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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식 Jul 09. 2018

재미의 법칙, 감동의 원리를 찾아라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글쓰기 안내서 5

재미있는 영화나 감동적인 소설을 봤을 때, 어떤 점이 재미있었고 어떤 점이 좋았는지 정리해놓으면 꽤 유용하다. 

그렇게 정리한 목록을 가끔 들여다보면서 어떤 소재로 글을 시작할지 이리저리 고민해보면 그 자체로도 재미있는 여흥이 될 때가 있다. 우선은 읽은 소설과 영화를 정리해두고 ‘재미있었다’와 ‘재미없었다’ 두 가지로 분류해 기록하는 정도도 좋다. 여기에 한두 줄 정도 어느 장면이 재미있었는지, 어느 장면이 감동적이었는지 써놓으면 일단 괜찮은 출발이다.

이때 그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대목’을 골라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을 찾아내려고 들면 영화 전체의 의의와 깊이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통찰하게 된다. 그것은 온갖 재밋거리들을 모아서 소재의 밭으로 써먹으려는 목적에는 방해가 된다. 그저 잔재미가 있었던 순간, 크게 핵심으로 나온 내용은 아니었지만 기대되고 즐거웠던 순간, 작은 묘사였지만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이라도 기록해놓으면 충분하다. 반대로 기억에 깊이 남은 장면이라고 해도 가만 돌이켜보니 별로 재미는 없었던 장면이라면 써둘 가치는 없다. 잔인하거나 충격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은 선정성 때문에 그 가치 이상으로 기억에 오래 남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으로 좋은 글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 본 이야기의 장점을 기록할 때는 자신의 감상과 관점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떠들지만 나는 재미가 없었다면 재미가 없는 이야기로 취급해도 된다. 별점을 매기려는 게 아니다. 다른 이야기를 보고 거기에서 내 글의 소재를 찾을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로 그렇게 느낀 것에 집중해야 한다. 싫었던 장면, 지겨운 장면, 지긋지긋했던 장면을 기록해두는 것도 유용한데, 이것은 소재를 찾기보다는 소재를 이야기로 펼쳐나가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자. 재미있게 본 장면, 감동적으로 읽은 대목이 왜 재미있었는지, 왜 감동적이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그것까지 써두면 더 좋다. 이것은 말하자면 재미의 법칙, 감동의 원리를 자기 나름대로 탐색하는 일이다. 법칙과 원리를 잘 포착했다면 그 법칙과 원리를 이용해 내 이야기도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영웅본색〉 1편에서 범죄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택시기사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적룡이 주윤발을 오래간만에 다시 만나는 장면이 있다. 선글라스를 끼고 불타는 지폐로 담배에 불을 붙이던 화려한 주윤발은 초라한 모습이 되어 날건달의 자동차 유리를 닦아주고 구걸하듯이 받은 돈으로 살고 있다. 그런 주윤발을 적룡이 다시 만났을 때, 주윤발은 주차장 구석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다. 적룡을 본 주윤발은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흘린다. 나는 이 장면이 아주 슬프고 아련한 대목이라고 느꼈다.

이 영화를 보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 장면이 왜 슬프고 아련했는지 고민해봤다. 우선 내린 결론은 ‘밥 먹으면서 울어서’였다. 그러고 보니 “눈물 젖은 뭘 먹어보지 못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어쩌고 하는 흔한 옛날 글귀도 생각났다. 눈물 젖은 밥, 눈물 젖은 빵은 아마 밥 먹으면서 눈물 흘리는 장면을 상징하는 어구인 것 같다. 그 말처럼 ‘밥 먹으면서 우는 장면’은 특히 슬퍼 보인다, 이런 게 슬픈 장면의 법칙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면 ‘왜 밥 먹다 우는 장면은 슬픈가?’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보통 잘 우는 사람이라도 밥 먹다가 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밥 먹는 것은 평범한 일상생활을 가장 상징하는 행동이다. 무언가를 별 의식 없이 자주 하는 것을 두고 ‘밥 먹듯 한다’라고 표현하지 않나. 밥 먹다가 우는 장면은 바로 그런 가장 간단한 일상생활조차 무너질 정도로 큰 슬픔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 아닐까? 그래서 밥 먹다 우는 장면이 슬픈 것처럼 느껴지는 것 아닐까?

울음을 참으면서도 억지로 밥을 삼키는 상황 자체가 슬픔을 자아내는 것일 수도 있다. 밥을 먹는 행위는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한 일’을 ‘먹고살자고 한 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울면서 밥 먹는 장면은, 슬픔이 치밀어 올라오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꿋꿋이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의 처지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밥 먹다 우는 장면은 슬픈 것이다.


어떤 게 정확한 분석인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보기에 그럴 듯한 법칙으로 보인다면 소재로 활용하기에 충분하다는 점이다. 밥 먹다가 우는 장면이 정말로 일상생활을 무너뜨리는 슬픔을 잘 표현하기 때문에 슬픈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고 느꼈다면 일상생활이 무너지도록 엄습해 오는 슬픔은 특히 슬퍼 보인다는 법칙을 활용할 수 있다. 꼭 밥 먹다가 우는 장면이 아니라도 그 법칙을 활용한 장면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잠을 자다 말고 갑자기 슬픔이 몰려와서 베개를 적시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내가 본 소설이나 영화에서 어떤 점이 재미있었는지, 어떤 점이 감동적이었는지 파헤치다 보면 자기만의 재미 법칙이나 감동 원리가 하나둘씩 생길 것이다.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법칙과 원리는 더 추상화되고 일반화될 것이다. 이런 내용들을 어느 정도 모아놓는다면 소재가 필요할 때 법칙과 원리를 이리저리 조합해가면서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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