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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an 12. 2019

유모차 밀고 2호선을 탔다


인간의 적응력은 경이롭다. 스위스에서 뚜벅이로 살면서 유모차 밀고 트램 타고, 버스 타고, 기차 타던 게 일상이 되니 이전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모양이다. 불과 열 달 전, 한국에 있을 때는 유모차로 집 근처 시장밖에 못 가던 나였는데.


어쩌면 독박육아를 통해 레벨업했다는 자신감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유모차를 밀고 2호선 지하철을 탔다, 겁도 없이.




헬조선이라 했던가, 그러나 당시 내게 한국은 천국이었다. 친정엔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힘들 때 흔쾌히 육아 교대를 해줄 친정 부모님, 장난감 도서관에서 빌려온 각종 탈것과 놀이교구들, 마트만 가도 있는 키즈카페,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집밥, 아이가 아프면 바로 달려가 콧속의 콧물을 슉슉 빼줄 수 있는 소아과, 조카가 예쁘다고 이것저것 사주는 이모까지.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편과 일상을 함께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이 모든 편안함에 상쇄되었다.


동생 결혼식 전날까지 지방의 친정에 머물렀다. 전셋집도 정리하고 유학을 떠났던 터라 편안히 머물 곳이 없었다. 남편은 서울의 본가에서 출퇴근했다. 한국에 3주 와 있는데 아이와 아빠를 떼어놓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출국 전까지 서울에 머물기로 했다. 동생네의 배려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의 신혼집을 지키게 됐다. 덕분에 오전에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퇴근한 남편의 저녁상을 차리고 아이를 재우는 '평범한' 주부의 일상을 체험하게 됐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많았지만 돌쟁이 아기와 차 없이는 어디든 가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내 면허는 장롱면허!). 그러나 유럽에서 유모차와 함께 버스, 트램, 기차, 비행기까지 타던 내가 아니던가. 우리나라도 시설과 인식이 많이 바뀌었을 거라 믿고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그중 유모차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으로 골랐다. 잠실 롯데월드몰. 한국에 있을 때도 아기 데리고 남편과 가봤던 곳이라 동선이 대략 머릿속에 그려졌다.


동생의 집은 방배동, 목적지인 잠실까지 환승 없이 아홉 정거장이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방배역 3번 출구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점자블록으로 휠체어 칸까지 유도가 잘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절반은 성공이군.' 흐뭇하게 웃으며 지하철에 탔다. 휠체어를 거치할 수 있는 좌석 없는 공간에 두 세 사람이 기대어 서 있었다. 유모차를 밀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스위스에서는 유모차, 휠체어가 다가가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워줘서 벽 쪽에 안전하게 주차해 놓을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그럴 거라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다. 잡고 갈 안전바도 없는 지하철 한가운데 유모차를 세워놓은 모양새가 영 어색하게 느껴졌다. 의지할 거라곤 유모차 브레이크와 내 두 다리, 균형감각뿐이었다. 



요렇게 생긴 칸이 생긴 지 13년이 됐답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kimjmj1)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다. 경사로, 엘리베이터, 휴게공간이 갖춰진 몰은 환상적이었다. 친구 얼굴도 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이 모든 걸 아기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출산 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갑갑했던 마음을 수다로 모두 풀어냈다. 헤어지기 아쉽고 집에 가기 싫었다. 그러나 유모차와 운명공동체인 나는 신데렐라였다. 퇴근시간이 되어 붐비기 전에 지하철을 타야 했으니.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내려갔으나 이미 시간은 4시 반이 넘었다. 잠실역은 넓고 장애인 칸을 찾기엔 마음이 조급했다. 점점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더 붐비기 전에 가려고 급한대로 사람 좀 적어 보이는 일반칸에 올라탔다. 내리는 문과 가까운 노약자석 양쪽 의자 사이에 유모차를 세웠다. 삼성, 선릉을 지나며 지하철은 만원이 됐다. 노약자석에 앉아계신 어르신들 사이에 주차된 유모차 한 대, 그 주변을 빽빽이 둘러싼 사람들. 답답함을 느낀 아기는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진땀이 났다. 아.. 나는 왜 이 망할 유모차를 끌고 여기까지 나왔던가. 더 일찍 나섰어야 했는데 내 엉덩이는 왜 그리 무거웠나. 다음 생에는 디럭스 유모차를 사는 일은 절대 없으리.


