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나라는 불안한 존재의 가능성에 대하여

by 성장썰

존재란 한없이 투명한 가능성이 아닐까?

- 고명환, 고전이 답했다 중 -


이 글을 읽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나라는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해 보자.


이 질문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의 전제를 정했다.

판단하지 않기.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과거의 경험으로 나를 재단하지 않기. 가능성은 판단하는 순간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설정을 둔다.


“너는 이제 일곱 살이야.”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는 상태.

그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도 되는 나.


“자, 이제 시작이야.

뭘 하고 싶어?”


“나는… 좋은 노래 듣는 게 좋아.”


“어떤 노래?”


“재즈.”


나는 재즈 바에서 느꼈던 감각을 기억한다.

서로의 호흡을 듣고, 그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연주. 예상하지 못한 흐름이 겹치며 하나의 선율로 맞춰지는 순간.

그걸 들을 때 가슴이 차오른다. 설명하기 어려운 충만감이다.


“왜 그게 좋아?”


“그냥… 너무 행복해.”


이 지점에서 하나가 분명해진다.

나는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 이전에,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또 뭐 하고 싶어?”


“나는 몸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몸을 잘 쓴다는 건 뭐야?”


“내가 느끼는 걸… 그대로 표현하는 거.”


생각하고 나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상태. 나는 그 상태를 ‘잘함’이 아니라 ‘자유’라고 느낀다.


이 생각은 한 장면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옥주현의 무대를 봤을 때였다.


그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이 자신의 감정과 몸, 소리를 하나로 연결해 자유롭게 흐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걸 보고 어땠어?”


“… 눈물이 날 것 같았어.”


“왜?”


“부러워서.”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특정한 직업이 아니라, 저 상태라는 것을.


“그래서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내가 느끼는 걸 막힘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이 욕망은 특정한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한때는 드럼과 베이스에 끌렸고, 지금은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시작한 지 세 달이 되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


“앞으로 또 다른 걸 배우고 싶을 수도 있어?”


“응. 콘트라베이스도 배우고 싶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악기 자체도 비싸고, 접근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고 싶으면 어떡할 거야?”


“그때도 배우면 좋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걸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시간, 자원, 용기를 가진 사람.


“그럼 너는 어떤 역할이 되고 싶어?”


“나는… 앞에 서는 사람이 아니어도 돼.”


나는 드럼과 베이스를 좋아한다.

이 악기들은 앞에 서지 않지만, 전체를 지탱한다. 흐름을 만들고, 리듬을 잡고, 다른 사람의 연주를 살린다.


“왜 그 자리가 좋아?”


“그게 더 안정감 있어.”


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 안에서 함께 완성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 하는 게 좋아, 같이 하는 게 좋아?”


“같이 하는 게 더 좋아.”


혼자 할 때는 일정한 범위 안에 머무른다.

하지만 함께하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긴다. 그 변수가 하나의 새로운 흐름이 된다.


“그럼 그 순간에 뭐가 좋아?”


“같이 완성했을 때.”


그 순간을 함께 누리는 것.

그게 내가 더 크게 반응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 위에 하나가 더 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처한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사람.

겉을 스치는 말이 아니라, 핵심을 건드리는 말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


신뢰가 생겨.”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그들의 말은 새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르게 들린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왜 다르게 들릴까?”


진실성이 있어서.”


나는 진실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에게 거짓되지 않은 말, 상황에 맞게 적절한 말, 그리고 누군가에게 실제로 닿는 말을 하는 사람.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로 이어진다.


자유롭게 표현하는 몸.

끊임없이 배우는 태도.

그리고 진실성을 바탕으로 사람에게 닿는 말.


“그래서 너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잠시 멈춘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계속 배우고,

진실하게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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