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형 인간의 셀프 챙김 생존 일기
남의 일 말고 내 일, 내 밥 먼저 챙기기로 결심한 파워 J 노력형 인간이 살아남으며 느끼고, 먹고, 경험하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공유합니다. 오늘도 잘 살아내셨나요? 저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오늘도 살아남았습니다
그렇다. 제목 그대로다. 골다공증 판정을 받았다. 나이 서른 하나에. 어쩐지 잘 부러지더라니...(?)
좋지 않은 몸 상태로 꾸준히 진료를 받고 있던 가정의학과 담당 선생님께서 이 컨디션으로 그렇게 오래 버텨왔다면, 아마 뼈에도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며 권해주신 골밀도 검사. 처음 검사를 권해주셨을 때부터, 검사를 진행할 때도 '이런 검사까지 해야 하나' 했던 내 안일한 생각은 틀렸고, 선생님의 촉은 맞았다.
앞 선 글에서 적었던 것처럼 바쁘단 핑계로 식사를 거르고, 피곤해도 꼭 해야 할 일은 다 해야만 하는 ESFJ인 주인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아 주자, 몸은 셀프로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했다. 밥도 제 때 주지 않고, 활동도, 휴식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는 주인에게서 부족한 영양분들을 어떻게든 찾아 섭취해야 했고, 부족한 칼슘의 공급원으로 뼈를 선택했다.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칼슘을 제공하지 않을 때, 내 몸은 뼛 속에서 칼슘을 쪽쪽 빨아먹고 겨우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그래, 내 몸은 주인과 달리 참 똑똑했다. 살려고, 주인 쓰러질까 봐, 나름대로 열심히 방법을 찾았다. 결과적으로는 악수(惡手)였지만.
그 덕에 나는 살아남았고, 골다공증 판정을 받았다. 우선은 약물치료로 가능한 정도라고 판단되어 약을 먹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먹는 골다공증 약은 먹을 땐 크게 불편하지 않은 평범한 알약인데, 먹고 나면 속이 상당히 메스껍고 불편하다. 이 역시도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에 비하면 가벼운 대가라고 생각하며 감내하고 열심히 골다공증 약과 칼슘제를 섭취하고 있다.
그리고 무리한 운동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에 따라 PT는 중단했다. 큰맘 먹고 시작한 PT를 중단하게 된 것은 아쉽지만, 일단 내가 먼저 살아야 하니까. 선생님은 몸무게를 증량하고 뼈 골밀도가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는 운동도 가볍게 걷기, 산책 정도만 하라고 하셨다. 그 말을 그냥 따르기로 했다. 그냥 최대한 잘 먹고, 잘 쉬고, 적당히 운동하는 것. 그게 당분간은 나를 살리는 생활이라는 판단을 했다.
골다공증 판정을 받고 처음엔 많이 놀랐지만, 지금은 '오히려 좋아'가 되었다. 무리한 운동도 하지 말고, 가리지 말고 아무거나 잘 먹기만 하면 되고, 잠 많이 자고 푹 쉬고 토실토실 해지는 게 처방이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 오히려 좋아. 무리하지 말고, 그렇게 잘 살아남아 봐야겠다.
추신)
아, 그러니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
잘 드세요. 쉴 때는 푹 쉬시고,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너무 무리하게 운동도 하지 마시고요. 내 몸에 맞는 정도로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를 생각하며 잊지 마세요. 골다공증 같은 질병들은 나이에 따라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도 제가 서른 하나에 골다공증 판정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답니다. 병에 안 걸리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최대한 미루는 게 좋지 않겠어요? 저는 이미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열심히 이 친구들을 안고도 잘 살아남아볼게요! 부디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이런 친구들까지 무겁게 더 안고 가지 마시길 바라며.
나를 살게 한 순간
날이 따숩다. 모두 봄 꽃놀이를 다녀왔는지 SNS가 온통 꽃밭이다. 덕분에 꽃놀이는 랜선으로 충분히 즐기고, 대신 투잡러는 올해 여름 텃밭을 채워줄 친구들을 찾아 모종 놀이를 떠난다.
꽃놀이도 그렇지만, 모종을 사는 것도 다 때가 있다. 4월 5일은 식목일이지만 식목일은 텃밭러에게는 모종을 심기에는 이른 시기이다. 식목일은 '하우스'에서 모종을 심을 때 적합한 날짜라는 것을 농사 초반에 겪은 *초봄 모종 동사 후 재농사 사건들을 통해 모종 가게에 여러 차례 물어보며 배웠다. (*텃밭 농사 초반에 식목일만 되면 후다닥 모종 가게로 달려가 모종을 사서 심었다가 다시 또 추워지는 날씨에 심은 모종들이 모두 얼어 죽어 다시 심곤 했던, 초보 텃밭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건.) 아침 밤에 불어오는 찬 바람이 시리지 않을 때, 대한민국 국민들이 서서히 전기장판을 정리할 때,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추위 타는 것으로는 절대 뒤지지 않을 것이라 자부하는 내가 전기장판을 넣을 때 심으면 딱 알맞다. 그래야 얼어 죽는 모종 없이 농사를 시작할 수 있다. 그게 올해는 4월 2주 차였다.
