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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식 Jul 16. 2018

소재는 반드시 메모해둔다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글쓰기 안내서 6

어떤 작가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그 노래가 불러일으키는 감상에서 소재를 얻는다고 한다. 나는 노래보다는 가사가 없는 음악이 소재를 떠올리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가사가 있는 노래는 너무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긴 경우가 많고, 특히 가사가 좋은 노래는 구체적으로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사연과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지 노래를 들으며 각인되는 수가 있다. 그러면 자꾸만 거기에 휘둘리게 되고, 나 스스로 떠올리는 새롭고 다채로운 이야기, 재미난 표현이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음악을 듣는 것보다 그림을 보는 것이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데 더 효과적이다. 그림이 어떤 사연을 담았는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유럽 그림 중에는 성경이나 고대 신화를 그린 것이 많다. 그 분야에 특별한 지식이 없다면 그림만 보고 구체적으로 누구의 무슨 사건을 그린 것인지 다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 오히려 제목이나 그림이 나타내는 이야기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그림을 보는 것이 소재를 캐내기에는 더 좋은 것 같다.


목동 파리스에게 세 여신이 황금 사과를 달라고 하는 신화를 그린 그림을 본다고 해보자. 만약 그 이야기를 모른다면 그림에서 보이는 것은 한 목동 소년과 아름답고 성숙한 여자 세 명 그리고 목동이 들고 있는 이상한 과일 하나다. 이게 무슨 상황을 나타낸 그림일까. 사과가 어떤 범죄의 증거고 세 여자는 범죄의 공모자이기 때문에 소년에게 증거를 넘기라고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 혹은 소년은 세 여자의 시종으로 세 여자가 주변에서 재미난 것을 구해오라고 하자 나무 열매를 하나 따 와서 익살을 부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림에 나와 있는 사람의 표정과 느낌, 정황과 배경 묘사를 보면서 상상을 계속 다듬어보자.

미술관을 걷다가 흥미를 끄는 그림, 무슨 내용인지 궁금한 그림을 발견하면 멈추어 서서 상상해본다. 그림 제목을 보고 인터넷에 검색해본다면 쉽게 정답을 알아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글을 쓸 소재를 얻기 위해서는 정답을 모르는 편이 도리어 낫다. 어떻게 하면 그림에 나온 상황이 될 수 있을지, 얼토당토않은 일이라도 마음껏 상상하면 된다. 두 사람이 같이 그림을 본다면 이런저런 상상을 서로 나누며 그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토론하며 놀 수도 있다. 황량한 들판에 쓰러져가는 집 한 채만 있는 풍경화라 할지라도, 저런 집에는 누가 살 것 같으며, 저런 마을에는 무슨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지 상상해본다면 소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비슷한 방법으로 다른 소설의 제목이나 시의 제목, 시구를 보고 이야기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나는 어릴 때 『황야의 이리』가 황야에서 배고픈 이리가 온갖 고생을 하며 겨우겨우 먹이를 찾아 처절하게 생존해나간다는 이야기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아무도 비법을 상상할 수 없는 신비한 순간 이동 마술사의 사연을 다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를 마음껏 상상해보고 소재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데, 무슨 이유로 월4이 그렇게 잔인해진 것인지,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 있다는데, 왜 목이 길다고 슬퍼지는지 걷다가 장난삼아 나만의 이야기를 상상해보아도 나쁘지 않다.

여러 가지 방법을 설명하면서 꼭 곁들여야 하는 중요한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 이런 방법을 통해 괜찮은 소재를 떠올린다면 바로 메모해두라는 것이다. 


소재가 생각나면 메모해두자.


지금 급히 글을 써야 하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해보자. 글감 찾기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이다. 이럴 때 마지막으로 써볼 만한 방법은 이것저것 종이 위에 닥치는 대로 생각나는 것을 써보는 것이다. 좋거나 나쁘거나 무작정 최대한 많이 써본다.

가득 써놓고 그중에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을 추려내고 비슷한 것끼리 분류하다 보면 제법 괜찮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이런 방법은 자기소개서나 제안서 같은 것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뭐가 있는지 닥치는 대로 써보고, 내 인생의 사연이나 사건들도 이것저것 막 써놓은 뒤에 다시 한 번 전체를 살펴보면서 비슷한 것끼리 적당히 묶고, 연결될 수 있는 것들끼리 엮어서 나를 소개할 이야기를 짜낸다.

당장 닥쳐서 아무거나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미리 소재를 이것저것 생각해놓으면 질을 훨씬 끌어올릴 수 있다. 이야기를 쓸 때도 미리 써둔 소재를 뒤적거리며 괜찮은 것을 뽑으면 결과는 훨씬 더 상쾌하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나는 지금 이 글도 평소 이리저리 메모해둔 ‘소재 떠올리는 방법’을 보면서 쓰고 있다.

떠오른 소재는 반드시 어딘가에 메모해두어야 한다. 생각보다 소재에 대한 생각은 아주 쉽게 잊힌다. 다른 사람이 쓴 재미난 소설이나 기발한 영화를 보고 ‘어, 나도 저런 거 한번 써보겠다는 아이디어 갖고 있었는데’라고 생각한 적이 혹시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설령 그런 소재를 떠올렸다고 해도 아마 곧 잊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 소재는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잠깐 갖고 있었다가 날린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그 소재를 메모해두었다면 하다못해 메모한 것을 옆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봐라, 내가 정말 저 생각 먼저 했지?” 하고 싱거운 자랑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취업하려고 맨날 원서만 쓰고 있는데, 평소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좋은 직장을 갖게 되면 누구라도 질투가 나고 부아가 치밀기 마련이다. 만약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면 이미 득도하신 분이니, 뭐 딱히 다음 문장은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그렇게 시기심에 휩싸였을 때 왜 내가 그 사람보다 낫고, 그 사람은 좋은 직장을 차지했는데 나는그렇지 못한 것이 왜 부조리한지 메모해두자. 나중에 자기소개서를 쓸 때 그때 썩은 마음으로 써놓았던 메모를 참고하면 남과 비교해 내가 나은 점을 좀 더 힘 있고 선명하게 쓸 수 있다. 자기소개서를 쓸 의욕도 더 키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소재가 생각나면 메모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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