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사 사용 설명서 EP.02
걱정, 분노, 기쁨, 환희 등 하루에 온갖 감정이 발생하는 직장.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감정을 지혜롭게 잘 다스릴 수 있는 ‘인자강’인 사람이 있지만, 대게는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감정을 완벽하게 다스릴 수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은 전이된다. 이때, 감정은 나눌수록 총량이 곱해지는 곱의 법칙을 보인다. 긍정의 감정뿐 아닌 부정의 감정도 표출 시 배가 되어 회사의 전체 분위기를 지배한다. 오늘은 회사의 감정에 중심인 사람이자 사내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예민 보스형 상사와의 관계에 관한 글을 써 보고자 한다.
예민 보스형 상사는 일을 할 때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특정 상황에 대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문제를 잘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문제를 찾아내는 촉수가 워낙에 발달해 있어 한 수 두수 앞서나가는 생각을 정말 잘하기에 ‘전략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들의 사고 과정을 함께 따라가기만 해도 나의 내공이 쌓이는 느낌이다. 만약 지금 예민 보스형 상사와 함께 일하고 있다면 일을 다루는 날카로운 감각을 배울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은 좋은 의미만 내포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다른 의미로는 ‘예민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의 예민한 감각 때문에 같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피곤함을 느낄 때가 많이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이 닥치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기에 동료들이 감정적으로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한다. 분명 아침에는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오후에는 내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아마도 방금 끝난 분기 성과 회의에서 대표에게 지적받았거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학생 딸아이가 말썽을 피운 것이 분명하다. 그의 요동치는 기분 탓에 순식간에 나는 감정 쓰레기통으로 변하고 만다.
즐거울 때는 갖은 친한 척 다하며 장난까지 치면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버럭 화까지 내는 예민 보스형 상사. 감정이 주식 그래프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예민 보스형 상사와 일을 할 때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사의 분위기와 표정을 잘 읽어낼 필요가 있다. 미세한 변화를 읽어내는 것이 그들과 일을 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예민 보스형 상사의 미간이 좁아져 있거나 목소리 톤에서 떨림이 느껴지는 순간은 조심해야 할 신호다. 그의 좋지 않은 분위기의 화살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최우선이다. 예민 보스형 상사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면, 그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자. 업무적으로 확인이 필요한 내용이 있다고 해도 서두르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상사가 평정심을 유지할 때까지 기다리자. 눈앞의 일이 당장은 급하게 보이더라도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반면, 내 감각이 위험을 감지하고 뇌에 경보를 울린다고 해도 상사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 예민 보스형 상사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나에게 업무 관련 질문을 할 때이다. 질문은 아마도 이러할 것이다. “어제 내가 시킨 보고서 어디까지 정리됐니? 지금 좀 보자”. 어젯밤에 지시한 보고서가 오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게 좋다. 회의에서 상사가 내 소중한 자존심을 긁는 얘기를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더라도 당장 대립각을 세워서는 안 된다. 나의 경험상 욱해서 시작한 논쟁이 큰 화를 불러오기도 했다. 상사의 좋지 않은 피드백을 자리에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자. 오바마의 명언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들이 저급하게 행동할 때, 우리는 품격있게 행동한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 나의 멘탈이 강해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회사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의문이 들거나 서운한 점이 있다면, 반드시 기록해서 조금 더 편한 자리에서 상사와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예민 보스형 상사를 연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아직 올라가지 못한 그의 위치, 그 위치는 어떤 무거운 책임감과 걱정으로 가득할까?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동시에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상사의 무게, 과연 우리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들처럼 저 위치에서 잘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상사를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상대가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게 되면, 함부로 사람 자체가 좋다 싫다는 감정으로 평가할 수 없게 된다. 일터에서는 증오의 감정보다 이해와 연민의 감정으로 상대를 대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공동의 목표 아래 서로 애쓰는 우리 직장인들에게는 서로를 감싸고 보듬어 주는 감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