올해 텃밭의 컨셉은 간단하게, 필요한 것만으로 정했다. 엄마도 나도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무리하지 않기로 결심한 올해 수촌리 텃밭 모종 리스트는 가지, 호박, 대파, 깻잎, 상추, 부추, 토마토, 딸기, 오이, 고추로 정했다. 거기에 뒷 산에서 캐온 미나리, 돌나물도 옮겨 심고, 작년에 수확하고 올해 심으려고 남겨둔 콩씨와 고수 씨도 심는 걸로.
모종을 미리 사두고, 엄마와 텃밭을 정리했다. 겨우내 자란 잡초를 뽑고 고랑을 만들고 구획을 나누고. 입주하실 모종분들이 입주를 기다리며 보셨을 때 누울 자리가 쾌적하다는 생각을 하실 수 있도록 열심히 정리했다.
밭 정리를 마친 후, 때를 기다렸다. 잠을 자다가 땀이 나 전기장판을 끄기로 결심한 4월 15일 새벽. 모종을 심어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모종이 트레이에서 잘 빠질 수 있게 모종에 촉촉하게 물을 부어준 후 미리 생각해 둔 자리에 쏙쏙 심어주었다. 한 시간 가량을 여기저기 좋은 자리에 하나씩 심어드리고 물을 부어드리다 보니 어느새 빈 텃밭은 꽉 차있었다. 아직 모종이 나오지 않은 고추의 자리만 빼고 모두 입주를 완료했다.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진짜 눈으로 보이는 어떤 결실(열매, 잎 등)을 생산하는 것과 직결된 노동을 하는 것에서 오는 뿌듯함과 깨달음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오는 깨달음과는 전혀 다르다. 왜 농부들이 식사를 하고도 꼭 새참을 먹었는지, 새참이 왜 그리 맛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그 기분도 매우 좋다. 또 주는 노동에 비해 너무 잘 자라 주는 손바닥 텃밭의 작물들 덕에 매 해 자연과 식물의 소중함과 감사함까지 배우고 있다.
올해도 봄이 되었고 나는 그렇게, 출근도 하고 텃밭도 가꾸는 투잡러가 되었다. 회사와 텃밭, 두 곳은 모두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나를 풍족하게 살 수 있게 해 주고, 나를 성장시켜 주는 곳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내가 그들을 돕고,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나를 키워주는 그런 일터가 두 곳이나 있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나를 살게 한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전의 여자' 두 분이 팟캐스트를 시작하셨다. (*윤여정 님이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와서 본인의 할머니를 두고 했던 말, '내 전의 여자였죠.'에 꽂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모든 여자분들을 내 전의 여자라고 내 멋대로 호칭하고 있다.) 김하나 작가님이 책읽아웃을 떠나신 후, 한 동안 참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그 아쉬움을 몇 배로 날려주는 소식이었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의 이야기를 한 주에 한 번 팟캐스트로 무려 한 시간 가까이 들을 수 있다니, 이 어찌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의 글과 말은 늘 내 마음에 어떤 불씨를 던져주시곤 한다. 크게는 '나도 좀 더 나은 표현을 더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멋진 언니가 되고 싶다.'는 포부부터, '이번 주에는 귀찮아도 두 분이 추천한 당근 뢰스티에 무알콜 칭따오를 먹어야지' 하는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찾게 하는 불씨까지. 그러니 두 분이 매주 팟캐스트를 올려주신다는 것은 내 삶에 어떤 불씨가 퍼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와도 같다. 두 분이 첫 화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로 하는 칼럼'과 같은 이 팟캐스트가 앞으로 내 삶의 하루하루를 더 다채롭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아 참으로 감사한 요즘이다.
추신인지 추천인지 모를)
서사음의 귀여운 연주로 시작하는 오프닝 음악까지 완벽한 이 팟캐스트 아직도 안 듣고 계신가요? 매주 화요일 팟캐스트, 팟빵을 통해 들으실 수 있답니다. 아! 그리고, 혹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 올라온다면 다른 서비스로 들으시던 분들도 꼭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구독, 좋아요를 꾹 눌러주세요. 두 분이 조금 더 쾌적한 공간에서 녹음하실 수 있도록요!
