분명치 않은 점들도 피해 갈 수 있다.


사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이렇게 하면 내가 싫어하는 이야기를 안 쓰게 되니 그만큼 글 쓰는 것이 덜 고달프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에 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글 쓰는 의욕을 돋우고 좀 더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니 여기서 이야기하는 ‘싫어하는 이야기’란 내가 싫어하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지, 남들이 말하는 좋지 않은 이야기를 쓰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음식 맛을 이야기할 때 식감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불만이 없다면 써도 된다. 반대로 아무리 요즘 공무원처럼 행동하는 저승사자 이야기와 시간여행으로 과거에 간 고등학생 이야기가 잘 팔린다고 해도, 나는 그런 이야기들이 짜증스럽다고 느낀다면 메모해두고 피하기로 결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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