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었던 2026년도 벌써 사분의 일을 지나고 있다.
이제 엄연한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섰고, 나만의 가치관을 정립한 하나의 인격체가 되었다는 실감을 느낀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사람에게도 나이테란 게 있다면 스쳐간 수많은 사건과 기나긴 세월의 흔적이 차곡차곡 내면에 기록되었을 터다.
내게는 오래전부터 남몰래 홀로 품고 있던 꿈이 하나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넓고 깊은, 지혜로운 어른이 되는 것. 이 꿈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누군가의 도움이나 영향 없이 혼자서 이루고 싶은 바람과도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갖은 경험을 하면서 느낀 바들을 내면의 나이테에 차곡차곡 기록해 두게 됐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과거에 정체되지 않도록, 늘 새롭고 낯선 걸 찾아가려 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도록, 다음의 성장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 나와 주변의 무게가 늘어나다 보면, 막상 새로운 것에 몸을 던지기가 점점 더 쉽지 않아 진다. 몸과 마음은 여전히 생동적이어도, 책임져야 할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시점을 지나고 있다 보니 새로운 분야에서 참신한 걸 찾기보다, 주변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당분간의 허기를 때울 먹잇감을 찾으러, 늘 그렇듯 먼 곳으로 나서기보다 집 근처를 한 바퀴 빙 둘러보게 된 것이다.
그런 탓에 최근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하는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종교에 대해서는 유독 접점이 없었던 것 같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진 않은 것. 그 괴리가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과연 어떤 사람이 종교를 가지게 되는 걸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크게 분류해 보면,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종교적 기반 속에서 자란 사람과 살아가면서 새롭게 종교에서 삶의 가치를 찾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전자에게는 밥을 먹고 나서 차를 마시는 것처럼, 삶에서의 자연스러운 생활 중 하나처럼 여겨질 것이다. 물론 식후 차 한 잔에 비견할 수는 없는 크고 깊은 가치를 지니고 있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전자에는 속하지 못했기에, 자연스럽게 후자에 눈이 가게 됐다. 종교가 무엇이길래,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게 되는 것일까. 단순히 삶의 불안을 덜어내기 위해, 신이라는 존재에 의탁하는 것에 불과한 걸까. 다소 외람되지만, 과거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바가 컸다.
몸과 마음이 어리고 성장 동력이 풍부했던 때에는, 누구나 그렇듯 조금은 자만하게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는 종교라는 것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을 수 있다면 분명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전 세계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도 하니까. 그것이 맞든 틀리든, 옳든 그르든 간에 말이다. 어느 쪽으로든 나는 아직 그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기에 너무 무지한 듯했다. 종교란 정말 과연 무엇일까.
종교(宗敎)는 으뜸 종, 가르칠 교를 사용하기에, 흔히 으뜸 되는 가르침이라고 풀이된다. 으뜸 되는 가르침. 어떤 가르침이기에 감히 '으뜸'이라는 무거운 수사를 덧붙일 수 있을까. 아마 신에게 받은 가르침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느 한 통계 결과*에 따르면 세계 인구 81억 명 중 88%(약 72억 명)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 기독교인이 36%(26억 명), 무슬림이 27%(약 20억 명), 힌두교인이 15%(약 11억 명), 불교인이 6%(약 5억 명), 유대인이 0.2%(약 1500만 명), 민속 종교·신흥 종교 등 기타 종교인이 15.8%다.
서로 믿는 신은 다르지만,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신의 가르침이라는 대의 아래, 종교에 의한 무한한 행복도 무자비한 살생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가치를 수용 가능한 수준에서 잘 찾아서 적용할 수 있다면, 삶에서 적지 않은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품어본다.
아무래도 삶의 소중한 기반을 좌우하는 영역이다 보니, 조금은 발걸음이 신중해지는 모양이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를 걸어가는 고양이처럼 말이다.
*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2024년 1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