나를 살게 한 생각
요즘 포켓몬빵이 난리다. 포켓몬빵이 들어오는 시간을 알아내서 편의점 앞에서 기다렸다가 물류 트럭에서 물건을 꺼내자마자 사지 않으면 구경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신발을 팔러 들어갔던 당근마켓에는 포켓몬빵이 1개에 5000원 비싸게는 1만 원, 스티커는 '싯가'로 팔리고 있었다. 엄마가 주던 용돈을 모아 500원이 되면 사 먹던 포켓몬빵. 그 추억을 가진 채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은 용돈을 모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문방구로 달려가 방을 사고, 띠부띠부씰 속 스티커가 무엇일까 설레 하며 확인하고, 뒤늦게 바람에 말라버린 빵을 먹던 그 추억과 조금은 멀어진 것 같다.
여하튼, 내가 하려던 얘기는 추억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두 사람들이 포켓몬빵을 찾으니 편의점 점주분들은 <포켓몬빵 없음. / 포켓몬빵 안 팔아요. / 포켓몬빵 물어보지 마세요.> 등의 메시지를 가게 문 앞에 붙여놓곤 하신다. 그리고 가끔은 위 사진과 같이 유쾌한 안내문을 붙이는 가게들도 있다. 포켓몬빵이 없다는 말에 마음이 서운하려다가도 이 문구를 보면 피식하고 웃으며 다음 편의점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안내문을 보면서 생각했다. '포켓몬빵 없음 말고 오박사 안내문을 붙이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물론,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라고 하니, 단호한 메시지를 붙이는 점주분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집 앞 편의점 사장님한테 여쭤보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포켓몬빵 몇 시에 들어오는지, 몇 개 들어오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오히려 아예 하나도 안 팔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차피 인쇄를 해서 붙이는 과정이 똑같다면, 나는 오박사 짤을 붙이는 사람이고 싶다.
그 말은 즉,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나는 매 번 같은 곳에서 주유를 하는데 주유를 하러 갈 때마다 주유소 사장님은 나를 반겨주시고, 늘 농담을 건네곤 하신다. 여유롭게 주유를 하는 날에는 그 농담을 재미있게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주유가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곤 하는데, 출근이나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은 날에는 그 농담에 답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 창문을 아주 빼꼼하게 열고 내가 아닌 척, 카드만 살짝 전해드린다. 매번 보는 내 차를 사장님이 못 알아보실리 만무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주유가 마쳐지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은 똑같은데 왜 나는 마음이 급할 때 그런 일상 속 소소한 농담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그렇게 그분에게, 또 나에게 그렇게나 야박해진다.
나는 일단 내가 살기 위해 나에게 더는 야박하게 살지 않기로 했는데, 그때 가장 필요한 건 마음의 여유인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삶에 더해지는 농담 한 스푼을 내 에너지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에너지로 다른 사람에게도 농담 한 스푼의 에너지를 전해줄 수 있으니까. 그냥 4월 첫 주에 주유를 하고, 포켓몬빵을 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를 살게 한 음식
재료 : 홈메이드 비건 크림치즈, 홈메이드 비건 참치마요, 우엉조림, 호두조림, 단무지, 오이, 당근, 밥, 깻잎, 참기름, 소금, 통깨
: 김 위에 참기름 소금 간 한 밥을 얇게 끝까지 고루 펴주고 그 위에 깻잎 두 장, 깻잎 위 비건 크림치즈 한 줄, 크림치즈 위 간장과 올리고당에 졸인 호두를 일렬로 콕콕. 그리고 소금에 절여 물기를 쭉 짠 오이채, 소금 간해 살짝 볶은 당근채, 우엉조림, 단무지 등을 취향껏 듬뿍 넣고 도로록 말아주면 하나 완성.
: 깻잎 위에 호두와 크림치즈 대신 비건 참치마요 듬뿍 얹고 똑같이 재료를 넣고 도로로 말아주면 둘 완성.
참 쉽죠? 네 맞아요. 김밥은 재료 준비만 되면 참 쉽죠. 그리고 이 김밥들은 모두 유명한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쉽게 주문할 수 있잖아요. 시켜먹으면 더 쉽죠.
하지만 비건을 곁들이면 조금 달라요. 좀 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해요. 밤새 견과류를 불리고, 다시 갈고, 섞고, 끓이고, 식히고. (물론 시판 비건 크림치즈와 참치도 있지만요!)
재료는 모두 직접 만드는 게 좋아요. 무심코 산 단무지 하나에도 우유 칼슘이나 가쓰오부시가 들어가 있을지 모르거든요.
언젠가는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도 논 비건처럼 배달앱에서 슥슥 좋아하는 맛있는 김밥 한 줄 편하게 시켜먹을 날이 오겠죠?
물론, 제가 만든 이 김밥들은 앉은자리에서 두 줄을 뚝딱할 만큼 사 먹는 것보다 더 맛있었답니다.
아. 4월의 절반도 이렇게, 겨우 겨우 그렇지만 잘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