주위를 둘러봤다. 노약자석의 아주머니, 할머니들, 수다를 떨다 아기와 눈이 마주치면 씽긋 웃어주던 여학생들, 아기의 보드라운 맨발(당시는 7월이었다)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던 60대 아저씨,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30대 중후반 즈음의 회사원, 그 외에 등을 돌리고 각자 일에 몰두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는 만원 지하철 노약자석 한가운데서 사람들을 헤집고 유모차를 끌고 나와 승강장에 내려야 하는데... 날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열차는 방배역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바로 뒤에 서 있던 스마트폰에 열중하던 30대 남자분에게 말을 걸었다.

저, 내릴 수 있을까요? 


그는 내가 말 걸거라 미처 생각지 못한듯한 표정이었다. 

"아마 내리실 수 있을 거예요."

난 울상을 지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요? ㅠ_ㅠ" 

그러자 그는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말했다.


네. 내리실 수 있어요.
아니, 제가 내리게 해 드릴게요.


열차는 역에 도착했고 오른쪽 출입문이 열렸다. 승강장에는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두 줄로 서있었고, 우리가 탄 칸에서 내리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 남자분은 유모차 한쪽을 잡더니 반대쪽은 나보고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유모차 내립니다, 비켜주세요! 


할렐루야. 퇴근길 2호선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 

겹겹이 둘러싸 있던 사람들이 한 발짝씩 옆으로 비켜주기 시작했다. 분명 사람들로 꽉 차 있던 열차 객실에 유모차가 지나갈 공간이 생겼다, 그 짧은 시간에. 문 바로 앞에 서 있던 군인 청년에게 비켜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유모차를 앞쪽에서 당기며 몸소 길을 열어 플랫폼까지 내려준 천사는 감사하다는 인사에 "아닙니다"라고 쿨하게 답하더니 다시 열차에 올라탔다. 나는 무사히 내렸다는 안도감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에피소드를 얘기하자 당연한 듯 답했다. 

"나였어도 아기 엄마가 부탁하면 도와줬을 거야. 내 와이프랑 아기가 떠오르니까, 남일 같지 않잖아."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기 엄마로서 나의 본능은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젊은이들도 아닌 남편 또래의 남성에게 도움을 요청하도록 했다. 말 걸기 전에는 우리를 전혀 신경쓰지 않던 그분도 나를 보고 아마 자신의 아내와 아이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이 날의 경험은 내게 교훈을 남겼다. 먼저, 한국에서 대중교통으로 아기와 외출하는 건 사람들의 시선과 손길을 감내할 각오(오가는 동안 대여섯 명의 모르는 분들이 말을 걸고 허락없이 아이를 만졌다), 철저한 시간관리와 자기 통제력(출퇴근 시간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내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가 필요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걸 기분 나빠하지 않고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이 정도는 견딜만하다 (다행히 난 오랜만의 한국 방문에 집밥 먹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린 상태라 감내할 여유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유럽에서는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유모차가 오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주고 양보하고, 닫히려는 전동차 문을 잡아주는 게 그들 사회의 암묵적 매너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직접 요청을 해야 한다는 거다.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요즘 사람들'인 우리의 문화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깨닫다니. 임신했을 땐 이걸 몰라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들 곁에서 말도 못 하고 서성였다. 알아서 도와주길 바랐지, 도움을 요청하는데 부끄러워하고 서툴렀다.


"제가 임신부라 서 있기 힘든데 양보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안전 때문에 그러는데 유모차 좀 세우게 조금만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문 좀 잡아 주시겠어요?"

"유모차 계단 위로 올리는 것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콕 집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못 들은 척 거절할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믿고 싶다. 어쩌면 사람들 많은 곳에서 자신에게 부탁하는 사람에게 "아니요"하고 거절하는 게 더 큰 용기일지도. 그러니 엄마들이여, 용기내서 유모차 끌고 밖으로 나가자. 망설이지 말고 도움을 청하자. 그래야 한국도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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