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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ul 21. 2023

그래서 여기가 어딘데

Day 1 - (1)


세 시간 반이면 울란바토르에 도착한다. 잠깐 눈을 붙였다 뜨니 여기저기서 기내식을 나눠주느라 분주했다. 미리 다운로드한 음악을 들으며 비빔밥을 먹었다. 심심해질 때쯤 좌석 앞 모니터를 켰다. 영화 목록을 쭉 둘러보았다. 영화 한 편의 러닝타임보다 남은 비행시간이 짧았다. 일기장에 쓰다만 문장을 마치려 하자 승무원들이 착륙 준비를 해야 하니 테이블을 접고 등받이를 세우고 창문을 열어달라고 안내했다. 몽골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나라였다.



열어젖힌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잠시 적응하고 밖을 바라봤다. 상공에서 바라본 몽골은 초록이 거의 없는 척박한 대지 같았다. 5월 중순, 겨울에서 여름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착륙할 때 기류는 안정적이었다. 비행기는 제시간에 칭기즈 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몽골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예진의 집에서 한 달간 지낼 거라 시간은 여유로웠고 오늘은 숙소만 찾아가면 됐다. 짐을 찾고 나오니 택시 기사들이 각종 언어로 승객들을 붙잡았다. 울란바토르 도심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너도나도 더 싼 가격으로 모시겠다는 듯 가격을 제시했다. 대부분이 일반 차량으로 운행하는 무허가 택시라 여행객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들을 애써 외면하며 공항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러 데스크로 향했다.


공항 택시는 10만 투그릭(한화로 약 38,000원)이었다. 무허가 택시 기사들이 6만 투그릭을 부르는 소리가 귀에 들렸지만 첫날부터 흥정하기 싫어 비싸도 공항 택시를 타기로 했다. 접수대 직원에게 10만 투그릭을 내고 집 주소를 보여주었다. 전날 구글 지도에서 친구 집과 같은 이름의 다른 아파트가 있는 걸 봐서 근처 재즈클럽 이름을 함께 말했다. 직원은 담당 기사에게 아파트 이름을 전했다.



기사님과 공항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엔 나무도 잘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곳곳의 낮은 산 위로 구름이 낮게 걸려 있었다.


도로가 우측통행이라 택시도 오른쪽 문으로 타야 했다. 이상하게 운전대도 오른쪽에 있어 오른쪽 뒷좌석이 좁았다. 불편했지만 내리는 방향이 오른쪽이라 그대로 끼어 앉았다. 택시가 출발했다.



'Welcome to Mongolia'

(몽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표지판 문구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리저리 현실에 치이다 떠나와서 그런지 현재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기사님이 힙합을 좋아하시는지 아니면 몽골에 힙합이 유행하는지 가는 내내 택시 안에 강한 비트가 울렸다. 기사님의 흥얼거림을 들으며 풍경을 눈으로 좇았다. 


한 시간이 지나 시내로 들어섰다. 기사님은 길을 찾으시는지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셨다. 택시는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언덕으로 올라가야 하는 주차장 입구에 멈춰 섰다. 차가 들어갈 수 없게 막혀있었다. 기사님은 몽골어로 여기에 내리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고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내주셨다. 인사를 하고 언덕을 올랐다.


예진이 보내준 약도에는 입구가 네 개인 한 동짜리 건물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여러 동으로 이루어진 고급 아파트 단지였다. 친구가 인턴으로 일하는데 이런 집을 지원받았다고(???) 하는 생각을 하며 한남동에 있을 법한 아파트를 둘러봤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곳이 해당 아파트가 맞는지 물었다. 그 사람은 맞다고 했다. 그리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어제 지도에서 본 같은 이름의 다른 아파트구나......






택시는 한참 전에 떠났다. UB cab이라는 울란바토르 택시 어플로 택시를 잡으려면 유심이 필요했다. 유심을 시내에 있는 국영백화점에서 사려고 했던 터라 당장 방법이 없었다. 길에서 택시를 잡는 게 유일한 선택지였다. 애초에 공항 택시만 생각했기 때문에 무허가 택시가 안전한지는 알 수 없었다. 오프라인 지도를 저장해 둔 게 생각나 구글 지도를 켜봤다. 목적지에서 3~4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걸으면 한 시간 정도 가야 할 것 같았다. 카메라와 노트북이 든 백팩에, 한 달치 짐이 든 캐리어까지 끌고서 그 거리를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택시를 잡아야 했다.


지도에서 가까운 건물을 찾아봤다. 큰길 앞에 쇼핑몰이 하나 있었다. 그곳으로 향했다. 쇼핑몰 입구에 익숙한 브랜드들이 보였다. CU, 뚜레쥬르... 한국 브랜드들이 왜 거기에 있지 싶으면서도 한국인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CU에 들어가니 한국 음식을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몽골인들과 계산하느라 바빠 보이는 점원밖에 없었다. 뚜레쥬르도 붐벼서 도움을 요청하긴 어려웠다. CU와 뚜레쥬르 사이 복도에 캐리어를 세웠다. 덩그러니 서서 숨을 돌렸다. 첫날부터 집도 못 찾아가다니 막막한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쇼핑몰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오른쪽 복도 끝에 ‘i’가 적힌 곳이 보였다. 인포메이션 데스크 같았다. 찾았다. 나를 도와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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