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글쓰기 안내서 07
멋진 표현을 쓰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자면, 우선은 최대한 자세하게 쓰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떤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재료를 많이 모은 뒤에 그중에 정말 아름다운 것, 알맞은 것을 전체 흐름에 맞는 분량만 뽑아서 배치한다. 자세한 상황을 기억해내고 그것을 상세하게 풀어놓는 과정에서 남들이 쉽게 포착하지 못했지만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잡아낼 수 있을 것이고, 쉽게 지나칠 만한 내용을 붙들어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중요한 대목, 중요한 장면을 상세하게 표현하는 데 집중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중요한 부분은 길게 강조하면서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게 분량이 많아야 읽는 사람의 기억에 많이 남으므로 중요한 느낌을 주기도 쉽다.
그러니 중요한 대목이라면 그냥 한마디로 치고 지나갈 장면이라도 최대한 세세하게 그 순간에 대한 느낌을 많이 전달하면 된다. 그 순간에 내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고, 어떤 냄새가 났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쓰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판단한 것과 고민한 것들을 쓴다. 내 몸의 각 부위에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쓰고, 내 바로 옆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쓴다. 그런 설명에 필요한 배경이나 과거의 일도 꺼내 덧붙여도 좋다. 그렇다고 무작정 여러 정보를 나열하라는 뜻은 아니다. 세세하게 그리면서 그 대목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찾아내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 온갖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의 목적에 어울리도록 배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제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온 이야기를 쓴다고 해보자. 간단하게는 “어제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왔다”는 한 문장으로 끝난다. 실제로 어제 내가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는 특별한 사건이나 웃긴 일 따위는 없었으므로 이렇게만 써도 표현의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를 자세히 쓰기 위해 어제 걸어오면서 본 것과 들은 것을 생각한다. 역을 나서자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인도 옆을 지나는 버스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공기를 느꼈고, 길가에 있는 분식집을 본 것도 기억난다. 하필 분식집을 눈여겨본 이유는 저녁 먹기 전이라 출출했고 분식집에서 오징어 튀김이나 순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기 때문이다. 한편 날씨가 추워서 걸어가지 말고 버스를 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볍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버스를 타면 걷지 않고 훨씬 안락하게 집 앞까지 갈 수 있다. 그렇지만 건강을 유지하고 살을 빼기 위해서 버스를 타지 않고 걷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정도로 생각을 펼치다 보면 이제 이야기의 초점이 나타난다. 그냥 흔한 집에 가는 길이지만, 살이 찌는 길과 건강한 습관 사이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 된다.
간단한 상황을 자세히 쓰면서 좋은 표현을 건지는 연습은 여러 가지로 해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가슴 떨리는 그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최대한 자세히 쓴다면 원고지로 몇 장이나 쓸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입구에서 꼭대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쓸 수 있을까? 커피를 가장 맛있게 마셨을 때의 맛과 가장 맛없게 마셨을 때의 맛에 대해서는 얼마나 써낼 수 있을까?
유의할 것은 자세하게 궁리해 완성된 글로 옮길 때도 자세하고 장황하게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자세하게 궁리한 온갖 이야기 중에서 재미나고 좋은 대목이 하나뿐이라면 다 버리고 그것 하나만 짤막하게 골라 와서 사용해도 된다.
“어제 지하철역에서 집에 걸어오는 길에 나는 분식집을 보았다. 유독 더러운 기름을 쓰는 가게였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더 입맛을 돋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더러운 기름 냄새를 맡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냥 지나쳤다.”
내가 전해주고 싶은 핵심이 이 정도라면, 이 네 문장만 남기면 충분하다.
모든 문장을 한 가지 좋은 기술로 열심히 매만진 것이 아름다운 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글은 대체로 필요할 때마다 어울리는 방법과 분량을 적용한 것이다. 이야기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꾸밈없는 짤막한 한마디로 던질 때 더 서늘하고 비정한 느낌이 살아서 마음에 오래 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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