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보기] 그럼에도, 허들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

by 타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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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연극처럼 장과 막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진 않지만, 살아가다 보면 인생에도 맺고 끊음이 있다는 걸 누구나 알게 된다.


아직 지난 챕터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실감이 든다면 아마 그 분기점에 와 있다는 방증일 터다.


그러한 순간에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아쉬움, 당장 피부에 와닿는 혼란스러움, 곧 다가올 것들에 대한 두려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 들겠지만, 우리의 숙명은 어찌 됐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이상 별 수 없는 일이다. 온갖 어려움을 견디고 넘어서며 꿋꿋이 앞을 향해야 한다.


우리가 시간만큼은 되감을 수 없기에, 흘러간 과거 속에서 오래도록 연연하는 건 무용한 일인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성장통은 비단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만의 고충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의 세상을 살았던 이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각자가 마주한 분기에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애썼고, 그러지 못한 자들은 목숨을 잃거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이처럼 앞을 향해라,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교훈을 전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기 전까지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명을 어겼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했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도 지상에 돌아가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말을 듣지 않아 무척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우리나라 설화 『용소와 며느리바위』에도 며느리가 '돌아보지 말라'는 도승의 금기를 어겼다가 화석으로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동서를 막론하고, 왜 그렇게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나약함을 경계하기 위함일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마주하고 넘어서야 하는 일인데, 과거의 한 순간에 머물러 있다면 그 사람은 죽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면 더 좋다는 식이 아닌, 뒤를 돌아보면 죽는다는 결말로 전개되는 모양이다. 이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지나간 것을 넘어서야 할 때는 확실히 뛰어넘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 세상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것들이 익숙한 것들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더 자주, 더 빠르게 허들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 된 세상이라지만, 기본적으로 육신과 정신이라는 일정한 무게를 지닌 인간이 견뎌내기에는, 그 주기가 꽤 가혹한 속도로 짧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각자가 스스로의 여러 문제들을 충분히 고민해 보고 실패해 볼 수 있는 틈조차 주어지지 않는 듯하다.


'실패'라는 결과 앞에도 어느 순간부터 '여유'라는 전제가 필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앞을 보지 못하고 과거의 어느 순간에 메어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과거의 좋았던 어느 순간 또는 과거의 좋지 않았던 어느 순간에 사로잡혀, 지금과 미래를 잘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이다. 물론, 위의 오래된 이야기들이 지어졌던 시기와 달리, 현재의 우리는 정말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인간이기에 변함없는 사실은 결국 이 또한 넘어서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을 잘 보내야 더 좋은 앞날도 찾아오는 법이니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장은 너무도 힘이 들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럼에도 나만의 꿈과 미래를 그린 다음, 그곳을 향해 한 발짝씩 내딛는 것일 터다.


* 위 포스트는 논객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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