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막달 출산을 준비하는 부부
여보 임신 한번 해보고 싶지 않아?
시간이 흘러 아내가 임신한 지 어느덧 38주 차 출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내의 배는 이제 산과 같이 높아지고 웅장해졌다. 사람의 배가 더 이상 어떻게 커질 수 있을까 싶다가 하루 지나 뒤 돌아보면 배는 더 높고 크게 자라나 있다. 배가 무거워 아내는 걸음을 뒤뚱뒤뚱 걷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벅차한다. 평소 같았으면 단숨에 산책하던 길을 5번 이상 휴식을 취하며 걷는데, 이 모습을 볼 때마다 혼자서 고통을 안고 가는 모습이 안쓰럽고 가여워 보였다.
어느 날 산책 길에 아내가 나에게 “여보 임신 한번 해보고 싶지 않아?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지?”라며 물어본다. 아내가 기대한 대답과는 달리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여보가 겪고 있는 고통은 내가 온전히 받고 싶은 마음이야. 그런데… 남자에게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가정해서, 10개월 동안 고통을 겪어 보라면 난 시도해 볼 자신이 없네? ㅎㅎ” 아내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정대세가 체험했던 임신 간접 체험을 해보라며 권유하는데 나는 더 크게 손사래를 쳤다.
휴직해도 사서 고생을 자처하는 일개미
아내는 출산을 준비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임신 36주 차에 휴직을 냈다. 임신 마지막 달까지 애쓰면서 일하는 모습이 신경이 쓰여, “왜 몸이 힘든데 악착 같이 출근하고 있어”라고 물어보니 아내는 되도록 버틸 수 있는 데 까지 버틴 뒤 가장 늦게 휴가를 써서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회사에 복귀하고 싶었다고 했다.
출산 휴가를 쓴 아내의 일과는 온전한 휴식이 아닌 집정리였다. 나는 한 직장에서 7년 이상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아내가 많은 것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기를 바랐었지만, 아내는 가만히 있는 것을 못 견뎌하는 일개미였다. 아내는 집 안에 있더라도 무언가를 정리하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였다. 사서 일을 만들고, 고생을 자처한 것이다.
아내는 커다란 배를 두 손으로 안아 움켜쥐고 운전해서 다이소에 여러 정리도구를 사 온 다음, 집안 곳곳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짐을 가지런히 담아 놓는 작업을 했다. 때론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어, 집안의 구조를 가장 효율적이고 심미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을 고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퇴근 후 집엘 돌아오면 집 구조가 바뀌어 있어 임산부 혼자 어떻게 큰 작업을 했을까 감탄하곤 했다.
이런 아내의 고생스러운 노력 덕분에 우리의 집은 점차 아이가 지내는 공간처럼 바뀌어져 갔다. 아기를 위한 작은 침대와 의자, 기저귀 갈이대, 젖병 소독기, 가제수건 등 아기를 위한 물건은 참 많고 다양했으며, 아내의 손으로 그 물건들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곧 태어날 홀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왕절개를 예약했다
이제 아이만 우릴 찾아오면 되었다. 36-40주 차를 임신 막달이라고들 하는데, 이때가 되면 산모는 매주 병원을 찾아 본인과 아이의 건강을 체크한다. 38 주차 우리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병원에 들렀고, 초음파를 보았다. 아이의 몸무게를 체크했다 3.8kg 다. 아이의 몸무게는 금세 또 0.2g 늘어 4kg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손가락을 아내의 생식기에 넣어 내진을 해보는데, 속골반 크기가 좁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이제는 아이를 낳는 게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병원에서 추천하는 출산의 형태는 제왕절개였다. 속골반의 크기가 좁아 아이가 자연적으로 나오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다. 아내는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고 싶어 했는데, 그러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들은 후에 표정이 뾰로통해져 약간 실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내가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제왕절개는 출산에 대한 고통은 없지만 수술 후 후유증이 극심하기 때문이었다(자연 분만은 출산의 고통이 먼저나, 출산 후 회복이 빠르다).
아이의 몸무게가 4kg에 다르기 전에 우선 제왕절개를 예약해 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 7월 27일 을 예정일로 하고, 출산을 위한 마지막 준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