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육아 단상 1
집 근처에는 국공립 어린이집인 크레쉬(crèche)가 세 군데 있다. 그중 가장 가까운 곳은 구글맵으로 찍어봤을 때 110m,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다. 산책을 하러 호숫가에 나가는 길목에 있어 자주 지나다닌다.
어느 맑은 날 오후, 공원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김없이 그곳을 지났다. 아이들은 건물 앞 놀이터에서 모래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고, 유치원 선생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은 퇴근을 하는 듯했다. 놀이터에 있는 다른 선생님들과도 인사하고, 아이들에게도 "얘들아, 내일 보자!"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응? 눈을 의심했다. 그는 분명 손을 흔들며 아이들과 헤어지고 뒤돌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나를 앞질러 유유히 걸어갔다.
유치원 선생님과 담배라니, 한국에서는 상상해본 적 없는 조합이었다. 내가 갖고 있던 이상적인 교사상에 흡연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신선하기까지 했다. 퇴근하자마자 담배를 피우는 유치원 선생님은 근무시간이 아니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몇 달 후, 아기의 유치원 선생님들이 휴식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보게 됐다.
스위스는 술보다는 담배에 유연한 편이다. 맥주와 와인류는 16세 이상이면 구입할 수 있고, 독한 증류주는 18세 이상 가능하다고 정해져 있는데 반해 담배는 각 칸톤 지방정부의 재량에 맡긴다. 담배 구입 최소 연령은 보통 16세에서 18세 정도라고 하는데 제네바 칸톤에는 담배 구입 연령 제한이 없다고 (한국은 술, 담배 모두 20세 이상).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근처에서 담배 피우는 아이들을 많이 보긴 했다. 남편도 제네바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첫 불평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길에서 담배를 많이 피워?"였다.
정류장, 공원, 공공장소 어디든 쓰레기통 옆엔 재떨이가 꼭 있고, 심지어 제네바 시에서는 알루미늄으로 된 휴대용 재떨이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는 걸 보면, 흡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걸어가면서도 담배를 피우고, 정류장에서 버스나 트램을 기다리면서도 피운다. 고등학생도 담배를 피우고, 유치원 선생님도,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엄마도, 아이의 손을 잡은 아빠도 피운다. 이쯤 되니 스위스 담배는 인체에 무해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제네바 시에서 하는 꽁초 줄이기 캠페인을 보니,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는 주로 흡연이 개인의 건강을 해치고, 간접흡연으로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니 줄여야 한다는 내용의 포스터가 많다. 여긴 흡연자가 워낙 많아서인지 취향을 존중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흡연 자체를 줄이라는 내용보다는 환경을 생각해서 꽁초 처리를 제대로 하라는 쪽이다. 다행히 요즘은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뜨인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어우러져 사는 국제기구의 도시, 유엔 인권 이사회가 열리는 제네바에 사는 이상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마음먹으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선생님들의 타투, 혀 피어싱...
아무렴 어때, 선생님이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고 애들도 선생님을 좋아하면 된 거지. 라며 자기 암시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